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또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이 곧 선지자였으며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약 시대의 고대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 선지들에게 몸소 나타내 보이지 않고는 결코 행함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아모스 3:7 참조) 이러한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으며 구약의 대부분은 이러한 계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하나님의 지식없이는 새로 조직하신 교회를 떠날 생각은 전혀 없으셨으나 자신이 곧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으로 가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새로운 기독교회에 선지자를 두셨는데 그들의 임무는 고대 선지자들과 같았으며 필요할 때 백성들을 인도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적절한 계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하늘의 지시가 없었더라면 교회는 틀림없이 바른 길에서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으르리니" (에베소서 4:11-13)
이것은 이러한 조직이 변화되리라는 것을 지적하거나 어떤 부분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14절에서 교회의 역원들에게 회원들을 그릇된 교리로부터 보호하도록 말씀하시기를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외쳤습니다.
3. 사도들의 기초
바울은 초기 서한에서 세상으로부터 교회에 모여든 에베소의 개종자들을 위로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에베소서 2:19-21)
또한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교회가 주의깊게 조직된 구성체임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회를 없어서는 안될 여러 지체로 된 인체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개종자들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종이건 자유인이건 간에 모두 침례를 받고 한 교회 혹은 한 몸에 들어와 한 성령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고린도전서 12:14-16)
그리고 나서 그는, 각 부분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도 다른 것에 대해 "나는 네가 필요없다"라고 할 수 없으며 모든 부분은 가각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적당히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역원과 의식과 교리가 있는 근본적인 교회 조직은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모두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될 때까지 변함없어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4 참조)
구세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있었던 일들 역시 교회의 조직이 계속하여 변치 않았어야 함을 분명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다음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십이사도 정원회(使徒定員會)에는 결원이 생겨 열 한 사도만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연 사도 정원회는 열 한 분으로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시 원래의 열두 사람으로 회복되었어야 할까요? 만일 아무도 유다를 계승하도록 부름을 받지 못하고 다시 또 다른 사도가 죽었다면 오직 열 사람만이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열 사람으로 사도 정원회가 구성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 간다면 그 정원회는 곧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주님의 뜻은 주께서 승천하신 후 곧 나타나게 되었으며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며 간청하였으니, 그 모인 수가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무리 가운데 서서 주님을 배반한 유다에 관한 다윗의 예언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도들에게 "구세주의 부활에 우리와 함께 할 증인으로써 유다의 계승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4. 새로운 사도가 선택됨
그들 중 가장 헌신적인 두 사람이 합당한 후계자로 천거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정원회에 새로운 사도를 선텍해야 할 책임을 자기들 임의로 맡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사도행전 1:24-26)
교회는 다시 십이사도를 갖게 되었으니 이에는 큰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십이사도 정원회는 늘 12명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11명, 10명 혹은 9명으로 줄어 드디어 없어지게 되는 것이 주님의 계획이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말했던 모든 말 가운데 내포되어 있으며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에베소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 조직은 구세주께서 조직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매우 기쁜 마음으로 참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결코 변치 않고 계속되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그외의 다른 사도가 선택되었던 것일까요? 우선 사람들은 바울을 생각하게 되는데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울의 이름을 결코 십이사도 정원회와 관련시켜서 생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십이사도 정원회에 열 세 사람의 사도들이 있게 되기 때문이었겠습니까? 아니면 바울이 생명을 잃은 성회와 어떤 회원의 자리를 계승했기 때문이었겠습니까?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바울이 지명을 받기 전에 한 결원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사도를 새로 선택하는 일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우리들은 사도행전 13장에서 교회의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가졌던 모임에 관한 기록이나, 그들 중 몇사람이 지명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서도행전 13:2-3)
5. 교회가 끊임없이 받는 계시
하나님께서 현대에 교회의 일을 지시하시기 위하여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계시를 주셨으며 그 계시를 선지자들이 받은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있는 선지자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계속하여 사도행전을 보면 "그러므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떠나 갔다." (사도행전 13:4 참조)고 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4장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부름을 받은 두 사람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라 한 것입니다.
