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크라우스는 충실한 회원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동독에서 가족과 함께 사셨습니다. 당시 자유가 억압된 지역에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크라우스 형제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분은 충실하고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각각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헝가리 출신인 요한 덴도르퍼 형제님입니다. 그분은 독일에서 개종했는데, 17세였던 1911년에 그곳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헝가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분은 고향 데브레첸에서 사실상 포로가 되셨습니다. 헝가리 국민 역시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월터 크라우스 형제님은 덴도르퍼 형제님을 알지 못했지만, 그분의 가정 복음 교사로 지명받아 정기적으로 방문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크라우스 형제님은 가정 복음 교사 동반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 덴도르퍼 형제님을 방문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번 주에 같이 찾아뵙고 복음 메시지를 전할 만한 시간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덴도르퍼 형제님은 헝가리에 사십니다.”
깜짝 놀란 동반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언제 가실 건데요?”
“내일이요.” 크라우스 형제님이 대답했습니다.
“언제 집으로 돌아올 거죠?” 동반자가 물었습니다.
크라우스 형제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만약에 돌아온다면 한 일주일 후가 되겠지요.”
그렇게 두 명의 가정 복음 교사는 덴도르퍼 형제님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섰으며, 기차와 버스를 타고서 독일 북동 지역에서 헝가리 데브레첸까지 갔습니다. 여정은 상당히 멀었습니다. 덴도르퍼 형제님에게는 전쟁 전부터 가정 복음 교사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두 종을 본 덴도르퍼 형제님은 그들의 방문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덴도르퍼 형제님은 처음에 악수를 거절한 채 침실로 들어가서는 몇 년 동안 모아온 십일조 상자를 작은 보관함에서 꺼내오셨습니다. 형제님은 십일조를 가정 복음 교사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저는 주님께 십일조에 대한 의무를 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종들과 악수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해 동안 교회를 접하지 못했던 그 충실한 형제님이 십일조를 내기 위해 얼마 안 되는 수입에서 순종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10퍼센트를 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크라우스 형제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나중에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일조를 언제 낼지, 또는 낼 수는 있을지도 모른 채 돈을 모아왔던 것입니다.
월터 크라우스 형제님은 9년 전에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평생 충실하게, 순종적으로 봉사해 오셨으며, 저를 비롯해 그분을 아는 모든 이에게 영감을 주셨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청을 받을 때면 절대 의문을 품지도, 불평하지도, 핑계를 대지도 않으셨습니다.(2013-04,토마스 에스 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