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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제자의 길에 대한 구주의 가르침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3.

돌아가시기 4개월 전에 구주께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또는 결연히] 결심하[셨다.]”(누가복음 9:5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전에 몇 주 동안,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과 초월적인 영적 사건들에 대비하여 제자들을 신중하게 준비시키셨다. 한 예로, 베드로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간증했을 때 곧바로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말로, 곧 임박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알리셨다.(마태복음 16:13~21; 마가복음 8:27~31; 누가복음 9:18~22 참조)2 예수께서는 또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마태복음 17:1~2) 그곳에서 구주와 모세, 엘리야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신권 열쇠를 부여했다. 모세와 엘리야는 또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며]”(누가복음 9:31)3 예수님을 위로하고 지지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변형의 산 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 지상 성역의 “종막이 시작된 사건”이라고 언급했다.4 이러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을]” 때, 죽음으로 끝이 날 자신의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인지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여정이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누가복음을 보면, 구주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누가복음 13:22)하시는데, 남녀로 이뤄진 제자 무리가 그분과 동행했다고 나온다.(누가복음 11:27 참조)5 예수께서는 함께 걸으시며,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제자 됨의 조건에 대해 가르치셨다. 이 여정의 상황 속에서 주어진 구주의 가르침을 공부해 보면, 구주께서 어떻게 몸소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제자 됨에 대한 가르침을 강화하셨는지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세 가지 반응 구주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이같이 선언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가복음 9:23). 나중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누가복음 9:57)라고 하자 구주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복음 9:58)라고 대답하셨는데, 아마도 이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가 언급했듯이 “그분께 삶이 몹시 고단하셨을” 것이며 그분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도 “흔히 그럴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6 그리고는 주님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누가복음 9:59)고 이르셨는데, 그는 먼저 부친을 장사 지내러 갔다 오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같이 대답하셨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누가복음 9:60).7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하는 것이 잘못이란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교리와 성약 42:45 참조) 그보다는,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제자의 최우선 순위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었다. 세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누가복음 9:61) 이에 예수께서는 쟁기질하는 농부의 비유를 들어 뒤에 놓인 것보다는 앞에 놓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대답하셨다.(누가복음 9:62 참조) 이 사람에게 주신 가르침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 9:51) 뒤를 돌아보지 않으신 구주의 모범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사마리아를 지나시며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예수와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 일부 사마리아인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누가복음 9:53) 아마도 그들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을 유대인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8 그에 대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 하늘에서 불을 내려 무례한 그들을 멸해 주실 것을 구했다.(누가복음 9:52~54 참조)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구주께서는 인내와 관용을 보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타이르셨다.(누가복음 9:55~56 참조) 이 사건이 있고 얼마 후에 구주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0:25~37 참조) 이 비유는 음흉한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을 뿐 아니라 구주의 제자들에게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27; 또한 25~29 참조)는 계명에 예외가 없음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또한, 구주의 제자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와 예수님의 행위에서 비슷한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에게 보인 사랑은 예수께서 최근에 적대적인 사마리아인에게 보여 주셨던 사랑을 잘 나타내었다. 또한, 구주의 제자들은 앞으로 몇 주간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만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누가복음 13:10~17; 14:1~6; 17:11~19; 19:1~10 참조) 도적이 들끓는 위험한 길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의 안녕을 중히 여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자신이 만나게 되는 모든 상처받은 영혼에게 성역을 베푸실 것이었다