이들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란 구절을 음미해 봅시다. 바나바의 이름은 바울의 이름보다도 먼저 언급되었으며 안디옥에 모였던 사도들의 이름 중에도 있었습니다. 이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하늘의 지시에 따라 선교하도록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나바는 열 세 번째나 혹은 열 네 번째의 사도였겠습니까? 또 바울은 어떠했겠습니까?
구세주께서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체제를 열 두 사람으로 확립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도의 임명은 그들 중 죽은 사람이 있을 때에만 그 자리를 계승하도록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9절을 주의깊게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그 당시에도 온 세계를 다스리는 교회의 지도적 역원으로서의 십이사도 정원회를 영속시키기 위하여 여러 단계가 취해졌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십이사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명은 온천하에 두루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가 16:15 참조) 그것이 바로 그들의 맡은 바 임무였으며 그들은 가능하기만 하면 어는 곳이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여행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바울의 전도 여행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많이 여행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파했습니다. 때로는 죽음이나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개종시켰던 것입니다
6. 지역 관리 역원인 감독
사도들은 온 천하에 두루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 새로운 개종자들을 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은 그들이 부름을 받은 의도와는 본질적으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그들의 부재시에는 그 사업을 계속하도록 그 지역의 교회에 의뢰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한 무리의 신자들을 개종시킨 후에 관리 장로, 혹은 감독이라 불리우는 지역적인 역원을 그 지역마다 교회 일을 관리 하도록 임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임명된 감독이나 관리 장로들은 단지 그 지역의 관할권만을 가질 뿐, 다른 권한은 없었습니다. 감독은 보통 큰 회중 가운데서 임명되었고 관리 장로들은 대개 적은 회중 가운데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독이나 장로들 중에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몇 사람이 있으니, 바울이 서한을 내었던 (디도라는 이름으로) 디도는 크레타섬에서 교회를 관리 했으며, 이것은 디도서 끝의 각주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역시 디모데에게 서한을 보냈데 성경 디모데 후서 끝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디모데는 에베소 지방에서 처음으로 지방 감독 역원으로 임명되었었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곧 여러 도시에 작은 지부들이 생기게 되었고 각 감독이나 관리 장로들이 그들의 지역에서 일을 수행해 나갔으며 감독은 다른 지역의 감독과 서로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사도들이 교회의 전반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권한은 다만 그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한 감독이 다른 감독을 관리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이 많은 교회의 지부들을 누차 방문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그들은 교회 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사도들은 여러 지부에 서한을 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우리는 오늘날 성경에서 바울,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유다의 여러 서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는 다수의 도시에 많은 지부가 있어서 교회의 전반적인 권한이나 관할권을 가진 십이사도의 감리하에 감독이나 관리 장로들이 각 지부를 이끌어 나갔던 것입니다.
7. 박해로 지연된 발전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 사업을 방해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가버나움 사람들의 배반을 슬퍼한 구세주의 생애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3 참조)
또한 이러한 일은 십이사도의 사업과 초기 기독교회 전역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처음은 유대인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다음은 로마인들에게서 핍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교회의 수많은 회원들이 생명을 잃었으며 사도들도 하나씩 하나씩 피살되어갔습니다. 그러한 극심한 박해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서로 접촉하고 교회의 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회합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원래 의도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십이사도 정원회의 결원을 메꿀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최후로 단 한분의 사도가 남았으니 그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박해자들에게 붙잡혀 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한번은 끓는 기름통 속에 집어 넣어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있으리라는 구세주의 언약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21:22-23 참조) 그러므로 박해자들도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밧모섬으로 추방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지상에서의 교회 일을 지시하는 권능을 가진 마지막 사람으로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8. 베드로보다 오래 산 요한
서기 68년 경에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서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그 해에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하고 있었으며 밧모섬으로 추방된 후 서기 96년 도미샨(Domitian) 황제가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요한을 데려가셨고, 서기 101년 이후의 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왜 요한은 그곳에 더 오래 체재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악이 교회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교리와 의식이 바뀌어지고 권능이 무시되고 드디어는 교회 회원들까지도 악에 물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당시 십이사도들의 거의모든 서한이 교회를 배도하는 사실에 대처하기 위하여 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부활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회원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기독교의 절차를 심히 부패케 하였고, 이교도의 의식이 기독교의 의식에 스며들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리를 잃게 되었고 희랍의 철학이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를 설복하려 하였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부정하고 자기대로의 가르침과 형식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언되었던 것이었으며 주님께서는 이러한 배도를 미리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가버나움의 불신자들 앞에서 더 이상 기적을 베풀지 않았던 것과 같이 그가 임명한 십이사도를 배도하는 무리들 가운데에 놓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을 사람들 가운데서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9. 정처없는 방황
이리하여 교회는 전과 같은 권능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되었으며 여기 저기 산재한 도시에 몇 개의 지부가 그들을 인도하는 지역적인 권능만을 지닌채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지상에는 최후의 상소법정도 없게 되었고 각 감독이나 관리 장로들은 그들의 지혜대로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교회는 이제 사면초가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1. 정부가 주체가 되어 기독교인들을 불순분자로 낙인을 찍고 모반자로 몰아 심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강제로 생매장을 당했던 것입니다.
