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
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이 말씀과 관련하여 저는 구주께서 산상수훈으로 남기신 마태복음 5장
마지막 구절 중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
라”[마태복음 5:48]
우리는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위대한 약속을 하셨으며, 그
약속을 얻을 준비가 되기 전에 주님 앞에서 온전해져야 한다는 특별한 요
구가 그[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한 구주께서는 자신
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온전해지라는 동일한 요구를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후기 성도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
도록 제안 형식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은 후기 성도들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브
라함처럼 그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께서는 아브라
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율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는 주님 앞에서 온전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여느 때처럼 따를 수없는 요구를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님은 그분의 거룩한 명
을 따르도록 후기 성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셨습니다. 주께
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요구를 하셨을 때, 그 율법을 준수하고 요구받은 일
을 모두 성취할 자격을 갖추도록 방편을 주셨습니다. 복음이 아브라함에게
전파되었다고 알려진 것으로 보아 그는 성령이라는 특권을 받았으며, 하나
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신성한 도움을 복음을 통해 받았습니다. 복음이
없다면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또 복음이 없다면 주님 앞에 온전한
상태로 이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후기 성도 역시 초자연적인 [하늘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는 그와 같은
도덕적,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또한 후기 성도라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율법을 한 번에 다 준수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
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계명을 지키려면 많은 인내와 더불어
마음과 정신에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 시도에서 실패하더라도 위대한 요구를 따르려는 결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서 이 신성한 율법에 따라 행하는 신앙이 있었음에도, 호되게 시
험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의를 불태웠기에
계속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율법에 따라 살기란 불가능하며, 온전해지는 일은 너무 어렵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일은 전능자
께서 명하신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
니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그때가 바로 힘과 이해력, 예지와 은혜를 주시
도록 주께 간구하는 위대한 특권을 사용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렇게 함으
로써 우리는 영속적으로 싸워야 할, 육신이 지닌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습
니다.5 [104쪽 제언 1과 2 참조]
주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따른다면, 우리는 그렇게 행하는 범위 내에서
온전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나라와 친척들을 떠나라는 명을 받았습니
다.[아브라함서 2:1~6 참조] 그가 이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면 주님께 받아
들여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에 응했으며, 집을 떠날
때 그가 이 온전하라는 성스러운 율법에 따라 생활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일에서 실패했다면 그는 분명 전능자의 요구에 순종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친의 집을 떠날 때, 이 시험을 받을
때 양심과 하나님의 영이 용납한 일을 행한 것이며, 이 일을 수행할 때 잘
못을 범하지 않는 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후기 성도들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전
능자의 음성이 아브라함처럼 부친이 살던 땅과 친척들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한,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상황과 범위 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지식이나 능
력 등과 같은 면에서 온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성실성, 동기, 결의 면
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큰 바다를 건널 때 투덜거리거나 불평하
지 않고 권고를 따르며 모든 면에서 알맞게 처신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라신 만큼 온전한 것입니다.주님은 우리를 해의 왕국으로 데려가려고 계획하십니다. 주님은 직접적
인 계시를 통해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서 태어난 그분의 자녀이며, 우리가
아버지 면전으로 돌아갈 때 그분의 영광을 충만하게 받을 준비를 갖추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동
기, 소망, 감정, 애정이 순수하고 거룩하며 성결하게 되도록 이 율법을 지
킬 능력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종속시키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겠다는 것 외에는 사사로운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행동에서 온전한 사람이며, 무엇
을 하거나 어디를 가든 간에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기 쉽고 육신의 연약함에 굴복하기 쉬우며 다소
무지하기 때문에 잘못을 범할 소지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점이 하
나님께서 내리신 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분께서 우리 손이 미치는 곳에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방편을 두셨다는 것을 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구주께서 언급하시고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에게 말씀하신 ‘온전’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온전하나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
다. 지혜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은 이 율법에 관한 한 온전합니다.
또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받는다면 우리는 그 문제
에 관해서는 온전합니다.
(로렌조 스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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