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조직된 이후로 백만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부름을 받았지만 댄 존스는 백만명 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람이었다. 웨일스의 선교사들에 대해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말씀했다. “개종자 수로 볼 때, 댄 존스는 교회 역사상 침례를 가장 많이 준 선교사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입니다.” 댄은 선교사가 되기 전에 웨일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미시시피 강에서 메이드 오브 아이오와라는 증기선 선장으로 일했다. 그 배는 일리노이 주 나부로 가는 많은 후기 성도들을 태워주었다. 그는 1843년에 교회에 들어와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댄의 선교 사업은 기록된 조셉 스미스의 마지막 예언을 성취시켰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자신이 살해되기 전날 밤에 카테지 감옥 창문 밖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기에 마루에서 자기로 했다. 선지자는 가까이에 있던 댄 존스에게 죽음이 두려운지를 물었다. 댄은 이렇게 답했다. “그때가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일을 위해서라면 죽음이 크게 두렵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조셉은 이렇게 예언했다. 댄 존스(1810~1862)“형제님은 살아서 웨일스를 보게 될 것이며, 생전에 형제님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실 것입니다.” 선지자의 약속은 댄과 아내 제인이 웨일스에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1845년에 성취되었다. 댄은 큰 확신으로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활용했다. 그는 웨일스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몇 시간이고 두 언어로 관중의 주위를 강력하게 끌면서 이야기했다고 목격자들은 기록했다. 웨일스에 있는 동안 댄은 후기 성도 간행물, 소책자 및 여러 책들을 웨일스어로 출판했다. 댄 존스의 인도 아래 웨일스에 있던 선교사들은 29개 지부를 설립했으며 댄의 첫 번째 선교 사업 기간 중 해마다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는 1852년에 웨일스에서 선교 사업을 하도록 한번 더 부름 받았으며,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점점 커져감에도 불구하고 4년 동안 그곳에서 약 2천 명이 침례를 받았다.
유타로 귀환하면서 댄은 많은 웨일스 개종자들을 유타로 데리고 왔으며, 51세로 사망할 때까지 약 5천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미국 서부로 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고든 비 힝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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