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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예수 ·속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31.

By Elder Jeffrey R. Holland Of the Quorum of the Twelve Apostles
Jeffrey R. Holland,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 Liahona, Mar 2008, 32–38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봉사했던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1855~1931)는 젊은 선교사 시절에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강렬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 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구주의 고통을 목격했다. … 나는 가까운 나무 뒤에 있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내 오른편에 있던 작은 쪽문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세 사도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다른 편으로 가셔서 그분 역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는 동안, 내 쪽을 향하고 있던 그분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분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그분의 큰 슬픔에 대한 순수한 연민으로 함께 울었다. 내 온 마음은 그분께로 향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그분을 사랑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그분과 함께하기만을 소망했다.
“얼마 후 그분께서는 일어나셔서 사도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곤히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가셨다. 그분은 그들을 부드럽게 흔들어 깨우시고, 그들이 한시도 그분과 함께 깨어 있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시며 분노나 책망의 기색 없이 부드럽게 나무라셨다.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 그분은 다시 기도하셨으며 사도들에게 돌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또 잠들어 있었다. 그분은 다시 그들을 깨우시고 타이르신 후 돌아가셔서 전처럼 기도하셨다. 이 일이 세 번 반복되었고, 나는 그분의 얼굴과 형체, 움직임 등 그분의 모습에 아주 익숙해졌다. 그분은 고귀하고 당당한,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으나 또한 어린아이처럼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는 듯했다. … 전과는 달리,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였는데, 이제는 구주께서 그 세 명의 사도들과 함께 내 왼편에 서 계셨다. 그들은 곧 하늘로 올라갈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무 뒤에서 뛰쳐나와 그분의 발 아래 엎드리고는 그분의 다리를 부여잡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다.
“그분은 몸을 숙이시더니 나를 일으켜 세우고 안아 주셨는데 그 친절함과 따스함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경험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 같아서 나는 나를 안아 주신 그분 가슴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후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의 아들아, 이들은 그들의 일을 마쳤으므로 나와 함께 갈 수 있지만, 너는 남아서 너의 일을 끝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분께 매달렸다. 그분의 키가 나보다 컸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열렬히 간청했다. ‘그러면 제가 나중에 당신께 갈 수 있다고 약속해 주세요.’그분은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하셨다. ‘그것은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단다.’나는 흐느끼며 잠에서 깨어났고 때는 아침이었다.”1
왜 속죄인가?

구주의 사랑에 찬 희생에 대한 이 감동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알맞은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몸소 이루신 속죄는 모든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며 이 세상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위대한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속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회복된 복음의 다른 모든 원리와 계명과 가치는 이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중요성을 부여 받습니다.2
속죄는 예임되었으나 하나님의 독생자의 자발적인 행동이었으며 그분은 자신의 생명과 영적인 고통을, 아담의 타락이 온 인류에 미친 영향 및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인 죄에 대한 대가로 주셨습니다.
영어 단어인 Atonement(속죄)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자명합니다. at-one-ment, 즉 나누어졌거나 분리된 것들을 하나로 합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분리를 가져오는 아담의 범법 또는 타락으로 인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세상에 두 종류의 사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3 육체적 사망은 영과 육의 분리를 가져왔고, 영적인 사망은 영육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지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두 종류의 사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 아버지의 신성한 계획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아담과 이브에게 필멸의 자녀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인류도 없었을 것이며, 인류가 서로 상대되는 것, 성장, 도덕적 선택의지, 부활과 대속과 영생의 기쁨 역시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4
아담의 타락과 이를 보상하기 위한 속죄의 필요성은 전 인류가 영체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시는 천국 회의에 참석했을 때 설명되었습니다. 이 천국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선택의지를 존중하여 그들의 죄를 대속하겠다고 자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대속의 사랑에 대한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겠다고 하셨습니다.5
이러한 그리스도의 끝없는 속죄가 가능했던 것은 ⑴ 그분만이 지상에 살았던 유일하게 죄 없는 사람으로, 죄의 결과로 인한 영적 사망으로부터 자유로우셨고, ⑵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신성을 지니고 계셨기 때문에 육체적인 사망6을 이길 권능을 가지셨으며, ⑶ 천국 회의에서 그러한 역할에 예임될 만큼 충분히 겸손하고 의지를 지닌 유일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7
그리스도의 속죄의 선물

