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놀라움은 밤에만 알 수 있습니다. 이 매혹적인 자연의 경이로움은 낮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반딧불이의 빛을 보려면 어두운 배경이 필요합니다. 그런 대조가 그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딧불이와 별은 평범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을 드러내기 위해 어둠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 주는 자연의 예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 회원 중에는 덕을 실천하도록 영감을 주는 일상의 나타내심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에 대한 간증은 많은 경우 반대되는 것, 즉 “쓴 것을 맛보게 되[어] … [우리가] 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모세서 6:55) 됨으로써 얻어집니다.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비참을 알지 못하매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니파이후서 2:23) 브리검 영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사실은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에 의해 입증되고 드러납니다.”2
어린이들은 예/아니요, 위/아래, 이상/이하, 큰/작은, 뜨거운/차가운, 빠른/느린 등과 같이 반대되는 것을 대조해 가면서 배웁니다. 대조를 하면 내용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덕을 이해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것을 공부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건강한 몸이 되기를 바라지만, 건강에 대한 감사와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망은 종종 건강과 반대되는 것, 즉 아픔과 질병, 부상을 겪은 후에야 얻게 됩니다. 심지어 구주께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히브리서 5:8)
때때로 덕은 “위선이 없[다]”, “간교함이 없[다]”(교리와 성약 121:42), “쉽게 성내지 아니하[다]”(모로나이서 7:45) 등과 같이 그 반대되는 용어를 사용할 때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덕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발전시키기 위한 평생의 노력일 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는]” 노력이기도 합니다.(디도서 2:12; 또한 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16:26; 모로나이서 10:32 참조) 그리스도와 같은 덕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반대되는 것을 없앨 때,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됩니다.]”(모사이야서 3:19)
성품의 표본을 구할 때 반딧불이 효과를 적용하면 각 성품에 관한 진리와 힘과 간증이 드러납니다.
- 다정한 vs. 가증한, 적대적인, 비우호적인
- 정직한 vs. 부정직한, 기만적인, 위선적인
- 관대한 vs. 앙심을 품은, 분개하는, 모진
- 친절한 vs. 비열한, 노한, 불친절한
- 인내심 있는 vs. 쉽게 성내는, 성미가 급한, 편협한
- 온유한 vs. 오만한, 교만한, 거들먹거리는
- 화평하게 하는 자 vs. 호전적인, 불화를 일으키는, 도발적인
이렇게 대조를 해 보면 각 덕목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간증의 힘을, 그리고 매일 양심에 따라 얼마나 많은 영적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대조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명백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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