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대관장의 성역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의 우주 시대 여명기에 있었
던 용감한 우주 비행과 시기를 같이 한다. 1970년에 사고로 인해 아폴로 13호
에 탑승했던 우주 비행사들이 어쩔 수 없이 예정보다 일찍 달에서 지구로 돌아
오게 되었을 때, 리 대관장은 그 비행사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오는 데 요구
되었던 지시들과 적절한 행동들에 세심하게 주목하고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는 이 경험에서 필멸의 세계를 거쳐 하늘 본향에 이르는 우리의 여행을 완수하
는 데 필요한 신앙과 순종 사이의 유사성을 보았다. 1970년 10월의 연차 대회
말씀에서, 그는 아폴로 13호 아쿠아리어스 호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우리가 따
르도록 주님께서 계획하여 놓으신 길을 지켜가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리 대관장의 메시지는 이 필멸의 여행의 궁극적 목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
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메시지는“우리 생활
의 모든 행동과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어우러져서 생활의 발전이 이루어
지는데, 그러한 생활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주님의 면전으로 들어가도록
해줄 것입니다.”
이 환난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곳으로 인도될 수 있는가?
몇 달 전에, 전세계에 있는 수백 만의 시청자들과 청취자들이 숨을 죽이고 걱
정스러운 마음으로 아폴로 13호의 불확실한 비행을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온
세계가 한 가지 주요한 결과, 곧 용감한 세 사람의 무사한 귀환을 위해 기도했
을 것입니다.
불안을 억누르고 있던 비행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깜짝 놀라며“폭발이 있었
다”라고 소식을 전하자, 휴스턴의 관제 센터에 있던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이
비행과 관련하여 모든 세부 사항들을 계획했던 기술적으로 숙련된 모든 과학자
들을 즉각 동원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의 안전은 두 가지 핵심적인 요건에 달려 있게 된 것으로, 하나
는 휴스턴의 관제 센터에 있는 기술자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지식의 신뢰성이
며, 다른 하나는 우주 비행사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필요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자들의 모든 지시에 대한 아쿠아리우스 호 비행사들의 절대적인 순종
이었습니다. 기술자들의 결정은 완벽해야 했으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 아
쿠아리우스 호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
었습니다.
이 극적인 사건은 어느 정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환난의] 시대와 유사한 면
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일들,
곧 정치적 음모, 도처에서의 전쟁과 싸움, 가정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
제들과 애써 싸우고 있는 부모들의 실망, 어려움을 이겨내며 그들의 신앙과 도
덕을 지켜 나가려는 자녀들과 젊은이들의 실망 등을 보고 들으면서 두려움을 느
끼게 됩니다.
아쿠아리우스 호에 있던 우주 비행사들처럼, 여러분이 오직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할 때,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은 주님의 길에서 궁극적 안전과 보호로
인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폴로 13호의 사고로부터 필멸의 세상을 통한 궁극적 목적지, 곧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여행에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달려 있는 순종 위에
세워진, 너무도 훌륭하게 생각되는 계획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계획은 그 이름에 잘 나타나 있으며, 가장 주된 목적은 이 복음의 경륜의
시대 초기에 교회에 선언하신 주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약 1세기 이전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같이 나는 나의 영원한 성약을 세상에 보내어 세상을 비치는 빛이 되게 하
고 나의 백성과 이를 구하는 이방인을 위한 기가 되게 하고 또 나의 앞길을 준
비하기 위하여 내 앞에 서는 사자가 되게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45:9)
당시 이 계획은 하나의 성약과 같았는데, 이것은 한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관
여하는 일종의 계약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은 주님의 택하신
백성뿐 아니라 그것으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한 표준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켜 주고 주
님의 재림에 대비하여 세상을 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전세에서 이 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했던 이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인 자녀들이었습니다. 오래된 경전, 즉 고대의 에언자들인 아브라함과 예레
미야의 기록은 또한 하나님 곧 엘로힘께서 그곳에 계셨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
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자인 여호와, 아브라함, 예레미야, 그리고 매우 위대한
다른 이들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이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조직된 모든 예지들이 그곳에 있었으며, 이들은
영이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전세에서 그들의 행위를 통해 이 영원한 계획
을 실천함에 있어 통치자와 지도자가 되도록 자격을 갖추게 된 고귀하고 위대
한 영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여호와의 지시에 의해, 지구 및 그것과 연관된 모든 것이
조직되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명하였으며”, “바라보았으며”또 땅을“준비
하였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인간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생명과 만물을 지구
로 가져오는 일을“서로 의논하였으며”,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는
데, 우리는 그 계획을 설계도에 비유하여 볼 수 있으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
녀들이“하나님의 영광”곧 모든 사람이“불사 불멸과 영생”을 얻을 기회를 갖
게 되는 신성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에서 가르침 받고 또 훈련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생은 우리가 명을 받은 모든 것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
께서 거하시는 해의 영광의 처소에서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아브
라함서 3:25 참조)
구원의 계획의 기초 원리는 무엇인가?
