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대한 인간의 개념은 어쩔 수 없이 필멸의 세계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종교들은 영원한 영광에 대한 자신들의 비전을 적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구원에 대한 이미지는 대중 문화상에서 표현될 때 희화되기 쉽다. 예를 들어, 구원이 가져다 주는 깊은 평화와 넘치는 기쁨에 대한 경전 구절은 잘 알려진 대로 죽은 뒤 구름 위에 앉아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의 이미지로 흔히 묘사되곤 한다. 후기 성도의 승영에 대한 교리 역시 마찬가지로 미디어상에서 각자 자기의 행성을 받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곧잘 격하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영감에 찬 음악을 통해 영원한 구원에 대한 기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할지라도 구름과 하프가 영원한 기쁨을 나타내기에는 만족스러운 이미지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후기 성도를 자신의 행성을 가진 풍자화로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는 극히 소수의 회원들이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후기 성도는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경외감이 영원한 세상에서 발휘하게 될 우리의 잠재되어 있는 창조력을 암시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후기 성도는 필멸의 경험에서 거룩한 것들에 대한 관점으로 승영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기쁨과 그 자녀들에 대해 느끼는 강한 사랑 안에서, 타인에 대한 온정적인 봉사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전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 안에서, 예기치 않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질서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에, 신성한 성약을 맺고 지킴으로써 얻는 확고한 느낌을 통해 신성의 씨앗을 확인한다. 교회 회원들은 승영에 대해 그들이 무엇을 얻게 될지보다는 지금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관계가 어떻게 정화되며 발전할 수 있는지를 더 생각한다. 경전에는 이러한 가르침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사귐이 그 곳에서도 우리 가운데 존재하리라. 다만 그 사귐에는 지금 우리가 향유하지 못하는 영광, 곧 영원한 영광이 수반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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