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모든 계획은 대리로 행한 희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대리로 희생을 한 분은 저주를 받은 모든 인간을 옹호하는 무죄한
분이었습니다. 악을 행한 자가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공의로운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악한 행위에 대해
속죄하는 것은 지당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율법을 범하였을
때, 공의는 그가 죄에 대해 보상하고 그의 생명으로써 형벌을 받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율법을 깨뜨림으로써 저주를 받았으며, 저주를 받은
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속죄하거나 그것을
원상태로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자녀들도 그렇게 행할 수
없었는데 이는 그들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주를 받지
않은 자가 그 원죄에 대해 속죄하여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모두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담의 범법뿐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무죄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무튼 공의가 요구한 그와 같은 일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자신을 죄에 대한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아담의 범법과 우리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고,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한다는
조건으로 우리를 타락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깊고 어두운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 함정은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다시 기어올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 곤경에서 자신을 구할 수가 있을까요? 그는 혼자 아무리
애쓰더라도 자신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함정 속에는
빠져나올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절한 사람이 구조해 달라는 그의 외침을
듣고 서둘러 도와주러 와서, 사다리를 내려 함정 속에 빠진
사람에게 다시 지면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은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와 그의 후손이 처한
상태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함정 속에 함께 빠져
있으므로 지면으로 올라와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함정은 주님의 면전에서의 추방을 의미하며, 또한 육체적
사망 곧 육체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사망을
겪어야 했으므로 아무도 빠져 나올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한하신 자비로 그의 자녀들의 외침을
들으시고는 빠져나올 방편을 마련해 주시려고 사망의 지배를 받지도
않으며 죄를 범하지도 않은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무한하신 속죄와 영원한 복음을 통하여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구원의 교리 1권, 120~121쪽)
(조셉 필딩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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