그 계획은 세 가지의 독특한 원리로 구성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한“자유와 영생”또는 불순종으로 인
한 영적인 일에서의“속박과 사망”가운데 스스로 선택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니파이이서 2:27 참조)
생명 그 자체 다음으로는, 자유의지가 인류에게 주신 가장 커다란 은사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필멸의 생, 즉 둘째 지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가
장 위대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대륙에 있었던 한 예언자요 지도자
는 고대의 경전에 기록된 것처럼 그의 아들에게 이러한 주님의 영원하신 목적
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상대되는 것, 곧“ 금단의 열매를 짝함에 생명의 나무
를 두시었고, 하나는 달게 하시며 다른 것은 쓰게 하셨”듯이 한편으로는 선한
사람들에 의한 이끌림과 다른 편으로는 악한 사람들에 의한 이끌림이 있다는 것
을 가르쳤습니다. 이 아버지는“또한 주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저 스스로 행동
하게 하시었음에 사람이 마음에 이끌리지 않고서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스스로
행하지 아니하리라.”라고 설명했습니다.(니파이이서 2:15~16)
이 신성한 계획의 두 번째 독특한 원리는 구세주를 보내야 할 필요성, 즉 밧
모섬에 있던 요한에게 계시되어진 대로, 가장 총애를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창
세로부터“죽임을 당한 어린 양”(요한계시록 13:8)으로서 그의 속죄에 의해 우
리의 구세주가 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언자 리하이는] 하나님의 아들
의 사명은“만 인류를 위하여 중재하시어 변호하시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
는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니파이이서 2:9)
우리는 한정된 이해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은혜만으로 구원 받을 가능
성에 관하여 많은 것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에 관한 참된 교리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예언자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표현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부지런히 기록하여, 우리들의 자녀와 형제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권고하였음이요, 우리가 여하히 노력하더라도
다만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구원받게 됨을 앎이라.”(니파이이서 25:23) 참
으로 우리는 세상의 구세주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로 구속되는 것이나, 그것은
오직 각자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행한 후의
일인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에서 세 번째로 위대하고 독특한 원리는“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수”(신앙개조 제3조)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가
져오는 이러한 근본적인 율법과 의식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첫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둘째는 죄를 버리는 회개이며, 이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불순종하는 죄로부
터 멀어져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에 관
하여 명백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
희 길을 걸으며 다시는 죄 짓지 말라. 그러나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물론 이것
은 그 사람이 이미 회개하였던 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에 지
은 죄까지도 겹치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말씀하시느니라.”(교리와 성약 82:7)
세번째는 물과 영으로써의 침례인데,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셨던 것처
럼 오직 이 의식에 의해서만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을 보거나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3:4~5 참조)
부활하신 구세주께서 미대륙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와 똑같은 가르침을 주셨
는데, 그것은 마치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메시지같아 보였기에 강력
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충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정결치 아니한 것이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는지라, 신앙을
갖고 죄를 회개하며 끝까지 충실하여 나의 피로 그 옷을 깨끗하게 한 자가 아
니면 결코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로다.
“이는 계명이라. 회개하라, 너의 온 땅에 거하는 자들아, 회개하여 내 앞에 이
르러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신을 받아 정결케 되어 마지막 날에 내 앞에
흠 없이 서도록 하라.“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는 복음이요 ”(니파이삼서
27:19~21)
충실한 사람들에게 약속된 축복은 무엇인가?
만일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 주님의 자녀들이 그 국적과 피부색,
또는 신조에 관계없이, 아쿠아리우스 호에 탑승했던 세 우주 비행사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관제 센터에 있던 훈련 받은 기술자들에게 순종했던 것처럼,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참된 사자들의 외침에 귀기울인다면, 주님께서 약속하
신 것과 같이 때가 이르렀을 때 각 사람이 주님을 보고 또 그가 누구이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끝까지 충실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에 찬 이 약속은 탕자에 관한 주
님의 비유에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충실하고 또 자신의 장자권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던 이 충실한 아들에게 아버지 즉, 이 교훈에서 우리의 하나님 아
버지를 의미하는 이 아버지는“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누가복음 15:31)라고 약속하였습니다.
현대의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계시에서, 주님께서는 충실하고 순종하는 자들
에게 오늘날“나의 아버지께서 가지신모든 것이 저에게 주어”질(교리와 성약
84:38)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나이애가라 폭포의 상류에서 점차 위험한 물살에 접근하고
있는 무모한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때가 너무 늦기 전에 안전한
쪽으로 가라는 안전 요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완전히 무시한 채, 그
들은 웃으며, 춤추고, 마시며, 조롱하다가 멸망했습니다.
만일 아쿠아리우스 호에 있던 세 우주 비행사들도 휴스턴의 관제 센터에서 내
려 주는 세세한 지시 사항들에 귀 기울이기를 거절했다면, 그들의 운명 또한 그
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사는 우주의 힘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기본적인 율
법에 대한 순종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계획에 그토록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곧고 좁은 길”을 따라야 한다는 그분의 호소를 계속해서 조롱하는 세상을 목
격하시고 우셨습니다.
그 당시 그분께서“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
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외치셨던 것
처럼 오늘날에도 그분의 호소를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계시자 요한에게 주신 또 다른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사람들에
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에게 외치고 계시는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세
상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
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
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요한계시록 3:20~21)
여기 참된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구원의 계획이 있으며, 그 교회는 가장 중요
한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기초로 하여 세
워졌습니다.(에베소서 2:20 참조) 오직 그것으로 평안이 올 수 있으며, 그 평안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세상의 것들을 이겨
낸 사람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
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사도행전 4:12)는 것입니다.
매일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영생을 향하여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
최근의 한 모임에서 저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한 소녀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사들이 치료할 수 없다고 진단을 내린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런 밤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아
버지는 아내에게 좋은 느낌을 가지고“오늘은 너무도 고맙구려”하고 말했습니
다. “무엇 때문에요?”라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과 함
께 또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특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지.”
오늘 저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를 더 주신 것에 대해 이
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저의 온 마음을 다해 바라는 바입니다. 무엇 때
문이겠습니까? 바로 아직 끝내지 못한 어떤 일을 돌볼 기회 때문입니다. 회개하
고, 어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이 그것입니다. 제멋대로인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손길을 내미는 일이 그것입니다. 한 마
디로 말해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위하여 하루를 더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
사드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너무 오랜 시간을 살겠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오늘의 문제에 몰두할
힘을 구하십시오.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
니다. 그보다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해롤드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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