2. 당시 철학은 순수하고 참된 복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시키고 희랍에서 전래된 많은 이교(異敎)의 비법들을 교리와 의식으로서 교회에 받아들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로 신에 대한 교리 해석이 완전히 새롭고 다르게 되어 드디어는 니케아 신조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애급으로부터 어머니와 아이들에 대한 숭배 사상이 들어 왔고, 노우시스파의 이단설과 신 플라톤파의 철학이 참된 기독교의 교리를 혼돈되게 했으며, 프리지아로부터 대모(大母) 경배 사상이 들어왔고, 비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여러 의식으로부터 기도와 성가와 봉독과 암송을 하는 미사 의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사상은 우상 숭배 사상을 파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교도의 우상 숭배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명백히 끊어져 가던 희랍 정신은 교회의 신학과 예배 의식속에 생명이 다시 이어졌고, 수 세기 동안 철학을 지배했던 희랍의 언어는 기독교 문학과 의식의 매개물이 되었고, 희랍의 신비는 인상적인 미사 의식의 신비 속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윌 듀런트, 문명의 이야기[뉴욕, 사이몬과 슈스터 1994년] 3:595)
3. 교회 내에 있었던 시기와 음모와 개인의 야심.
사랑받던 요한이 사라진 후 200년 동안 이러한 상태가 계속해서 조장되었습니다. 교회는 여러 분파로 갈라졌으며 이미 이 세상에는 교리상의 일치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이 주로 논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침례와 같이 그렇게 단순한 의식이 토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형식이 변하고 또한 목적도 변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역시 침례 의식을 수행하는 데에 하나님의 권능이 필요치 않다는 교리가 유포되었으며, 유아 세례가 시작되었습니다. 감독간의 알력은 비참한 유혈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핍박이 가라않게 되자 교회는 다시 회원 수가 증가했는데, 여기에는 그 시대의 이교도 교회에서 세상적인 견해와 관습을 받아들여 교회 자체의 표준을 저속화하였던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10. 정치적 기회주의자
그리하여 콘스탄틴 대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양 숭배자로서, 거의 그의 전 생애를 보냈고 25년 동안이나 침례받지 않았으며 신자로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에서 기독교를 육성하였고 거기에서 그는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새로워진 기독교의 재신(再信)의 인기와 더불어 그것이 앞으로의 종파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래에까지 오랜 내란을 치른 그는 만약에 인기있는 기독교가 국교로 되면 황제로서의 기반을 굳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그의 휘하에 두었습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결과 황제는 교회에 방대한 세력을 주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기독교가 정부의 한 부분이 되었으며, 그 권력을 통하여 황제는 정부의 다른 모든 부분을 통치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의 교회에 여러 종파가 있다는 것을 안 콘스탄틴 대제는 그 어려운 일을 정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분파가 심한 곳으로 알려진 아프리카에 손을 써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황제로서의 자기의 권위를 세울 작정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다만 그는 태양 숭배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의 권위를 갖지 못하였고 어느 것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강력하였으므로 로마황제의 권력으로써 아프리카의 분쟁에 개입한 것입니다.
