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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죽음의 시간에 오는 위안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7.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의 딸 루시 그랜트 캐논은 이렇게 썼다. “병고
와 죽음의 시간에 아버지가 보여 주신 꿋꿋함은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남
동생이 [일곱 살 된 히버 스트링햄 그랜트] 1년이 넘도록 병석에 누워 있을
때, 특히 마지막 몇 개월 간 자주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그의
침대 곁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가급적이
면 그의 방에서 그와 함께 있으려 하셨으며, 그가 죽게 되었을 때 지상에서
그분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아들의 죽음
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절대적이었던 아버지의 훌륭한
신앙은 우리 모두의 삶에서 힘과 지주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관해 말씀할 때, 그랜트 회장은 자신의 경험
으로 인한 감정 이입으로 말씀을 전했다. 자신의 아들 히버 외에도 직계 가
족 중에 다른 여섯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상에 태어난 지 9일
만에 부친을 여의었다. 1893년에는 아내 루시가 3년간 심한 병고와 싸운
끝에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에는 그에게 남아 있던 다섯 살
된 유일한 아들 다니엘 웰즈 그랜트가 죽었다. 1908년, 그랜트 회장과
그의 아내 에밀리가 유럽에서 선교 사업을 마친 직후 에밀리도 위암으로 목
숨을 잃었다. 일 년 후에는 그의 어머니도 별세했다. 1929년, 그가 회
장으로 성별된 지 11년이 되었을 때, 딸 에밀리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랜트 회장은 그들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다. 아내 루시가 병들어 있는
동안 그는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내는 회복될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오
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앞으로 닥쳐올 작별에 대해 둘 다 눈물을 흘
렸다. 나는 그녀가 더 살 수 없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랜트 회장은 복음의 진
리에 의지하는 가운데 희망과 평안을 찾았다. 그는 충실한 성도의 장례
식에 참석할 때“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슬픔과 죽음의 시간에 우리
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에 대해”주님께 감사하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 히버가 죽었을 때 경험한“위안과 위로”를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죽었을 때, 복음과, 복음
이 우리 마음에 가져다주는 평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하는 평안과 위안과 기쁨이 우리 가정에 있었습니다.”

영원한 진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무덤 저편에서 영원한 밤과 망각이 시작된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은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그렇게 믿는 사람
들에게 죽음이란 쏘는 고통과 무덤의 승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영광이 영원한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촛불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중단했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덤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
쁨과 사귐을 누리는 것에 기뻐합니다.
우리는 언제 닥치게 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
다. 제 자신의 경우, 어머니의 건강이면 적어도 백 세까지는 사실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2년이나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았습
니다.
저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과 구원의 계획에 대해 감사하
지만 막상 이러한 [장례]와 같은 때를 당면할 때면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갖고 있는 완전하고 절대
적인 지식은, 우리가 충실했을 경우,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쁨과 특권을 갖게 된다는 것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우리의 구속주, 예언자 요셉 스미스, 축복사 하이람과 이 대
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위대한 사람들과 사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려 주며, 우리 마음에 어느 누구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행복을 가
져다줄 것입니다.7

