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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앙·간증

고난에서 강인함으로-멕시코 성도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7.

1945년 11월 6일, 기도의 응답으로 멕시코 후기 성도 중 첫 번째 일행이 모국어로 성전 의식을 받기 위해 애리조나 메사 성전에 도착했다. 당시 몬테레이 지부 회장이던 호세 가르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조상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려고 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희생을 치른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한 희생은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희생을 기쁘게 여깁니다.”
가르시아 회장과 성전에 도착한 사람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회복된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초기의 멕시코 후기 성도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다.

 

기초를 놓음
산과 사막, 밀림과 멋진 해안선이 있는 땅, 고대 멕시코는 아름다운 성전과 도시를 세웠던 백성들의 고향이었다. 수 세기에 걸쳐 멕시코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신앙과 기도라는 강한 기초를 닦았다.
성도들이 유타에서 교회를 세우는 동안 멕시코인들은 교회와 주를 분리하는 새로운 헌법 제정을 포함하여 사회를 재편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최초의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 메시지가 멕시코에 전해진 해는 1876년이었다. 선교사들은 몰몬경에서 발췌한 부분들을 들고 다녔으며, 이를 멕시코의 저명한 지도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곧 침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1881년 4월 6일에 열린 교회의 특별 대회 중에 지부 회장이었던 실비아노 아르티가 회장과 몇몇 일선 지도자들 및 모지스 대처(1842~1909) 사도가 포포카테페틀 화산의 언덕에 올랐다. 그런 후 대처 장로는 복음 전파를 위해 그 땅을 헌납했다.
그 대회에서 아르티가 회장이 기도를 했는데, 대처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자기 종족과 백성의 구원을 간구하는 동안 주름진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간구하는 모든 것을 영으로 이해하는 듯이 느껴졌다.”
같은 기간에 그 지역에는 몇 개의 지부가 세워졌다. 이달고 주에 사는 연로한 미망인 데시데리아 야녜즈는 팔리 피 프랫의 소책자 A Voice of Warning(경고의 음성)에 관한 꿈을 꾸었다.그녀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책자를 구해 오도록 아들을 멕시코시티로 보냈다. 그녀는 1880년에 교회에 가입했으며, 멕시코에서 교회에 가입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 이후로 멕시코에는 수십 년에 걸친 혁명과 핍박, 빈곤과 소외 속에서도 충실함을 유지하며 살아간 교회 회원들이 많았다.


충실한 개척자들의 모범
이러한 충실함의 한 예를 1907년에 조직된 산 페드로 마티르의 지부에서 볼 수 있다. 초기 회원들은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새로 침례받은 회원인 아구스틴 아로가 지은 벽돌집에서 모임을 했다. 그는 지부를 감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최소 백만 명의 멕시코인이 목숨을 잃은 멕시코 혁명 기간에 많은 성도들이 전쟁터가 된 그들의 주를 떠나 산 페드로로 피난을 왔다. 산 페드로의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동정 어린 봉사로 난민들을 돌보았다.회원들은 또한 레이 엘 프랫과 같이 헌신적인 지도자들 덕분에 축복을 받았다. 그는 1907년 멕시코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받은 이래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직에서 봉사했다. 그는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교회의 기초를 강화하는 동안 그는 사랑과 신뢰를 얻었다. 멕시코인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려는 프랫 회장의 노력이 특별히 더 빛을 발한 것은 1926년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에서 외국인이 교회 신도들을 감리하지 못하게 하는 진행

법을 시행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시기에 일단의 회원들은 더 써드 컨벤션(Third Convention)이란 조직을 만들어 지도자들을 부르고 교회당을 짓기 시작했다.


