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의 슬픔과 고통이 반드시 죄와 연관되지는 않기 때문에, 속죄의 완전한 영향력은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 연약함, 질병을 극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고통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우리는 안심하고‘우리 염려를 다 주께 버[릴 수 있다.]”(베드로전서 5:7)”“Not My Will, But Thine” ( [1988], 51쪽) (닐 에이 맥스웰) “교회 회원들 중에는 지속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개인적 환경에 낙담한 나머지 중압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낙담하는 것은 반드시 그릇된 행동에서 비롯된다고는 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누구만의 책임이라고 보기 힘든 스트레스 때문에 생겨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삶에 적용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도 물론 적용됩니다. 구주께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니파이후서 25:23 참조)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구주의 속죄는 죄 뿐만 아니라 부주의나 부적합함이나 이 세상의 모든 고통까지도 치유하는 힘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속죄는 죄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1997년 4월호 성도의 벗, 부르스 시 하펜, 39쪽) (부르스 시 하펜) “겟세마네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은‘심히 놀라시기’(마가복음 14:33) 시작했는데, 이는 그리스말로‘위엄에 눌려 놀라기’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가‘놀라셨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나 경험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속죄의 과정을 일일이 분명하게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난이 절정에 달하게 되자, 그것은 그의 특별한 지성으로 상상한 이상으로 훨씬 힘들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사자가 나타나 그의 힘을 북돋아 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누가복음 22:43 참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의 축적된 죄의 무게가 완전하고, 죄없고, 감수성이 강한 인간을 짓눌렀습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병고도 또한 속죄의 일부였습니다.”(1985년 7월호 성도의 벗 “기꺼이 순종함”닐 에이 맥스웰, 7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