성도에게 죽음이란 우리의 가정과 마음에 슬픔을 가져다주지만 그 슬
픔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교 지역으로 떠나거나 잠시 멀리 떠날 때 일시적
으로 헤어지면서 느끼는 것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진리를 모르
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그 무서운 고뇌는 참된 성도의 마음속에는 결
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문제가 올 때,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그들이 겪는 슬픔을 덜어
줄 수 없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고쳐 주시고
슬픔을 걷어 주신다는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함으로써 오게
되는 축복을 기쁨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계
속해서 살아야 하며, 이 필멸의 육신이 무덤에 뉘어질 때라도 우리의 존재
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임을 이해하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회의적인 생각과 불신이 크지만, 주
님의 섭리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신 계시로 우리의 영과 육은 때가
되면 결합된다고 하는 확신을 갖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세
상의 회의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통해, 이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영과 육이 영원히 결합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자비
로 인해 더 이상 슬픔이 없고, 어렵고 힘든 모든 것들을 극복하며, 기쁨과
평안과 만족함으로 충만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면전에 서게 될 날이 오
리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손길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일 때 우리를 강화시켜 주신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둘 밖에 없는 아들이 모두 죽
어 이 세상에서 저의 후사가 끊어져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복음은 처진 마음을 고양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아들을 모두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음 가운데 추호의 불평도 없었으며 누구를 탓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복음에는 살았든 죽었든, 기쁨과 슬픔 가운
데, 번영할 때와 역경에 처했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
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주님은 만사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인정하
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교성 59:21 참조]10
저는 [아들] 히버가 죽었을 때의 경험을 통해서 제게 평안과 위안을 가져
다준 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영이라는 절대적인 지식에 대해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애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는 막내이자 유일하
게 살아 있던 아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저는 그가 성취할 것이
라고 기대한 것에 대해 큰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될 것을 기대했으며, 세상에서 선을 위해 힘
있는 자로 살아갈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걸었던 이러한 모든
기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님의 축복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가 죽
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제게 이러한 평안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부여 받
은 능력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감사의 감정으로
제 마음을 채우지 않고서는 결코 그것을 말할 수도 쓸 수도 없습니다.
충실한 사람의 죽음은 참된 위안을 주는 것인 만큼 훌륭한 영의 영감을
잃는 것에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도록 합시다. 영
생은 훌륭한 보상으로서 우리가 의롭게 행할 경우 우리의 것이 되며, 그렇
게 될 때 우리를 환영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쁨도 클 것입니다. 이생
에서 사람이 의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위한 것일 때 그 기도를 듣고 응답
해 주시며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온 마음을 다
해 그를 섬기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며, 잊으신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아버지여,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을 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첫 번째 아내가 죽음으로 제 곁을 떠났을 때,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녀의
죽음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제 자녀 가운데 한 명에게 그
녀의 어머니가 죽은 것이 주님의 뜻이었다는 간증을 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
다고 여기셨습니다.
아내가 숨을 거두기 약 한 시간 전에 저는 아이들을 방으로 불러 놓고 어
머니가 곧 임종할 것이니 작별 인사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12세 된 어린 딸
아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면 안 돼요. 전 여섯 달 동
안 아빠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병원에 있었어요.  아빠는 엄마가 아플 때
마다 축복해 주셨고 그러면 엄마는 고통을 잊고 조용히 잠드셨잖아요. 엄마
머리에 손을 얹고 엄마를 낫게 해 주세요.”
저는 어린 딸에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기 마련이며, 엄마의 때가 다 되
었다는 것을 마음속에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애와 다른 아이들은 방에
서 나갔습니다.
저는 그 때 아내의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그 때 아내는 의식이 없었
습니다)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 기쁠 때나 슬플 때, 부유할 때나 역경에
처했을 때 주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겠다고 그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
분께 아내가 영원히 제게 속해 있다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회복
되고 지상에 있는 신권의 권세와 권능으로 그녀가 충실했던 것처럼 저도 충
실할 경우 아내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으며, 또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신 데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를 평안히 잠재우고, 또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식으로 어린 자녀들의 신앙에 영향을 주게 될 힘이
부족하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린 딸아이가 엄
마의 죽음이 바로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아내는 숨을 거두었고, 저는 아이들을 다시 방으로 불렀습
니다. 다섯 살과 여섯 살 된 아들들이 슬프게 울었고, 열두 살 난 딸아이는
그 우는 동생들을 팔로 안고 있었습니다. 그 애가 말했습니다. “울지 마, 히
버야, 우리가 이 방에서 나설 때 하늘로부터‘너희 어머니가 죽는 것은 주
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말하는 음성을 듣게 될 거야. ”
저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고통
의 시기에서도 성도는 보통 사람이 받을 수 없는 위로와 축복과 위안을
받게 됨을 알았습니다.


죽음은 지상에서 겪어야 할 필수적인 부분이며
영원한 진보의 한 단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평안과 위로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고통을 견뎌야 하는 모든 이에게 치유의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을 받
는다는 것이 항상 인생에서 실망과 어려운 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가 강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문제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저
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과 똑같은 시련을 겪지는 않았지만 저도 충분히
제 몫을 겪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내와 둘밖에 없는 아들을 모두
잃었을 때, 저는 진지하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했
으며, 저의 식구들과 저는 지혜의 말씀을 준수하고 있었으므로 생의 축복들
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혹한 시련과 시험을 겪었지만 그 시련
과 시험이 제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음
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온 마음을 다해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 이상으로 견디어 내기 어려운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영원을
통해 과거로 이어지는 생활을 했으며, 영체로 살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준
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첫째 지체를 지킨 우리는 지식과 지
혜와 경험을 얻고, 교훈을 배우고, 고통을 겪고, 유혹을 견디고, 육신의 승
리를 얻고, 그런 다음 육신이 생명을 포기할 때, 우리의 영은 이 세상에 오
기 전처럼 영의 생활로 돌아가고, 그 후로 계속해서 첫 번째 영의 생활 즉
첫째 지체의 성취를 이룰 것이며, 지상 생활, 즉 둘째 지체의 성취를 주님
께서 정하신 다음과 같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영원히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히버 제이 그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