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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파종과 탈곡의 비유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6.

이사야 28:23~29
케일과 델릿츠는“소회향”(이사야 28:25)이 아마 검은
양귀비이며 현대의 커민(대회향)과 같은 것일 거라고
말하면서(25절 참조) 이사야의 비유의 아름다움과 힘을 설명했다.
두 가지 모두 식물의 종자에서 나오는 풀잎으로 향료 식물이다.
“쟁기로 가는 일은 땅을 파헤쳐 밭고랑에서 아래에 있는 흙을
위로 뒤집어 놓는다. 써래질은 흙덩이를 깨뜨려 파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흙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준비할 때만 하는
것이다. 밭고랑의 지면이 고르게 되면 씨를 뿌리고 식물을 심는다.
이 일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해진다.
밀(소맥)은 주의하며 줄대로 파종한다. 즉 나머지 두 가지처럼
아무렇게나 흩뿌리지 않고 고랑에다 주의하여 뿌린다. 그렇지
않으면 자랐을 때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보리(대맥)은 특별히 표시를 하거나 정한 곳에 뿌리고
귀리는 보리밭의 가장자리를 이루도록 가장자리를 따라 뿌린다.
농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에 의한 것이다.
창조하실 때 농업을 세우신 하나님은 또한 인간에게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 27절은 농부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시한다. 농부는 지금도 그 일을 행하고 있다. 낟알이
연한 곡식은 낟알까지 완전히 부수어 버리는 도리깨질을 사용하지
않고 막대기로 두드린다. 빵 만드는 옥수수는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루로 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구를 채운 말이 끄는 타작하는 수레의 바퀴가
전력으로 그 위에서 구르는 경우일 것이다. 들판과 곡식을 다루는
농부가 채택한 하나님의 영감적인 현명한 과정은 거룩한 교사인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다스릴 때 사용하시는 현명한 과정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들판이다.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벌과 응징은 여호와가 땅을 갈고 뒤엎어 들판에 이랑을 만드는
보습과 써래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해서 들판이 부드럽고 매끈하여 한 번 더 곡식을 심을 수 있게
되면 쟁기질의 고통스러운 과정에 이어 수익을 얻는 파종과 식목이
뒤따른다. 다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타작 마당의 자녀가 되었다.
(이사야 21:10 참조)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도리깨질한다.
도리깨질뿐만 아니라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도리깨질은 타작을
한다고 해서 영원히 타작을 계속하시지는 않는다. 즉 카스파리가
잘 설명한 대로 그 국가의 모든 백성을 똑같은 정도로 무섭게
벌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벌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벌 받은 사람들에게서 죄의
찌꺼기가 없어지면 벌을 중지하신다. 나라 자체가 죄 투성이인
가장 사악한 백성만을 벌에 의해 쓸어 없앤다.[이사야 1:25;
29:20~21 비교] 이것은 비유의 장막 속에 가리어진 거룩한
교훈이며 사랑의 위안이다. 여호와가 벌을 주시지만 그것은 축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는 체로 치시지만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자신의 백성들을 도리깨로 떠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시기만 하며,
도리깨질을 할 때에도, 그들은 심판의 시기가 임박하였을 때
자신들을 결코 부수어지거나 상해받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다.”(주해서, 7:2: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