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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잘 견디십시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7.

구원의 계획은 훌륭한 계획이며, 그 계획에는 때때로 도중에 발생하여 우리의 희망과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누구나 위기에 직면합니다.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큽니다.작은 위기는 붐비는 도로에서 차에 기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위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심각한 사고, 또는 가족의 비극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위기들은 하나님의 율법이나 사람이 정한 법에 불순종하여 우리 자신이 초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오는 위기들도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불규칙 바운드”라고 부를 만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구기종목 경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규칙 바운드를 압니다. 그것은 경기의 일부입니다. 불규칙 바운드의 규모나 빈도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훌륭한 선수는 불규칙 바운드를 인생의 일부로 인식하고 신앙과 용기로 삶을 지속해 나가려 합니다.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고자 하는 소망에 충실하기 위해 우리는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계속 묵묵히 헤엄쳐 나가며
제 외동딸 린지가 어렸을 때, 린지와 저는 함께 영화를 즐겨 보았습니다. 함께 즐겨 보았던 영화 중 하나는 니모를 찾아서라는 만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니모는 스쿠버 다이버에게 잡혀서 치과 병원의 어항에 갇히게 됩니다. 니모의 아버지 말린은 니모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말린은 도중에 도리라는 물고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니모를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연이은 장애물에 부닥칩니다. 장애물이 크든 작든, 도리가 말린에게 전한 이야기는 똑같았습니다. “그저 계속 묵묵히 헤엄쳐 나가세요.”
수년 후에 린지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선교 사업은 힘든 일입니다. 실망도 많습니다. 매주 저는 이메일 말미에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그저 계속 묵묵히 헤엄쳐 나가거라. 사랑하는 아빠가.”
린지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심장에 구멍이 있고 다운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매우 힘든 시기 동안 저는 이메일을 쓸 때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저 계속 묵묵히 헤엄쳐 나가거라.”
우리 모두의 삶에는 장애물들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묵묵히 헤엄쳐 나가야만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경전 구절 가운데 하나는 교리와 성약 121편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절망의 심연에서 해의 왕국만큼 높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훌륭한 구절입니다. 이 편과 122편, 123편은 조셉이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이 위대한 계시들을 더 잘 이해하려면, 그 계시들이 주어진 배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조셉과 그를 따르는 몇몇 사람들은 1838년 12월부터 1839년 4월까지 미주리 주 리버티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은 난방이 되지 않았고 음식은 거의 먹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흙바닥에다, 천정은 너무 낮아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한편, 성도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고 있었습니다. 이 격변의 시기에 릴번 더블유 보그스 주지사는 악명 높은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조셉은 이렇게 묻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어디 계시나이까? 또 당신께서 숨으신 곳을 가리는 장막은 어디 있나이까?”(교리와 성약 121:1) 이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모로나이, 침례 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외에도 여러 번 하늘의 방문을 받았던 바로 그 조셉 스미스입니다. 1절에서 질문한 다음 곧이어, 조셉은 자신의 답답함을 표출합니다.
“당신의 분노가 우리의 원수를 향하여 불붙게 하시고 또 당신 마음의 맹렬한 분노 가운데 당신의 검으로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오 우리 하나님이시여,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의 성도들을 기억하시옵소서. 그러면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영원토록 기뻐하겠나이다.”(5~6절)
주님은 조셉의 토로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내 아들아, 네 영혼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역경과 네 고난은 잠시뿐이리니”(7절)
그런 다음 그분은 조셉에게 훌륭한 원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러고 나서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내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요, 너는 너의 모든 원수를 이기리라.”(8절)
이 메시지는 단도직입적이고 간단명료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도 항상 충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제거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우리가 잘 견딘다면 축복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10절에서 조셉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는 아직 욥과 같지는 아니하니, 네 친구들은 욥의 친구들이 그에게 한 것같이 너를 대적하여 논쟁을 벌이지 아니하며, 네게 범법을 지우지도 아니하느니라.” 욥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든, 우리는 다음 사실을 배웁니다. “인자는 그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갔었느니라. 네가 그보다 크냐?”(교리와 성약 122:8)
122편은 121편을 보완합니다. 저는 그것을 -ㄹ지라도(if) 편이라고 부릅니다. 그 편에는 -ㄹ지라도(if)라는 단어가 15번 나옵니다. 예를 들어 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환난 가운데를 지나도록 부름을 받을지라도, 네가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 위험에 처할지라도, 네가 도적 떼 가운데서 위험에 처할지라도, 땅이나 바다에서 위험에 처할지라도”(교리와 성약 122:5).
그 어려움들을 현 세상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들로 대체한다면, 아마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가족이 죽을지라도, 내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나를 버릴지라도, 재정적인 부담이 있을지라도, 내가 똑똑하지 않을지라도”
-ㄹ지라도를 붙여 이러한 것들을 먼저 언급하신 후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또는 딸아], 이 모든 일이 네게 경험이 되고 네 유익이 될 줄 알라.”(7절)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은 결국 도움이 되며 심지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의 능력 안에 놓여 있는 모든 일을 기쁘게 행하자. 그러고 나서 우리가 최대한의 확신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그의 팔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라노라.”(교리와 성약 123:17)
인생은 장애물로 가득하며, 어떤 것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리고 충실하게 그것들을 견뎌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결국 돌아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구주의 모범
우리가 아는 가장 위대한 인내의 모범은 바로 구주의 생애입니다. 속죄는 그분이 모든 것보다 낮게 내려와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의 완전한 삶을 바치도록 요구했습니다. 모든 것보다 낮게 내려오신 그분은 모든 인류의 불행과 죄를 위해 다음과 같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19:18) 예수님은 자신에게 요구된 것이 무엇인지 아셨으며, 지극히 인간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그렇지만, 그분은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모든 것을 견디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에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현재 제가 소유하고 있는 사업체는 거의 60년 전에 제 아버지께서 창업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서른 살이었던 저에게 회사의 운영권을 남기신 채 1980년에 돌아가셨습니다.그 초창기 시절의 상황들로 인해 저는 우리의 연약한 사업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결정들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하셨을 법하게 해내고자 열심히 일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모든 결정을 내리면서 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떠한 영향력이나 인도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결국 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했고, 그렇게 전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제 행동에 대한
어떤 확신도 얻지 못한 것으로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오셨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도록 도와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그분께 원망 섞인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제 상황을 아셨지만, 자신이 계신 곳에서 바쁘셨고, 이전의 사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크리스, 이곳에서는 사업에 대해 그리 상관하지 않는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네 사업으로 네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지.”
그것은 제가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은 위대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얻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에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때로 우리는 전세에서 우리가 도덕적 선택의지에 대한 아버지의 계획을 지키기 위해 구주 옆에서 싸웠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승리했었습니다!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들은 추방되었으며, 우리는 우리가 싸워서 쟁취한 이 삶을 경험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계획에는 속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우리의 일은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을 잘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속죄는 우리의 삶에서 의미를 갖게 되며,우리는 주님의 일과 영광, 즉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것”(모세서1:39)을 성취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간증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이시며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옹호하는 대변자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충실하고 끝까지 견딘다면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해 주시리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

(크리스토퍼 제이 랜싱 장로 북미 북동 지역 지역 칠십인 2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