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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교사업

침례 요한처럼 복음을 나누라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2.

우 리는 침례 요한과는 달리 “유대 광야”(마태복음 3:1)에서 선교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낙타털”(마태복음 3:4)로 짠 옷을 입지도 않을 것이다. 또 “메뚜기와 석청”(마태복음 3:4)을 먹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나누는 목적은 침례 요한과 같다.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2)라고 외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침례 요한의 사명은 분명했다. “메시야에 앞서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니파이전서 10:7)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교 사업은 쉽지 않았다. 요한 전에 있었던 마지막 선지자는 400여 년 전의 말라기였다. “선지자가 없었던 터라 그 땅의 백성들은 여러 도당과 무리로 나뉘었고 각자가 경전을 해석하고 사람들을 이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집단들 사이에서 여호와에 대한 참된 이해는 점점 희석되었다.”1 침례 요한의 시대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광야로 나와 그가 전파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 후에 사도가 된 두 사람, 즉 요한과 안드레는 침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요한복음 1:40 참조) 오늘날 복음을 나누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렵다. 현대의 생활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트린다. 갖가지 세속적인 철학으로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높은 도덕적 표준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교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침례 요한처럼 복음을 성공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요한의 생애에서 배울 수 있는 다음 몇 가지 교훈이 도움이 될 것이다. 침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도록 돕기 위해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았다.(누가복음 1:16 참조) 구주를 뵙게 된 침례 요한은 이렇게 간증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침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왔다. 침례 요한은 구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복음 3:30). 침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기본 원리를 가르쳤다. 그는 사람들에게 공의, 자비, 정직, 도덕, 금식, 기도회개, 죄의 고백, 침수로써의 침례, 부활 그리고 심판을 가르쳤다.(마태복음 3장; 누가복음 3장 참조) 그의 가르침은 구주의 가르침에 비견할 만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마가복음 1:22). 침례 요한은 세상과 다르게 살았다.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을 세속적인 교사들과 대비해 말씀하셨다. 요한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도] … 화려한 옷을 입고 … 왕궁에 있[는]”(누가복음 7:25)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였다.]”(누가복음 1:15) 침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마가복음 1:3)고 외쳤다. 그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을 느끼고 마음을 돌이켰다. 침례 요한은 온 마음을 바쳤다. 한 학자는 요한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는 일심전력, 특별한 부름에 대한 헌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완전한 충성, 이런 자질과 함께 거룩한 신권 권세, 담대한 성품 및 개인적인 의로움을 갖추어 경전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2 침례 요한의 생애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침례를 주는 독특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생애와 사명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구주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었다. ◼ 주 1. 에스 켄트 브라운 및 리차드 나이첼 홀자펠, “잃어버린 500년: 말라기에서 침례 요한까지”, 리아호나, 2014년 12월호 30쪽. 2. Robert J. Matthews, “John the Baptist: A Burning and a Shining Light,” Ensign, Sept. 1972, 79.
(라이언 카 교회 잡지 2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