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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유다 왕국의 개요 (남 왕국)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8.

르호보암이 그의 부친 솔로몬(열왕기상 11:43 참조)의 뒤를
이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을때, 과도한 정부 건물 특히 군사
및 왕족을 위한 과다한 지출 때문에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여 정치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르호보암은 북방 지파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북방의 권력 중심지인 세겜으로 가야만 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가중되는 무거운 세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알아보았으나 경험이 없고 권력만을 구하는 보좌들의
그릇된 간언으로 르호보암 왕은 조세의 경감은 커녕 오히려 더
무거운 세금을 부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열왕기상 12:1~11)
그리하여 북 지파는 그를 왕으로 추대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왕의 칙령의 실시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키고 여로보암과 함께 그들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그를 새로운 왕으로 삼았다.(열왕기상
12:12~20 참조)
가장 작고 연약한 지파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들은 르호보암을 지지하고 다 함께
유다 왕국을 이룩했다.(열왕기상 12:21~24; 역대하 11:1~4,
12, 23) 그 후 몇 년 동안 다른 지파 중 많은 사람들이 남
왕국으로 이주하여 유다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레위(역대하
11:13~17),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역대하 15:9참조)에
관해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유다가 여전히 다윗 지파의 통치 아래 남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져 내려왔다.(열왕기상 11:13, 32 참조) 그 예언은
성취되었으며, 유다의 왕권은 유다 국가가 존속하는 동안 다윗의
후손에게 전해졌다. 어떤 왕의 왕후를 통해 다른 왕가에 왕위를
내주게 하려는 시도는 좌절되었으며 그 가족의 통치는 보전되어
왔다. 포로로 잡혀 멸망당하기까지 유다를 통치했던 20명의
통치자 가운데 열두 명은 경전에 사악한 자로 기록되었다. 단지 네
명만이 그들의 나라를 경제적인 면에서와 종교적인 면에서
발전시켰다. 북쪽에서처럼 미가야, 이사야,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리하이,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 많은 선지자들이
유다 왕국에 회개를 외쳤다.

유다 왕들
르호보암(주전931~913). 열왕기상 12:1~24; 14:21~31;
역대하 9:31~12:16 참조. 나라 안에 우상 숭배의 관습이
시행되게 했음. 유다의 사원과 왕궁을 약탈했던 시삭(애굽의 22대
바로 왕조인 시송크 일세)에게 패했음. 그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과 서로 겨루었음.
아비얌/아비야(주전 913~910). 열왕기상 15:1~8; 역대하
13:1~22 참조. 르호보암의 아들. 이스라엘과 대항하여 싸웠음.
북 왕국의 여러 성을 빼앗고 유다 왕국의 통치를 받게 함.
아사(주전 911~869). 열왕기상 15:9~24; 역대하
14:1~16:14 참조. 아비암의 아들. 선지자 아히야의 격려에
힘입어 종교 개혁을 시작했음. 유다 백성의 우상을 멸하고 우상
숭배를 금함. 이스라엘의 바아사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를 멸함.
구스(에디오피아) 군사의 공격을 물리침. 그의 말년에 아람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처함. 자신의 병으로 말미암아,
그가 죽기 3년 전에 그의 아들 여호사밧을 통치자로 임명하여
그와 공동으로 통치함.
여호사밧(주전 870~848). 열왕기상 22:41~50; 역대하
17:1~20:37 참조. 아사의 아들. 왕이 되기 전 3년간 부친과
함께 통치함. 왕국에 군대 요새를 강화하고 종교 개혁을 촉진시킴.
신권에 의한 교육 프로그램을 세움. 유다가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로 부상되어 평화를 보장해 주고 블레셋과
아라비아로부터 조공을 받음.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연합하여
아람(수리아)을 침. 아합왕이 전사하고 아람도 패함. 여호사밧의
아들 여로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가 결혼함으로써 우상 숭배가 더
퍼졌고 결국 다윗 혈통이 유다의 왕좌를 이어나가는 것을 위협
받게 됨. 종교 재판 및 시민 재판 제도 확립. 기적적으로
암몬인들과 그들의 연합국의 공격을 이겨 냄. 무역을 하기 위해
배를 공동으로 건조하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과의 제휴를
계속했으나 실패로 돌아감.
