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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모든 것 잘되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2.

개척자들의 유산에 대해 생각할 때, 제 마음에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찬송가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찬송가, 16장)입니다. 솔트레이크밸리로 가는 머나먼 여정에 오른 사람들은 여행 중에 이 찬송가를 자주 불렀습니다. 성도들의 모든 여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들은 질병과 더위, 피로, 추위, 두려움, 굶주림, 고통, 의심 속에서 지냈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좋지 않다”고 외칠 온갖 이유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태도를 키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곤경을 넘어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았으며, 주어진 상황 안에서 감사해했습니다.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지만, 추호의 의심도 없이 온 마음을 다해 “모든 것 잘되리”라고 노래했습니다. 개척자들을 향한 찬사는 내면적인 성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울림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저는 개척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할 때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들의 성품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정심
개척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배경에 상관없이 서로를 보살폈습니다. 여정이 지체되고 불편이 야기되더라도, 그리고 개인적인 희생과 수고가 따르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도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목표 중심적이고 편향된 이 세상에서는 개인 또는 어떤 집단의 목표가 타인을 돌보거나 하나님의 왕국을 강화하는 일보다 우선시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한 철학적 목표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의 가치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만, 타인을 경시하거나 무시하고 다치게 하면서까지 목표를 성취한다면, 그 성공의 대가는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개척자들은 자기 부대 사람들을 돌볼 뿐 아니라 뒤에 올 사람들을 배려하여 뒤따라올 마차 행렬을 위해 농작물을 심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힘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의지했기에 강해졌습니다. 친구들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개척자들은 왜 우리가 자신을 고립시키는 유혹에서 벗어나, 서로로부터 고립하는 대신에 서로에게 다가가서 돕고 연민을 느끼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일깨워 줍니다. 일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이 노래는 지친 여행자들의 주제가가 되었습니다. 이 훌륭한 영혼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했던 일 중에 걷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마련하고, 마차를 수리하며, 가축을 지키고, 아프거나 허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물을 찾아가 길어 나르고, 악천후와광야의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던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료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과,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목적과 목표가 날마다 분명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 매일의 진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하는 것의 대부분을 너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우리 시대에는 앞길이 조금이라도 평탄치 않거나 앞 언덕의 경사가 가파르게 보이면 비켜나거나 포기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병마와 역경, 고통, 죽음을 감수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단념하지 않았던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고무될 것입니다. 어려운 일들을 해 나갈 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에 깊이가 더해지고 강화되며, 자신의 신성한 본성을 더 깊이 깨닫게 되고, 타인을 더욱더 연민하게 된다는 것을 개척자들은 배웠습니다. 이런 습관은 그들의 심성을 굳건하게 했고, 평원과 산맥을 넘어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축복이 되었습니다. 낙관주의 세 번째 교훈으로, 개척자들은 이렇게 소리 높여 노래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어서들 나가자”(영어 찬송가에는 with joy[기쁜 마음으로]라는 가사가 있음-옮긴이) 우리 시대의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넘치도록 많은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몹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이로운 번영과 기술은 우리를 압도하며, 안전과 오락, 즉각적인 만족과 편의를 제공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방에서 너무나도 많은 불행을 봅니다.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렀던 개척자들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품조차 없이 지내며 굶주렸습니다. 그들은 행복이 운이나 우연한 결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모든 바람이 이뤄지는 데서 오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서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계없이 우리의 내면에서 오는 것입니다. 개척자들은 그것을 알았으며, 그러한 정신에 따라 그들은 시련이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모든 상황과 시련 속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시련 우리는 때로 개척자들이 견뎌 낸 일을 돌아보다가 안도하며 “그 시대에 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용감한 개척자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볼 수 있다면 같은 염려를 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시대와 환경이 바뀌었지만, 시련에 맞서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서로 보살피고 번영하는 공동체로 함께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개척자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뢰를 지니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타인을 안타까이 여기는 법을 배우며 일과 근면이 현세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축복이 됨을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이 어떻든 간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개척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보여 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충실함, 동정심, 동료에 대한 사랑, 근면, 낙관, 기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고귀한 개척자들과 손을 맞잡고 목소리를 더하여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 잘되리! 모든 것 잘되리!”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 제일회장단 제2보좌 2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