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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진실한 친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8.

1842년 8월, 미주리 주 당국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체포하기 위해 지속
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체포되어 미주리 주로 이송될 경우 살해될 것을
염려한 선지자는 피신을 했다. 8월 11일, 그는 몇몇 충실한 가족들과 친구들에
게 나부에서 멀지 않은 미시시피 강에 있는 한 섬에서 만나자는 기별을 보냈다.
그날 밤, 에머 스미스, 하이럼 스미스, 뉴얼 케이 휘트니 및 그 밖의 사람들이
강가에 모여 작은 배를 타고 지정된 장소로 갔다. 선지자는 기쁜 모습으로 각 사
람과 악수를 나누었으며, 도움과 참된 우정에 감사를 표했다. 이후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장문의 글로 일지에 기록했다. 이 일지 내용
가운데 일부가 본 장에 포함되어 있다. 몇 주 후, 선지자는 성도들에 대한 자신
의 감정을 표현하며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마쳤다. “나는 여전히 너희의
낮은 종이요 결코 변하지 않는 친구니라.”(교리와 성약 128: 25)
성도들은 그를 그들의 선지자뿐만 아니라 친구로 생각하면서 선지자의 느낌
에 보답했다. 조셉 스미스의 친한 친구요 개인 비서인 벤자민 에프 존슨은 이렇
게 회고했다. “친구로서의‘선지자 조셉’은 충실하고 오래 참으며 고결하고 진
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로서 그는 뛰어난 사교적 은사를 타고났으며, 친
절하고 관대하며 웃음과 행복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따금 재미로 친구와 씨
름을 하거나 더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닥에 마주 앉아 발을 맞대고
서로 막대기를 잡고 힘을 겨루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적수가 없
었습니다. 농담, 수수께끼 그림[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들을 사용함], 운을 맞
춰 2행씩 이어가면서 시 짓기 등도 자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좋
아하던 노래를 한 곡이나 그 이상 같이 부르자고 자주 요청했습니다. 그는 이
처럼 사교적이고 때로는 쾌활했지만, 건방지거나 방종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
니다.”
조셉 스미스는 사교성만큼 동정심 또한 많은 사람이었다. 한 젊은이는 이렇
게 기억했다. “저는 조셉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는 집에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울타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셉이 밖으로 나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곧 한 사람이 와서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사는 한 가난한 형제의 집이 지
난 밤에 불타 버렸다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에 대해 안됐다고 했습니
다. 조셉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5달러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형제님에 대해 5달러만큼의 동정심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의 동정심을
느끼십니까?’”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친구들을 매우 사랑했기에, 몇몇 친구들이 자신을 배
신했던 일은 아마도 감당하기에 특히 어려웠을 것이다. 나부에서, 선지자가 신
뢰했던 친구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은 선지자의 충성심에
보답했으며, 끝까지 그에게 충실했다.
그러한 친구들 중 한 사람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윌라드 리차즈로, 그는 조셉
과 하이럼 스미스 그리고 존 테일러와 함께 일리노이 주 카테지 감옥에 수감되었
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들은 아래층에 있는 감방에서 좀 더 편안한 이층 침실
로 옮기도록 허용되었다. 그들이 순교하기 바로 얼마 전, 간수는 수감자들에게
침실 옆에 있는 쇠창살로 된 감방이 더 안전하다고 제언했다. 조셉은 의료일을
했기에 친구들이“의사”라고 불렀던 리차즈 장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감
옥으로 가게 되면, 형제님도 우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의사인 리차즈는 이렇
게 대답했다. ‘조셉 형제님, 형제님은 저에게 함께 강을 건너자고 말하지 않았습
니다. 함께 카테지로 가자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감옥에 들어가자고 하
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제가 형제님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형제님이 혹 반역죄로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대신 교수형을 당하
고 형제님을 풀려 나게 하겠습니다.’조셉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이에 리차즈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조셉 스미스의 생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