엘리야의 성역, 주로 북 왕국에서 있었으나 여호사밧의 통치
동안에 일어났음.
여호람(주전 848~841). 열왕기하 8:16~24; 역대하 21장
참조. 여호사밧의 장자. 왕이 되어 부친의 말년에 공동으로
통치함. 그들의 부를 얻기 위해 형제들을 살해하고 보좌를 얻고
나서 유일한 통치자가 됨. 우상을 섬기는 아내에게 유다에서
이스라엘의 사악한 종교 관습을 행하는 것을 허용했음.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래로 공물을 바쳤던 에돔 사람들의 반역을 제압함.
유다에 대한 에돔 사람들의 공격을 막았으나, 에돔의 제압을 막을
수는 없었음.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략을 받음. 그들은 재산을
빼앗고 왕궁과 왕족을 멸함. 그의 백성들이 그를 왕가의 무덤에
매장하기를 거절함.
아하시야(주전 841). 열왕기하 8:25~29; 열왕기하
9:27~29; 역대하 22:1~9 참조. 여호람의 아들. 모친 곧
이스라엘 아합의 딸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북쪽의 우상 숭배를
따름. 그의 사촌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동맹하여 아람에 대항했음.
여호람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부상당했을 때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으로 이스라엘의 여호람을 방문했음. 사마리아에 있을 동안
선지자 엘리사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이스라엘의 군사
지도자인 예후가 시행한 공격으로 살해되었음. 이스라엘의
여호람도 이때에 암살되었음.
아달랴(주전 841~835). 열왕기하 11장; 역대하
22:10~23:21 참조. 아하시야의 모친 및 이스라엘의 아합의 딸.
유다의 왕좌에 아합(북 왕국의) 지파를 세우려고 함. 스스로
왕좌를 빼앗기 위해 자신의 손자들을 살해하도록 명함. 한 의로운
제사장이 가장 어린 후계자를 구하여 성전에 숨김. 많은 세월이
지난후, 이 종교 지도자는 반란을 계획했음. 아달랴 여왕이
살해되고, 그녀의 손자 요아스가 유다의 왕으로 추대되었음.
요아스/여호아스(주전 835~796). 열왕기하 12장; 역대하
24장 참조. 아하시아의 아들. 신권을 지지하고 여호와에 대한
경배를 새롭게 함. 성전을 개수함.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왕좌에
오르게 한 대제사장이 사망한 뒤에 우상 숭배에 마음을 돌림.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가르치도록 세우신 선지자인 그의
사촌 스갸랴를 살해함. 수리아의 유다 공격시에 심한 부상을 당함.
자신의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성전의 보화와 신성한 물건을
수리아인들에게 바침. 사악한 행위로 특히 자신의 목숨을 건져
주었던 성직자의 가족에 대항했던 행위로 말미암마 자신의 종들에
의해 살해됨.
아마샤(주전 796~767). 열왕기하 14:1~22; 역대하 25장
참조. 요아스의 아들. 백성들을 준비시켜 앗수르의 침략으로
약해진 그들의 숙적이었던 에돔 사람들을 쳐서 없앴음. 유다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다시 시작했음. 국세를 확장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왕국에 도전했으나 패함. 예언된 대로 예루살렘 성의
일부가 파괴되고 성전이 약탈되었음. 이러한 파괴로 말미암아
아마샤에 대항하여 폭동이 일어났음. 안전을 위해 라기스로
피신했으나 발각되어 처형되었음.
