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 자신들이 죄인임을 망각한 채 구주와 그 함께 음식을 먹는 자들 모두를 불의하게 판단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남을 비난하는 마음에 사로잡힌 나머지 잃어버린 양을 구하는 기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구주께 데려온 것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 여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심판하는지 보려 했습니다.그다음 이야기는 알고 계실 겁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불의한 판단을 어떻게 겸손하게 만드셨는지, 그들이 어떻게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떠났는지 말입니다. 그런 뒤 그분은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러자 그 여인은 그 시각부터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그분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육에 속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불의하게 판단하려는, 또는 자신만 의롭다고 여기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심지어 구주의 사도들 중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 사람들이 구주를 함부로 대하자 분노했습니다.
“그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그 상황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남을 비난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감독과 지부 회장 등 오늘날의 “보통 판사들”은 이와 비슷한 비난하려는 충동을 피해야 합니다. 의로운 재판관은 죄를 인정하는 고백에 대해 연민과 이해를 보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잘못을 한 청소년이 결코 부끄럽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마음으로 감독실을 나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감독을 통해 구주의 사랑을 느끼고 속죄의 기쁨과 치유의 권능에 가득 찬 마음으로 감독실을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독은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린 양을 광야 더 깊숙한 곳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2016,10,린 지 로빈스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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