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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지자

순교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7.

1843년과 1844년의 겨울과 봄은 조셉 스미스의 적들이 그를 죽이고 교회
를 멸하려고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나부에 큰 긴장감이 감돈 시기였다. 선지자
는 지상에서 자신의 성역을 곧 마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십이사
도 정원회 회원들을 자주 만나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교회를 관리하는 데 필요
한 신권 열쇠를 주었다. 이러한 준비는 1844년 3월에 사도들과 몇몇 다른 측근
들을 만났을 때 절정을 이루었다. 이 특별한 평의회에서, 선지자는 자신이 죽고
나면 교회를 관리하라고 하면서, 그가 이미 그들에게 교회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의식, 권세 및 열쇠를 부여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저는 이 교회를 인도하는 의
무와 책임을 여러분에게 넘겨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책임을 받아들여 당당하게
밀고 나가십시오. 주님께서는 잠시 저를 쉬게 하실 것입니다.”
1844년 6월 10일, 나부의 시장이었던 조셉 스미스와 나부 시의회는
Nauvoo Expositor(나부 익스포지터)와 그것을 인쇄하던 인쇄기를 파괴하라고 명
령했다. Nauvoo Expositor는 선지자와 성도들을 비방하고 나부 헌장의 철회를
요구한 반몰몬 신문이었다. 시 당국은 이 발표가 폭도들의 난폭한 행동으로 이
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시장과 시의회가 취한 조치의 결과로, 일리노이 주 관리
들은 선지자와 그의 형 하이럼, 그리고 다른 나부 시 관리들에 대해 근거 없는
반란 죄를 뒤집어씌웠다. 일리노이 주 토머스 포드 주지사는 그들에게 일리노이
주 카테지에 있는 법정에서 배심원들 앞에 서도록 명령했으며,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다. 조셉은 카테지로 갈 경우, 자신의 목숨이 자신을 위협하는 폭도
들 때문에 큰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폭도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뿐이라고 믿고, 조셉과 하이럼은 목숨을 보존하
기 위해 서부로 떠나기로 했다. 6월 23일, 그들은 미시시피 강을 건넜으나, 그
날 늦게 나부에서 온 형제들이 조셉을 찾아 말하기를 만약 그가 카테지 관리들
에게 투항하지 않으면 군대가 도시를 침공할 것이라고 했다. 선지자는 정부 관
리들과 폭도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라면서 투항하기로 했다. 6월 24
일, 조셉과 하이럼 스미스는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부 시 관리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카테지로 간 후, 다음날 카테지에 있는 군 관리들에게 자진 투항했
다. 형제들이 첫 번째 고소와 관련해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후, 그들은 일리노
이 주에 대한 반역죄로 거짓 고소되어 다시 체포되었으며,

카테지 감옥에 투옥되어 심리를 기다렸다.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 중 선교사로 떠나 있지 않
았던 존 테일러와 윌라드 리차즈 장로는 자진해서 그들과 함께했다.
1844년 6월 27일 오후, 그 몇몇 형제들은 아무런 위안도 받지 못하고 감옥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름다운 테너 음성을 지닌 테일러
장로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곧 노랫소리가 들렸다. “슬픔에 잠긴 나
그네 내 옆을 지나가면서 거절할 수 없는 도움 나에게 간절히 구할 때.” 테일러
장로는 그 찬송가가“우리 모두의 영이 낙담하고 무겁고 침울한 때에 우리가 느
꼈던 감정에 어울리는”곡이었다고 회고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지난 후, 수많은 폭도들이 감옥으로 몰려와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발사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이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었다.
하이럼 스미스가 먼저 총에 맞아 즉사했다. 리차즈 장로는 기적적으로 가벼운 부
상만 입었고, 테일러 장로는 심한 부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구했으며 이후 제3대

교회 회장이 되었다. 선지자 조셉은 창문으로 뛰어갔고 총에 맞아 사망했다. 
복의 선지자와 그의 형 하이럼은 그들의 간증을 피로써 인봉했다.

(조셉 스미스의 생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