아사랴/웃시야(주전 767~740). 열왕기하 15:1~7; 역대하
26장 참조. 아마샤의 아들. 두 가지 이름으로 나와 있음. 16세에
왕위에 오른 그는 부친과 공동으로 20여 년간 다스렸으며 통틀어
52년간 다스렸다. 유대 나라를 강하게 했고 우상 숭배의 관습을
없애기 위해 많은 일을 했음. 그는 초기에는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나, 나라 안에서 우상 숭배를 없애지는 못했음. 블레셋의
본거지를 멸하고 그들과 아람인들을 장악함. 유다의 국력을 인정한
암몬으로부터 공물을 받음. 예루살렘의 방비를 굳게 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일으킴.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성전의 성소에
불법으로 들어갔으므로 그의 거만하고 주제넘은 행위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고통을 받음
. 그는 나병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격리되어 있었음. 그의 마지막 10년간 아들 요담과 함께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했음.
요담(주전 740~732). 열왕기하 15:32~38; 역대하 27장
참조. 아사랴의 아들. 계속 예루살렘의 성벽과 유다의 성을 강하게
함. 성전 부속 건물을 건축함. 조공을 바치는 상태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암몬 사람들의 반역을 진압시켰음. 그는 일생 동안
의롭게 통치하였으나 백성들 사이에는 우상 숭배가 계속됨.
아하스(주전 732~715). 열왕기하 16장; 역대하 28장 참조.
요담의 아들. 부친과 함께 4년간 통치함. 부친의 사망 이후 유다
왕국에 우상 숭배를 하게 했음. 자신의 자녀들을 불태워 인간
희생물로 바치기까지 했음. 이와 같은 사악한 행위의 결과에 관해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경고를 받았으나 이사야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음. 베가 치세의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에 의해 패함. 수천
명의 백성들이 북 왕국으로 잡혀갔으나 후에 선지자 오데드의
요청으로 풀려났음. 에돔인과 블레셋인의 침략을 받았으며, 그들은
몇몇 마을을 장악했음. 결국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했음.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과도한 조공을 바침. 앗수르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그 안에 있는 신성한 보물을
앗수르에게 바침. 유다 전국에 우상 숭배를 할 장소를 세움. 사망
시에 백성들이 왕의 묘실에 매장하는 것을 거절함.
선지자 미가의 성역은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서 히스기야
통치까지 계속됨.
히스기야(주전 715~686). 열왕기하 18:1~20:21; 역대하
29:1~32:33 참조.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성전을 복구했음. 모세가 만든 놋뱀을 백성들이 예배의 대상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을 없앰
. 치세 14년에 이스라엘의 앗수르의
사르곤 이세의 후계자 산헤립의 공격을 받음. 예루살렘의 방비를
다시 개수하고 도시의 안전을 위해 수로(터널)를 건설하였음.
이때에 주님의 구원을 간구함.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음. 심히 병약하게
되었으나. 주님에 대한 그의 간구는 이사야를 통해 그가 왕위에
있는 날을 연장시키는 축복을 그에게 가져다주었음. 그는
사망시까지 선하게 통치했음.
므낫세(주전 686~642). 열왕기하 21:1~18; 역대하
33:1~20 참조. 히스기야의 아들. 그는 부친이 병약한데다,
백성을 다스리도록 미리 준비하기 위해 11년간 부친과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렸음. 앗수르에 대한 유다의 속국 상태가 계속됨. 그의
부친이 파괴한 우상 숭배의 장소를 다시 건축함.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두고 그의 자녀들을 인간 희생물로 바침. 많은 무죄한 피를
흘린 데 대한 책임을 짐.
수많은 선지자가 이 사악한 왕에게 경고했으나 소용이 없었으며
그는 선지자 가운데 몇 사람을 살해했음. 그가 이사야를
살해했다고 구전됨
. 앗수르 사람들은 므낫세를 얼마간 인질로
붙잡았음. 그가 돌아오자 그는 성전을 복구하고 성벽을 다시
쌓았음.
