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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종교 간 협력을 통해 더 훌륭한 성도가 됩시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8.

교회 지도자들은 자주 회원들에게 종파와 관계없이 진솔한 마음으로 함께
봉사하고 도덕적인 대의에 동참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그러한 모범을 보인다. 최근,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님과 부인인
헤리엇 자매님은 가톨릭 커뮤니티 서비스(Catholic Community Service-가톨릭 지역
사회 봉사단체)에서 주는 ‘올해의 인도주의 상’을 수상했다. 우흐트도르프 회장님은
“지금은 헌신적인 몰몬이 된, 전 루터교 신자 독일인 두 명이 미국 가톨릭계로부터 상을
받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회원들은 타 종파 사람들과 협력하여 봉사하라는 권유를 매우 잘 받아들이고
있다. 후기 성도 와드가 지역 사회의 정원을 가꾸고, 도덕적 가치에 대한 종파 간 회의를
열고, 타 종파 사람들과 지역 사회를 청소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감명을 받는다.
타 종파 사람들과 함께 봉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는 십이사도 정원회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의 권유가 참됨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타인에 대한 존경심으로 행하는,
진실한 종파 간의 봉사를 통해서 우리는 지역 사회를 건설할 뿐 아니라, 우리 모두 혹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에 대해 더 큰 사랑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더 좋은 세상 만들기
몇 년 전, 우리 동네로 이사한 장로교 목사 한 분은 자신의 교회 신도뿐 아니라 모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했다. 후기 성도가 밀집해 있는 우리 동네에서 그녀는 친절하게
이웃을 돕고 파티에 초대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와 친해지려 노력했고, 와드
회원들도 그녀의 교회 봉사 활동에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다양한 종파의이웃들은 기부 행사를 열어 의료비가 절실한 후기 성도 가족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십이사도였던 올슨 에프 휘트니(1855~1931) 장로는 이렇게 말씀했다. “하나님은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위대하고 놀라운 사업을 이루[십니다.] 그 일은 한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힘[듭니다.]” 선한 사람들이 합심할 때 위대한 일이 성취될 수 있다. 이웃 목사의 노력으로 지역 사회 종파 간 위원회가 발족되었고, 우리 스테이크 상호부조회가 포함된 여성 회의가 열려, 난민 구호기관에 위생 키트와 책을 보내는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종파 간 연합으로 스테이크 회원들은 수많은 난민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다른 교회가 노숙자 쉼터에서 일할 자원봉사자들을 필요로 했을 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우리는 다른 교회 및 조직과 함께 협력할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인도주의 봉사를 능가하는 축복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미국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전한 연설에서 십이사도 정원회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은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열린, 후기 성도와 기독교 복음주의파 사이의 담화를 언급했다. 한 저명한 신학자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일부 사람들이 몰몬의 신앙에 관해 잘못 이야기한 것을 사과한 것은 그 회의에서 얻은 성과 중 하나였다. 이러한 관계 강화 노력에 대해 홀런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하늘의 섭리가 일부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관계 만들기
사람들과 함께 봉사할 때 특정한 지침을 따른다면, 더 의미 있는 상호 교류를 할 수 있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도 피할 수 있다. 대도시에 살 때 나는 그 지역의 교회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부방 프로그램에 자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쪽 책임자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경험으로 나는 상대방의 종교에 관계없이 (혹은 종교가 없어도) 그 사람이 하는 공헌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나는 우리 교회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준다. 또한 후기 성도는 우리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나 우리와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의 개종을 기대하지 않고서 이웃을 사랑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배고픈 자를 먹이며, 옥에 갇힌 자를 방문하라는 예수님의 권고(마태복음 25:34~36 참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진솔하면서도 존경심이 담긴 종파 간 상호 교류를 위해서, 우리를 포함해 그 누구도 서로의 믿음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아무 교회와도 대적하여 다투지말[고]”(교리와 성약 18:20) “사랑의 띠로 [자신의]
몸을 [둘러야]”(교리와 성약 88:125) 할 것이다.
후기 성도가 밀집한 지역에 사는 어느 현명한 스테이크 지도자는 또 다른 훌륭한 지침을 주었다. 그는 타 종교 사람들과 함께 봉사할 때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지도자 위치를 독점하여 “독차지하지” 말고, 협의하여 일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동등한 특권을 누리게”(교리와 성약 88:122) 하라고 권고했다.
타 교회와 교류해 본 경험이 많은 이 지도자는 또한 회원들에게 타 종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권했다. 그는 후기 성도들과 함께 일한 몇몇 사람들이 후기 성도는 근면하고 좋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우정을 나누기보다는 일을 마치는 것에 더 열중한다고 느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지역 사회와 교육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합당한 사명 아래 단합할 때 강한 영이 임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형제애와 순수한 동기는 근면보다 일을 더 잘 진척할 수 있다.
종파 간 학회에서 한 후기 성도 연사는 다른
종교 사람들과 관계를 쌓았을 때, 그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에서 몰몬이즘에 대한 세미나를
가르치는 비회원 학자가 있는데 그녀는 학생들이
우리 교회에 관해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몰몬교를 사이비 종교로
배우며 컸지만, 몰몬 친구들과 동료들은 그들이
생각해 왔던 바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함께 봉사할 때,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도 그들에게서
배우게 되고,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교리와 성약 1:35)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분은 모든 종교와 문화권에 속한
선한 사람들이 그분 자녀들의 삶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선함을 발견할 때,
예수님이 영적으로 교만하다고 꾸짖은
바리새인(마태복음 23장 참조)이나, 앨마서에서
배타적이고 교만하다고 묘사된 조램인(앨마서31장 참조)과는 달리,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선한 면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궁극적으로는 이웃과 우리의 적들에게까지
사랑의 손길을 뻗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에서 미군으로 복무한 한 교회 회원은
일본 사람들에 대한 미움 때문에 힘들어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신사(神社)로 반갑게 맞이했던 때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의 영혼이 제 영혼에 감동을
줬고 그들을 바라보는 제 감정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미움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신사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제 감정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로
따뜻하게 맞이할 때 그들 또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브리검 영 대학교 졸업생인
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는 후기 성도 학생에
대해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경계심을 기사로
썼다. 하지만 의미 있는 우정을 쌓고 난 후,
그녀는 이와 같이 인정하게 되었다. “후기 성도는
하나님이 인류와 가까운 분임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함만을
기억하려 했지 그분과 내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는 간과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전한 연설에서 홀런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에
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새로운 통찰은 늘 기존의 관점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우리의 세계관을 얼마간
재고, 재정리,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타 종교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서 나는 종종
서로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교리적인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를 구별하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이 주는 유덕하고 사랑할 만한
모든 것을 인정한다. 정말 그러한 노력은 때로
위험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나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피상적인 문화적 전통을 벗어던지고 복음의핵심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갔다.
몇몇 후기 성도들은 내 목사 친구를 초청해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라는 주제로 말씀을 부탁했고, 그녀는 참석자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줬음을 느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는 나를 포함해 몇몇 후기 성도들을 초청해 똑같은 주제로 다른 신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부탁했다. 모임 후, 그 신도들은 내게로 몰려와서 말을 걸고, 안아 주었으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홀런드 장로님의 다음 결론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람들의 피부색, 인종, 사회 계층, 교회나 회당이나 사원 너머, 또는 신조와 신념을 담은 선언서 너머를 바라볼 때, 또한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즉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보려고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뭔가 훌륭하고 값진 일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인도되는 것입니다.” ◼
글쓴이는 미국 유타에 산다.
(베시 벤덴버그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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