11. 교회에 영향을 미친 왕권
얼마 후 그는 다시 로마 제국의 황제이며 통치자의 권력으로써 그의 세력하에 있던 모든 나라의 감독들을 회의에 소집했습니다. 이 회합은 아르레스에서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어떤 성직자는 그 곳에서 인간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침례와 교회의 권능에 관한 의식들에 반대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는 무력으로 그들을 동의시키려 했습니다. 학살은 계속됐고, 유혈은 낭자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수많은 반대자들은 유형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자기의 듯대로 일을 처리했으며, 그를 반대한 감독 대신에 황제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권력으로 다른 감독들을 선택해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통치자들에 의한 감독 임명의 시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알렉산드리아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모든 감독들의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감독들의 논쟁을 듣고 있던 그는 아타나시우스 편에 동의했고 이에 반대했던 아리우스파들은 유형을 당하였으며, 그들 대신에 새 감독들이 임명되었습니다. 과연 이것은 어떠한 권력에 의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으로 입니까? 그는 아무 권능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황제로서 모든 것을 처리했고, 감독들을 임명했을 뿐 그의 권위는 세속적 권력이지 하나님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성직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콘스탄틴에 의해 지명받은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영감도 받지 못하고 침례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족을 죽여 살인까지 범한 순전한 태양 숭배자인 콘스탄틴은 그의 정치적인 세력으로 자기네들이 숭배하는 신의 본질에 관한 교리를 기독교의 그것과 바꿀 방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동안은 아리우스의 의견에 찬성하기도 했고, 또 한 동안은 아타나시우스 일파를 지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불과 몇 년 동안에 교회의 정통 교리를 몇 번이나 바꾸었던 것입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에게 물어보기로 합시다. 하나님께서 과연 콘스탄틴과 같은 인간을 통하여 교회를 인도하도록 하셨겠는가를 !
12. 국가에 예속됨
그런 일이 있은 후로 황제들은 빈번히 성직자들을 임명하고 면직시켰으며, 교회 내의 많은 문제를 결정 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으며, 소위 하나님의 사업을 인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로마 제국의 한 부분으로 밖에는 여기지 않았으며, 로마 황제를 교회 우두머리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성스러운 권능에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권한으로 행했을 뿐입니다. 자, 이제 어느 누가 이 교회를 참된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을 시저의 교회였다고 하겠습니까?
이 시기에 많은 인구가 사는 중심 도시의 감독들에게는 적은 도시나 촌락의 감독들 보다 자기네들이 우월하다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결과 수도 근방의 감독들은 지방의 감독들을 제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감독들이 서로 평등하다는 본래의 원칙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새로운 회중이 서울의 변두리에 모여 교회가 생기게 될 때면 도시의 감독들은 그곳을 감독할 자들을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후에 교외 감독 또는 지역 감독으로 불리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13. 감독들 사이의 적대 감정
대도시의 감독들 사이에는 극신한 적대 감정이 늘어가서 빈번히 싸웠으며 마침내는 로마 감독과 콘스탄티노풀 감독들만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또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과 예루살렘의 세 경쟁자들은 아랍족의 정복으로 제거되었고 나중에는 서로 파문한 후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본부로 하는 동방의 교회와 로마를 본부로 하는 서방 또는 로마교회의 두 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 둘을 가리켜 카톨릭 혹은 세계의 교회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서로 자기편이 진실한 교회라고 주장하고 서로가 상대편을 이단 교회라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Boulenger-de la Fuente저 "Historia dela Iglesia"
170페이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황제들은 자기들이 감독들의 회의를 소집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믿고 있던 원리만으로 질서와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으며, 더구나 그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들의 옳고 그름까지를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회의의 결정을 법으로 제정하여 전 제국에 효력을 내도록까지 했습니다."
위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황제가 7세기경에 살았던 포카스인데,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인 시라큐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황제는 시라큐스의 교황직을 박탈하여 보니훼이스 3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자연히 로마의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권위에 의한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역시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서라고 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포카스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었는지 아닌지 조차도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6세기 중엽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교회를 자기의 제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며, 국민들의 권리인 교회내에 있어서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평신도 동의권"마저 박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교회의 성직자만이 교회의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종교적인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황제의 명령을 받아들여 복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대를 하면 그들은 곧 유배를 당했습니다.