구주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주신 가르침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마르다의 집에 들르셨다.(누가복음 10:38 참조) 마르다가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누가복음 10:40) 반면에, 그녀의 자매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다.]”(39절) 유대인 사회에서 환대는 매우 중요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일행을 맞아, 문화적으로 자신이 감수해야 할 손님 대접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려 했던 것 같다.9 비록 마르다가 다른 일화에서는 놀라운 헌신과 신앙을 보여 주지만(요한복음 11:19~29 참조), 이 이야기에서는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누가복음 10:40)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교회 회원들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캐더린 콜만 페리 교수가 브리검 영 대학교 영적 모임에서 전한 말씀을 인용했다. “주님께서 부엌으로 가셔서 마르다에게 음식 장만을 그만 두고 와서 들으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다른 사람의 봉사를 판단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섬기도록 그대로 두셨습니다. … 주님께서 꾸짖은 것은 … 마르다의 자만이지, 음식을 장만하는 분주함이 아니었습니다.”10 이 이야기에서 마르다의 주된 실수는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에게 초점을 두었다는 점인 듯하다. 구주께서는 단지 주님과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마르다를 도와주셨다. 우리는 봉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잊고 우리의 소망과 동기와 행동을 인도할, 주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누가복음 9:24; 교리와 성약 137:9 참조) 제자들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그분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구하며”(교리와 성약 88:67)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자녀들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중에,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후에 구주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을 그냥 두고 구주를 맞으러 감으로써 집중된 신앙을 보여 주었다.(요한복음 11:19~20 참조) 구주께서 제자 됨의 조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시다 예루살렘을 향한 구주의 여정 후반부에 이런 간청을 한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누가복음 12:13)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가진 문제의 근원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 그런 다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가르치셨다.(누가복음 12:16~21 참조) 이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 하신 한 가지 근거는 그 부자의 이기심이었다. 누가복음 12장 17~19절에서 부자는 I(나)와 my(나의)라는 단어(영어 흠정역 성경-옮긴이)를 11번 사용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 보였다.11 그 사람은 이기심에 사로잡혔을 뿐 아니라 자기 부의 원천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구주와는 달리, “소출이 풍성[한]” 것은 “그 밭”(누가복음 12:16)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출이 나도록 땅을 창조해 주신 주님께 감사해하지도 않았다. 본질적으로 그 부자가 정죄받은 근거는 현세적인 양식을 저장한 현명한 처신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영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데 있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했기]”(누가복음 12:21) 때문에 그 부자는 지상에 일시적으로쌓아 놓은 보물뿐 아니라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누가복음 12:33)조차도 결국에는 박탈당하게 되었다. 이생에서 내린 선택 때문에 그는 영생에서 가난하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기 전에 물질적인 소유물을 비축하는 데 골몰했던 그 어리석은 부자와는 반대되게,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과 의지 모두를 포함하여 자신이 가진 것과 존재 모두를 하나님께 본인의 의지로 바치며 자신의 죽음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셨다.(누가복음 22:42; 모사이야서 15:7) 그분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누가복음 12:50). 예수님께서는 이미 물로 침례 받으셨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침례는 그분의 속죄를 뜻한다. 곧 그분은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가실 것이며, 우리의 죄를 위해 고통을 겪고,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과 고난을 대신 경험하실 때 몸이 피와 땀으로 뒤덮일 것이었다.12 후에, 몇몇 바리새인이 예수께 분봉왕인 헤롯 안티파스가 그분을 죽이려 획책할 것이라 경고했으나 구주께서는 다만 계속 사람들을 가르치고, 축복하고, 치유할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실 것임을 단언하셨다.(누가복음 13:31~33 참조) 그분께서는 지상 성역의 마지막 날들을 지난날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보내실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분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먼저, 제자가 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숙고해 보게 하셨다.(누가복음 14:25~28 참조) 그분께서는 그들이 계속하여 제자의 길을 갈 때 겪게 될 힘겨운 현실을 보기 좋게 꾸미길 원치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4:33) 그렇더라도 구주께서는 또한 우리가 자신을 잊고 제자가 되는 길을 나아간다면 그 보답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누가복음 9:24) 구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평화를, 장차 올 세상에서는 영생을”(교리와 성약 59:23) 얻게 되리라는 축복을 포함하셨다. 비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걸어갈 기회는 없겠으나 자신의 삶에서 그 여행을 기꺼이 모방해 보려는 뜻을 나타내 보일 수는 있다.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꺼이 봉사하고 희생하려 하신 그 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가서 … 이와 같이 [행할]”(누가복음 10:37) 힘을 받게 될 것이다. ◼
(케이시 더블유 올슨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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