기초 위에 세움
아웰 엘 피어스는 1942년에 멕시코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치와와에서 자라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봉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피어스 회장은 성도들을 가르치고, 강화하고, 단합하게 하면서 사랑과 이해로 봉사했다. 그는 또한 더 써드 컨벤션 조직 구성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께 노력했다.
피어스 회장의 목표 중 하나는 성도들이 성전에 가도록 돕는 것이었다. 1943년에는 더 많은 회원이 성전 축복을 받도록 도우려는 노력이진행되었다.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이었던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장로는 미국 애리조나의 교회 지도자들과 만난 후, 이렇게 말씀했다. “성전 의식에 영어만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칠십인 정원회의 앙투안 알 이빈스 장로와 교회 번역부의 에두아르도 발데라스는 성전 의식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도록 부탁받았다. 이 번역으로 다른 나라에 세워질 성전에 선례를 마련하게 되었다.
애리조나 메사 성전에서 스페인어로 성전의식이 진행되었고, 조지 앨버트 스미스(1870~1951) 회장이 1946년에 멕시코 성도들의 단합을 위해 멕시코를 방문하자 교회는 이전 세대들의 상상 속에만 있었던 방식으로 성장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나라 곳곳에 새로운 선교부와 스테이크가 생겼고, 교회가 후원하는 학교들은 교육을 장려했다.
교회는 1964년에 미국 공로 교육 센터(El Centro Escolar Benemérito de las Américas-교회 소유의 고등학교)를 헌납했다. 이 학교는 회원들의 교육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 열린 이 대회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라며 입을 모았다.
멕시코의 1970년대는 역동적인 성장의 시기였다. 1970년에 멕시코에는 약 7만여 회원이 있었는데, 1979년에는 그 수가 거의 25만 명에 이르렀다. 지역 대회가 있고 3년 후,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한 주 동안 기존의 세 개 스테이크를 15개로 분리하고 많은 젊은 멕시코 회원들을 지도자로 불렀다.사회적 영적 필요를 충족하고 지도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으며, 2013년에는 선교사 훈련원이 되었다. 이 학교를 졸업한 로레나 고메즈 알바레즈 자매는 말한다. “그곳에서 저는 재능을 찾고 키울 수 있었어요. 제 삶에 축복이 된 복음에 대한 바탕과 지식을 얻게 되었죠. 이제 이곳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돕고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축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성장의 시대
1972년에 열린 멕시코시티 지역 대회는 교회의 성장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회원들은 해롤드 비 리(1899~1973) 회장과 그의 보좌들, 여러 사도와 다른 지도자들의 말씀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했다. 태버내클 합창단이 그곳에서 공연하여 영적인 잔치의 이 시기 동안 선교 사업도 확대되었다. 1879년에 공식적으로 설립된 멕시코 선교부는 1956년에 두 개로 처음 나뉘었는데, 현재 멕시코에는 34개의 선교부가 있다. 1980년대에 멕시코시티 북 선교부에서 봉사한 호르헤 사모라 형제는 그 성장을 목격했다. 그는 회원들이 교회까지 한 시간을 걸려 가야 했던, 선교부 내의 한 지역을 기억한다. 이제 그곳에는 스테이크가 들어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라와 문화에 관계없이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하시는 방식이 놀랍기만 합니다.”


온 땅에 성전이 퍼져 나가고
멕시코의 회원들은 성전의 구원 의식을 사랑하고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많은 시간과 금전적인 희생을 마다 하지 않는다.대처 장로가 선교 사업을 위해 그 땅을 헌납한 지 100년이 갓 넘었을 때 멕시코시티에 성전이 세워졌다. 1983년에 거행된 성전 일반 공개 때 수천 명이 성전을 다녀갔으며,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알아보려 하면서 교회는 더욱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30년이 채 못 되어 온 나라에는 11곳의 성전이 더 헌납되었으며, 한 곳은 현재 공사 중에 있다.
탐피코에서 자란 이사벨 레데즈마는 부모님이 애리조나 메사 성전에서 인봉 받은 때를 기억한다. 그녀는 “애리조나까지 가는 데는 이틀이 걸렸고 경비도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한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성전이 헌납되자 성전까지 가는 시간은 차로 열두 시간밖에 안 걸리게 되었지요. 이제는 성전이 탐피코에 있어서 자주 갈 수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멕시코 오악사카 성전 회장으로 봉사한 림하이 온티베로스는 말한다. “복음에 대해 깊고 변치 않는 간증을 가진 사람들은 거리와 경제적인 면에서 부담이 되더라도 성전에 올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들은 성전을 피난처의 불빛으로 생각하죠.”
레데즈마 자매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도시에는 영이 필요한데 이곳의 성전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나 슬플 때 성전이 가까이 있기에 그곳에서 평안을 찾습니다.”

역경을 이김
멕시코의 회원들 또한 보편적인 어려움과 유혹에 처하지만 그들은 자신과 동료 성도들이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안다. 경제적 상태나 사회적 지위는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멘데즈 가족은 멕시코 남부의 도시 오악사카에 가까운 작은 산골 마을에 산다. 그들은 “시간, 재정, 거리 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구주께서 우리가 하기를 바라시는 일을 하려는 의지가 있기에 어떤 장애든 극복하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열다섯 살인 곤잘로 멘데즈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이 도사린 곳에 살면서 유혹을 이겨 내는 건 매우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기도의 도움으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증인으로 당당히 서 있지요.”

미래를 내다봄
멕시코에 복음이 뿌리 내린 지는 오래되었지만, 교회에는 아직도 발전 중인 부분이 있다. 열다섯 살인 하이메 크루즈와 그 가족은 오악사나 시 위의 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유일한 교회 회원이다. 하이메와 친구 곤잘로는 주중에 세미나리 가정 학습 과정을 공부한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에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예배당에 가서 와드의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세미나리 수업에 참석한다. 하이메는 세미나리에서 배운 것들을 급우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집사인 하이메의 동생 알렉스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알렉스는 나쁜 말을 사용하지 말라거나 부적절한 옷을 입지 말라고 친절하게 말하면 친구들이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다고 말한다. 하이메와 알렉스는 모두 신권을 소유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며, 그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하이메는 “청남들에게 신권이 주어진 것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저는 알아요.”라고 말한다.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최근에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칸쿤 시의 세 개 스테이크에서 온 청소년들을 만났다. 청소년들과 만났던 시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눈에서 빛을, 얼굴에서는 희망과 꿈을 보았습니다. 저는 멕시코의 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샐리 존슨 오드커크 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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