아몬(주전 642~640). 열왕기하 21:19~26; 역대하
33:21~24 참조. 므낫세의 아들. 그들 부친의 모든 악행으로
마음을 돌려 자신의 신복들에게 살해됨.
나훔이 예언했던 때는 이때쯤일 것임.
요시야(주전 640~607). 열왕기하 22장~23:30; 역대하
33:25~35:27 참조. 암몬의 아들. 여덟 살 때 백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됨. 그는 성장하면서 게속해서 그의 마음을 주님께
돌리고 그 나라의 우상 숭배의 관습과 성소를 철폐했음. 성전을
새롭게 하고 복구함. 성전을 새롭게 하는 동안 성전 내에서
성스러운 기록을 발견함.
 종교 개혁을 하고 성약으로 백성들을
다스렸음.
외적 변화가 왕국에 있었지만, 유다가 요시야의 날 후에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에언되었음. 앗수르가 바빌로니아에 멸망되자
유다는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었음. 그러나 애굽은 바빌로니아와
동맹을 맺고 정복을 돕기 위해 유다로 전진해 나아갔음. 요시야는
애굽을 막으려 했으나 중도에서 패하고 므깃도에서 치명상을
입었고 그 후 유다는 애굽의 속국이 되었음.
요시야 치세 초기에 스바냐 그리고 확실치는 않으나 나훔이
예언하였음. 리하이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음.
예레미야의 성역은 요시야의 통치 말에 시작되었음.(예레미야서
1:1~2 참조) 하박국은 요시야의 통치가 끝난 후 짧은 기간 동안
예언한듯 함.
여호아하스(주전 609). 열왕기하 23:31~33; 역대하 36:1~4
참조. 요시야의 아들. 그는 3개월 만에 물러남. 자리에서 물러나
애굽으로 유배되어 후에 그곳에서 사망함. 의붓 형제가 새로운
통치자가 됨.
엘리아김/여호야김(주전 609~597). 열왕기하 23:34~24:7;
역대하 36:5~8 참조. 요시야의 아들. 애굽인들이 그를 형 대신
왕으로 선택함. 그의 이름을 강제로 여호야김으로 고치고 애굽에
조공을 바치게 함. 이러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함. 주전 605년에 바빌로니아가 애굽을
멸하고 유다의 왕은 느부갓네살의 제후가 됨. 아람, 모압, 암몬의
침략을 받음. 그의 증조부인 므낫세와 같이 사악해짐.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데 대한 책임을 짐. 정복자 바빌로니아에게 성전의
기물을 선물로 바치고 왕족과 귀족들을 종주국에 보냄. 다니엘도
이 무리 중에 속해 있었음. 3년 동안 속국으로 지내온 후
바빌로니아에 거역하였고 자신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잡혀갔음.
일찍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함.
여호야긴(주전 597). 열왕기하 24:8~17; 역대하 36:9~10
참조. 엘리아김/여호야김의 아들. 바빌로니아에 계속 저항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지 몇 달 만에 항복함. 그는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명공, 학자, 게다가 성전의 보물과 함께 바벨론에 인질로
잡혀갔음. 에스겔은 이 무리 가운데 있었으며 이것은 최초로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의 중요한 무리들이었음.
시드기야/맛다니야(주전 597~587). 열왕기하
24:18~25:26; 역대하 36:11~21 참조. 여호아하스의 형,
엘리아김/여호야김의 이복 형제. 바빌로니아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개명했음. 처음에는
바빌로니아에 충성을 보였으나 후에는 애굽과 연합하기를 원했던
자들의 제의로 대항했음. 느부갓네살이 유다에 군대를 보내어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성을 멸망시켰음. 그때 백성들의
대부분은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유다 왕국은 단지 추억 속에 남게
되었음. 시드기야의 통치 원년에 리하이가 예언했으며,
예루살렘에서 떠나라는 말을 들었음
.(니파이전서 1:4; 2:2 참조)
통치 말인 어려운 기간 동안 시드기야는 절박한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를 투옥시켰음.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는 주님의 백성의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