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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우리의 어린 자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

Gordon B. Hinckley, “These, Our Little ones,” Liahona, Dec 20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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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자손녀들이 어렸을 때 아내와 저는 그 중 몇 명을 데리고 서커스 구경을 갔습니다. 저는 공중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람보다 손자손녀들과 그 또래의 다른 어린이들을 더 흥미롭게 바라보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눈앞에 펼쳐진 흥미진진한 광경을 보며 웃다가도 눈이 휘둥그래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생과 삶의 목적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 주는 근원, 어린이라는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호기심으로 가득차 보이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와중에 제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제3니파이에 나오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시며 사람들에게 “너희의 어린 자들을 보라”고 말씀하시며 우셨던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제3니파이 17:23)
참으로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이 세상의 위대한 선과 끔찍한 악은 과거에 어린이들을 키우면서 얻게된 결과, 즉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열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몇 년 후의 세상이 결정됩니다. 미래가 걱정된다면 자녀들의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잠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말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제가 어렸을 때, 제 가족은 과수원에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상당한 양의 복숭아를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농과 대학에서 주최했던 가지치기 시범 행사에 우리를 데려가셨습니다. 1월과 2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는 과수원에 가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비록 땅에 눈이 쌓여 있고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나무의 적절한 곳을 잘라내고 톱질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봄과 여름이 되었을 때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들을 향해 햇빛이 내리쬐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2월경이면 이미 9월에 어떤 열매가 열릴지, 얼마나 좋은 열매를 수확하게 될지 대부분 알게 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 티 설리번은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큰 일을 이루시거나 크게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자 하실 때 매우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지진을 일으키시거나 번개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아기가 평범한 가정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게 하신다. 그런 후 하나님은 그 어머니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불어넣으시고, 그 어머니는 그 생각을 아기의 마음속에 불어넣는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세상의 가장 큰 힘은 지진도 번개도 아니다. 세상의 가장 큰 힘은 아기들이다.”1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 아기들은 대부분 어떻게 양육되느냐에 따라 선한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명하여 너희 자녀를 빛과 진리로 양육하라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93:40)
네 가지 의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 수 있는 것들을 여러분께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런 당연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경우에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당연한 것들에는 어린이들에 대한 네 가지 의무가 포함됩니다. ⑴ 그들을 사랑하고 ⑵ 가르치고 ⑶ 존중하며 ⑷ 그들을 위해, 또한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때 “오늘 아이를 안아 주었나요?”라는 질문이 적힌 자동차 범퍼 스티커가 자주 눈에 띄곤 했습니다. 부모의 애정을 느끼는 아이는 얼마나 많은 행운과 축복을 받은 아이입니까. 그 애정과 사랑은 다가올 미래에 감미로운 열매로 맺힐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무자비함은 오래 전 어린이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함의 결과입니다.
제가 자란 마을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던, 이 세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매우 가까웠고, 서로를 잘 알고 지냈다고 기억됩니다. 또한 모두를 사랑했다고 생각됩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한 가지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혐오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그러한 감정에 대해 회개했지만, 돌이켜볼 때 저는 제가 느꼈던 감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토록 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화를 낼 만한 것도 아닌 일에 격분하여 가죽 끈이나 몽둥이 등 손에 닿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잡고 그의 자녀들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제가 자랐던 가정 환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아버지는 어떠한 체벌도 가하지 않으시면서 마치 조용한 마법을 사용하시듯 자녀들을 훈육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벌을 받아 마땅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제가 싫어했던 그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많은 부모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 사람이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수천 명의 아동 학대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회 복지사와 종합 병원 응급실의 당직자, 대도시의 모든 경찰과 판사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때리고 발로 차고 내던지고 심지어는 성적 학대까지 가하는 비극적인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러한 난폭한 아동 학대자들과 다름없는 자들로는 외설적인 목적을 위해 어린이들을 착취하는 사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추악한 그림에 대해 오래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이 교회의 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거나 그분 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행위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순결함과 순수함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누구든지 …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 인류의 구주께서 하신 이 말씀보다 아동 학대자들을 더 강하게 비난하는 말이 또 있겠습니까?
