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21년에 앗수르는 북방에서 진출하여 이스라엘 북왕국을 사로잡고 열 지파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거기서부터 그들은 역사에서 잃어버린 바 되었다. 앗수르 신(앗수르인 판테온[성전]에서 가장 높은 신)의 이름을 딴 앗수르는 메소포타미아 평야에 위치해 있었다. 그 접경 지역으로는 서쪽에는 수리아 사막, 남쪽으로는 바빌로니아 북쪽과 동쪽에는 각기 페르시아와 우랄알타이 산맥이 있었다.(제이 디 더글라스편, 성경 도해 사전, “앗시리아”, 1:137 참조) 오늘날 이 지역은 주로 이라크 국가이다.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거주한 주민들은 수바리아인들로, 후에 수멜인들이 합세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셈족이 들어와 결국 수마리아인들과 수멜인들은 합병되었다. “그들은 수메리아로부터 그들의 공통된 언어와 예술을 채택했으며 후에 그것들을 바빌로니아의 언어와 예술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화시켰다. 그러나 환경상 그들은 바벨론의 안일에 탐닉하지 못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강건한 근육과 용기로 뭉쳤으며, 털투성이의 전사로서 지중해 동편 연안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녔다. 그들의 역사는 왕과 노예, 전쟁과 정복, 유혈의 승리와 갑작스런 패배로 점철되어 있다.”(윌 듀란트, 우리의 동양의 유산, 문명의 이야기, 1:266) 앗수르가 근동 지역에서 무적의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대개 강한 왕들이 나와 나라의 국경을 넓히고 다른 나라를 속국으로 예속시켰기 때문이었다. 앗수르는 기원전 1813년에서 기원전 1781년 사이에 삼시-아다드 치세에 처음으로 독립국이 되었다.(라마르 시 베렛, 성경 세계의 발견, 180쪽) 앗수르 역사상 명성을 떨친 다른 군왕들 중에는 디글랏빌레셀 일세(주전 1115~1077), 아술나실팔(주전 883~859), 살만에셀 삼세(주전 858~824), 삼시아닷(주전 824~811), 디글랏빌레셀 삼세(주전 744~727), 살만에셀 오세(주전 726~722), 사르곤 이세(주전 721~705), 산헤립(주전 704~681), 에셀핫돈(주전 680~669), 아술마니팔(주전 668~627) 등의 왕들이 있었다.(베렛, 성경의 세계, 180쪽 또한 더글라스, 성경 도해 사전, “앗시리아”, 1:139) 이러한 왕들의 치세하에서 앗수르(앗시리아)의 세력은 전성기에 달하여 앗시리아만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아르메니아, 미디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페니키아, 수메리아, 엘람, 애굽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렸다. 이 제국이“지중해나 근동 지역에서 그때까지 있었던 가장 광범위한 행정 조직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하무라비와 텃모세 삼세만이 그에 접근했고,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 있기 전까지는 그에 필적할 만한 세력은 페르시아가 유일했다.”(듀란트, 우리의 동양의 유산, 1: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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