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을 신성한 사랑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말해 주는 좋은 일화입니다. 헬렌은 1880년에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생후 19개월일 때 그녀는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은 질병으로 인해 청각과 시각을 잃었습니다. 헬렌은 매우 총명했지만 자신의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느끼려고 할 때마다 좌절감을 겪었습니다. 헬렌이 가족들의 입술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들이 입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그런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했습니다.” 여섯 살이 되었을 즈음에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헬렌의 욕구와 그에 따른 좌절감이 극에 달했고, “그녀는 매일, 때로는 매 시간마다 감정의 폭발을 겪었습니다.”
헬렌의 부모는 딸을 위해 가정교사를 구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앤 설리번이었습니다. 우리의 나약함과 약점을 잘 알고 이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곁에 계시듯이, 앤 설리번은 그녀 스스로 많은 고초를 겪었기에 헬렌의 약점과 장애를 잘 이해했습니다. 앤은 다섯 살 때 병으로 각막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그 결과 거의 시력을 상실했습니다. 앤이 여덟 살 때 그녀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고, 부친은 앤과 남동생 지미를 버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들은 “극빈자 구호소”로 보내져서 생활했는데 그곳의 환경이 너무 열악한 나머지 동생 지미는 석 달 만에 죽었습니다. 앤은 끈질긴 고집과 노력으로 맹인과 시각 장애인을 위한 퍼킨스 스쿨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외과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앤은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부친이 퍼킨스 스쿨에 연락하여 딸의 가정교사를 구한다고 문의했을 때, 앤 설리번이 적임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 일은 처음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헬렌은 “교사인 앤을 때리고, 꼬집고, 발로 찼으며 이를 하나 부러뜨리기까지 했습니다. [앤은] 결국 켈러 집안 소유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헬렌과] 함께 들어가 살게 되면서 조금씩 헬렌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굳건하게 일관성을 유지한 덕분에, 결국 앤은 그 어린 소녀의 마음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가 우리의 신성한 교사에게 저항하는 대신 그를 신뢰하게 된다면, 그분은 우리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고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헬렌이 글을 배우도록 돕기 위해, 앤은 익숙한 물건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헬렌의 손바닥에 써 주었습니다. “[헬렌은] 이 ‘손가락 놀이’를 좋아했지만, 그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듯이 [앤이 헬렌의] 손에 물을 뿌리면서 ‘w-a-t-e-r’이라고 썼을 때였습니다. [헬렌은] 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갑자기, 마치 잊었던 기억처럼 어렴풋한 의식을 느꼈고, … 어떻게 된 일인지 언어의 경이로움이 내 눈 앞에 열렸다. 그런 뒤 이제 나는 그 ‘w-a-t-e-r’이란 것이 내 손에 흐르는 기분 좋고 시원한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살아 있는 단어가 내 영혼을 깨웠고, 빛과 희망과 기쁨을 주었으며, 나를 자유롭게 했다! …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었고, 각각의 이름은 새로운 개념을 불러왔다. 우리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만지는 … 모든 물건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https://assets.ldscdn.org/f9/7a/f97a5d9110b6ba17bf2a6de1c7da2901524a1614/helen_keller_woman_blind.png)
헬렌 켈러가 성인이 되었을 즈음, 그녀는 언어에 대한 사랑과 작가로서의 글솜씨, 그리고 유창한 연설로 유명해졌습니다.
헬렌 켈러의 삶을 다룬 영화에서, 헬렌의 부모들은 거칠고 사나웠던 딸이 저녁 식사 테이블에 공손히 앉고,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며, 식사를 마친 뒤 냅킨을 접을 정도로 길들여지자 앤 설리번이 이룬 결과에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앤은 헬렌에게 훨씬 더 큰 가능성과 능력이 있음을 알았으며, 그녀가 세상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살면서 한 일들에 상당히 만족하고 지금 이 모습이 우리 자신이라 믿으며 살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인식하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잠재력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단어가 생명을 얻으면서 그녀의 영혼이 빛을 보고 자유로워졌을 때 헬렌 켈러가 느꼈던 그 기쁨처럼, 우리 모두는 신성한 잠재력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런 황홀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우리의 이웃을 축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2016-10,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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