가정에서 시작함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사랑의 영이 가득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을 보시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보십시오. 그 아이들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브리검 영 회장(1801~1877년)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는 그 어머니의 미소 짓는 얼굴은 사랑하지만 찡그린 얼굴은 싫어합니다. 저는 어머니들에게 권고드립니다. 자녀들이 악한 일에 빠지는 것을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그러나 부드럽게 그들을 대하십시오.”2
그분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도록 양육하십시오. 그들의 성격과 기질에 대해 연구하시고, 그것에 따라 그들을 대하십시오. 결코 화가 난 상태에서 그들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여러분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여러분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십시오.”3
물론 가족들의 훈육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혹하고 잔인한 훈육은 그들을 바로잡기보다는 반감과 냉소만 불러오게 됩니다. 그런 훈육은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문제를 악화시키며 자멸적인 것이 됩니다. 다음과 같은 위대한 계시를 통해 주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관리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가정을 관리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 어떠한 권능이나 영향력도 유지될 수 없고 … 다만 설득으로, 오래 참음으로, 온화함과 온유함으로, 그리고 거짓 없는 사랑으로 …”
“성신에 감동되었을 때에는 제때에 날카롭게 꾸짖을 것이나, 그 후에는 네가 꾸짖은 자에게 더 큰 사랑을 나타내 보여, 그가 너를 자기 원수로 여기지 않게 하라.”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네 성실함이 죽음의 끈보다 더 강한 줄 알게 하라.”(교리와 성약 121:41, 43~44)
끊임없는 모범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을 보시고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그들의 마음속에 삶의 방식을 각인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모범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드릴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오랜 친구들의 자녀들을 만나 다른 세대인 그 자녀들에게서 그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습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허영심으로 가득한 한 무리의 여성들이 서로 보석을 자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두 아들의 어머니인 코르넬리아도 있었습니다. 한 여성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보석은 어디 있나요?” 코르넬리아는 그녀의 두 아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나의 보석이랍니다.” 그녀의 교육 하에 그녀에게서 삶의 덕목을 배우며 자라난 그 아이들은 사람들이 그라쿠스 형제라고 불렀던 가이우스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즉 로마 역사상 가장 설득력 있고 영향력 있던 두 명의 개혁가가 되었습니다. 인류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해 말하는 한,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그들을 양육한 그 어머니 역시 기억되고 칭송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브리검 영 회장님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토록 기꺼이 주신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에게서 오는 계시의 중요성과 우리 신앙의 거룩한 원리에 대한 아름다움을 배우도록 하는 일을 여러분의 끊임없는 관심사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그것들을 항상 소중히 여길 것이며 결코 진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4
저는 사랑을 듬뿍 주고 자녀들을 가르치고자 열심히 충실하게 노력했지만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자라나는 상황과,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아들과 딸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들께 커다란 연민을 느끼며 에스겔의 다음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에스겔 18:20)
이러한 경우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기보다 예외적인 사항입니다. 그렇지만 예외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을 사랑과 모범, 올바른 가르침으로 최선을 다해 양육해야 한다는 성스러운 의무에 안일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는 이들, 즉 우리의 어린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듯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주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을 통해 배웠으며, 그렇기에 어린이들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그들처럼 순수하고 정직하며 순결하지 않을 경우 그분의 면전에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3)
채닝 폴록은 다음과 같은 흥미롭고도 관심을 끌 만한 글을 적었습니다. “그릇된 것을 경멸했던 청년기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 중 일부는 … 나이 든 상태로 태어나서 점점 젊고 깨끗해지며 점점 단순해지고 결백해져서 결국에는 어린아이들의 깨끗한 영혼과 함께 영원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5
힘의 근원

어린이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들과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들이 나아가고 있는 세상은 복잡하며 어려운 곳입니다. 그들은 많은 역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 곁에 있는 동안 여러분이 줄 수 있는 모든 힘과 신앙이 필요할 할 것입니다. 또한 더 높은 권능으로부터 오는 더 위대한 힘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것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도구는 삶에서 나타나는 그들 자신의 모범, 하나님의 것에 대한 지식 및 그들의 간증에서 오는 설득의 힘일 것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직 어릴 때 그 힘의 근원을 알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기도한다면, 그 힘은 필요한 모든 순간마다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저는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중대한 결정의 순간, 거룩한 성신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이름으로 그의 손을 아들 또는 딸의 머리 위에 얹고 신권의 권세로 아버지의 축복을 주는 아버지들 앞에서 저는 경건해집니다.
모든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기고, 그들을 친절히 대하고 사랑하며, 모범의 힘으로 자녀들을 인도하고, 어려운 시기에 거룩한 성신의 권세로 그들을 축복한다면, 또한 모든 어머니가 그녀의 자녀를 삶의 보석으로 여기고, 그들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며, 주님의 지혜와 권고 안에서 진실한 사랑으로 그들을 키운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사회는 얼마나 더 아름다워지겠습니까.
고대의 이사야는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이사야 54:13)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그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큰 평안과 기쁨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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