속죄가 주는 선물의 일부는 만인을 위한 것이고 무한하며 무조건적입니다. 여기에는 인류의 어느 누구도 아담의 범법으로 인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신, 아담의 죄에 대한 그분의 속량이 포함되며,8 또 다른 보편적인 선물은 지상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거나 미래에 살게 될 모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에게 주어질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선물의 다른 측면들은 조건적입니다. 이 선물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얼마나 부지런한가에 달렸습니다. 예를 들어, 인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들의 노력 없이 아담의 죄로부터 대가 없는 면책을 받는 한편,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보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신의 은사를 받고, 주님의 교회 회원으로 확인 받은 후 일생을 통해 신앙과 인내로 전진하지 않는 한 그들은 스스로의 죄에 대해 면책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과제에 대해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은 나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니,”9
더구나, 육신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결과로 온 인류에게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지만, 부활한 몸의 유형(또는 “영광의 등급”) 및 부활의 시기는 개인의 일생 동안의 충실함에 직결되어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충실한 자들이“먼저 일어[날]”10 것임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현대의 계시에서도 육신의 부활에 순서가 있다고 밝히며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와 의식에 순종한 자들에게만 가장 높은 등급의 영광이 약속됩니다.12
물론, 속죄의 무조건적인 축복과 조건적인 축복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주어질 수 없습니다. 속죄의 무조건적인 축복이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며, 그렇다고 해서 조건적인 축복이 전적으로 우리의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충실하게 생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추가적인 특권을 누릴 수 있으나, 그러한 특권은 여전히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 기술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몰몬경은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거룩하신 메시야의 공덕과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면전에 거할 수 있는 육체가 하나도 없음[이라].”13
바로 그러한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과 정신장애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구원 받을 방편을 주십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만인에 대한 권능으로 대속을 받으며 죽음 이후에 부활을 기다리는 영들이 거하는 영의 세계에서 충만한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14
고난과 승리

속죄의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고, 휘트니 장로가 꿈에서 본 것처럼 그곳에서 오직 그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혼의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분은“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그분께서 “만인의 고통, 참으로 아담의 가족에게 속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 모두, 곧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16 그분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제외하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과 육신의 고통, 주림, 갈증과 피로를 겪으[셨으며], 피가 모든 땀구멍에서 나[올 정도로] … 그의 고뇌는 그처럼 [컸습니다.]”17
이러한 고난을 통해 예수께서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들의 영혼을 대속하셨으며“그의 심정을 자비로 충만하게 하사, 육체를 따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좇아 어떻게 도울지 아시고자 하[셨습니다.]”18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든 필멸의 생명체들이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질병, 약점, 어두운 절망을 비롯하여“만물 아래로 내[려가셨고]” 그리하여 그가“만물을 이해하였나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 그리고 만물을 통하여 있으려 함이니, 곧 진리의 빛이 되고자 함이라”고 경전은 말합니다.19
속죄의 절대적 고독과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은 겟세마네에서 시작되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로마 병사들과 군중들의 학대 후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0라고 부르짖으시던 순간에 그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고통의 심연 속에서 온 천지 만물도 떨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21“이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22 많은 사람들이“자연의 하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는도다”23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던 일이 이루어졌으며, 예수께서는“다 이루었다”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5 언제, 어디선가, 모든 인류가 이 모든 것을 목격한 로마의 백부장이 말했던 것처럼“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26라고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사려 깊은 남자와 여자들에게, 자의에 의한 자비로운 한 분의 희생이 공의의 무한하고 영원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모든 인류의 범법과 잘못을 대속하며, 그리하여 그분의 자비로운 팔 안에 모든 인류를 감싸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은“놀랍고도 기이한 일”27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존 테일러 회장(1808~1887)의 말씀을 인용하면, “우리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그분은 이 세상의 죄-아담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의 죄의 무게까지도 감당하셨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한 자들뿐 아니라 책임을 질 나이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거나 그리스도의 율법을 알지 못하고 죽는 인류의 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하늘 왕국의 문을 여셨습니다.”28
휘트니 장로가 이 위대한 선물과 그것을 주신 분에 대해 느낀 바를 우리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분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그분의 큰 슬픔에 대한 순수한 연민으로 함께 울었다. 내 온 마음은 그분께로 향했다. 나는 온 영혼을 다해 그분을 사랑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그분과 함께하기만을 소망했다.”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속죄를 이루심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셨으며 그 소망을 실현시키셨습니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