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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주님의 집·성전

마마 세피의 성전 여행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7.

1940년대, 하루는 멕시코 선교부 사무실에 있는데, 멕시코시티에서 남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활화산인 포포카테페틀 발치의 작은 마을 오줌바에서 한 자매님이 찾아오셨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마마 세피다.
그녀의 작은 토담집은 전임 선교사들이 숙소로 묵는 곳이었고, 그녀는 항상 선교사들을 위해 방을 비워 두었다. 키가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마마 세피는 오줌바 근처 마을들의 장터에서 과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마을마다 장날이 달랐지만, 그녀는 장터마다 다니면서 과일을 팔았다.
선교부 사무실에 들어선 그녀는 큰 밀가루 포대를 들고 있었다. 포대에는 그녀가 수년간 모아온 0.5페소짜리 은전인 토스톤이 가득했다. 어떤 동전은 1884년부터 1911년까지 멕시코를 통치했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시대에 나온 것이었다. 마마 세피는 그 돈 자루를 들고 오줌바에서 선교부 사무실까지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그녀는 아르웰 엘 피어스 회장님께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기 위해 솔트레이크 성전까지 갈 차삯을 오랜 세월 모아 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출국 허가를 받았고, 한 선교사가 그녀에게 여행 가방을 빌려 주었으며, 우리는 그녀를 기차역에 데려다 주었다. 피어스 회장님은 텍사스 엘패소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하여 기차가 미국 국경을 지나면 마마 세피를 만나 솔트레이크시티행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게 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스페인어 지부 회원들은 버스 터미널에서 그녀를 맞아 주었고, 숙소를 제공하고, 성전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몆 주 후에 마마 세피는 멕시코시티를 거쳐 오줌바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안전하게 긴 여정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장터에 나가 과일을 팔았다.
마마 세피는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엘패소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 버스를 타고 여러 날을 여행하는 동안 음식 주문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영어로 “애플파이”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식사 시간에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애플파이를 시켰다고 했다.
아는 영어는 그것뿐이었기에 그녀는 버스를 타고 미국 지역을 오가는 동안 애플파이만 먹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마 세피는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그녀는 성전에서 보낸 시간들에 감사해하며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
(베티 벤트라, 미국 유타 2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