당시 서방교회는 동방 교회보다 더 빨리 발전하였습니다. 로마의 감독들은 재빨리 공세적인 정책을 취함으로써 정치적인 면에서 우세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로마제국이 붕괴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 큰 힘을 장악하여 왕들의 정책을 지시하고 세금을 걷어들였으며 국가 정책에 관여했습니다.
이런 처사로 서부 유럽의 통치자들은 분개하게 되었으며 면죄부의 판매를 반대하고 나선 마틴 루터를 도와 교황들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얘기는 널리 잘 알려진 것이므로 여기에 길게 쓸 필요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가 부패한 교회에 대한 개혁을 부르짖었을 때 그는 비난을 받았을 뿐 아니라 파문까지 당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일부에서는 강력히 반대하는 반면에 독일황제들에게는 그것이 깊은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헨리 8세 같은 사람은 루터의 반대파에 가담해서 교황을 옹호하는 책을 내었으며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영국의 왕들은 그 칭호를 대대로 물려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삭소니아 지방 출신의 선거후인 프레드릭은 루터가 암살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황제 앞에서 변호도 했습니다. 프레드릭은 평화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1523년에 죽은 후 그의 동생인 존왕이 그의 뒤를 이었는데 그는 자기 형과는 성질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존은 루터의 교리를 믿었지만 그는 분명히 루터의 견해와 황제의 교리는 양립이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황을 지지할 것을 취소하고 루터를 지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4. 왕권으로 이루어진 신교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로마 교황에서 분리하여 뚜렷한 교회를 설립코자 결심했습니다. 그는 루터와 그의 친구 매런크톤을 지명해서 예배 의식을 만들고, 루터의 견해를 확립할 교회 행정의 체제를 세우고 성직자의 의무와 월급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개혁자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이 새로운 교회는 삭소니아 지방에 있는 존왕의 후원 아래서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의식도 행해졌고, 설교도 들을 수 있어서 사람들은 종교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이 새로운 교회의 지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권능으로 이 새 교회는 설립되었을 까요? 삭소니아 지방의 존왕의 권능으로? 그렇다면 그는 누구이었겠습니까? 그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묻지만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신성한 권능을 가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못하였으며 아무 권능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정치적인 권능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비록 교황에게 충성하여 남은 몇몇 독일의 제후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이 이에 합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후에 루터교라 불리운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교리의 대부분은 그들이 "개혁"을 부르짖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떠난 것이 많았지만 사람들에게는 평판이 좋아서 빠르게 퍼져 갔습니다.
스칸디나비에서는 왕들이 솔선하여 카톨릭의 감독들을 배척하고, 그 대신 신교를 세워 그 교회 일을 수행해 나갈 권리를 부여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신교를 국교로 정했으며 국민들도 불평없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성스러운 권능이 작용했을까요? 아닙니다. 변화를 초래케 한 것은 왕들의 정치적인 권력이었습니다.
또한 칼빈과 파렐이 개혁을 성취한 스위스에서도 정치적 권력이 개입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제네바 통치기구(평의회)는 카톨릭 감독들의 종교적 직원을 인수하여 신교를 세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 변화는 비록 종교적인 것으로 위장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감독의 직원을 무시해 버린 평의회는 그 자체가 감독의 기능과 임무를 떠맏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의회는 감독을 제네바의 교회 우두머리의 직분에서 파면시킴으로써 정부위 우두머리의 직분에서도 파면시킬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와 정치의 양면에 걸친 권리를 계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 때문에 시민의 권한은 교회의 것이 되었습니다.
15. 왕권으로 이루어진 다른 신교
이때 영국에서는 헨리 8세가 카톨릭 교회의 주도권에 굴하지 않고 대항했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에 간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습니다. 화가 난 그는 교회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의회의 협력으로 자신의 교회 즉 영국 국교를 설립했습니다.
다시 묻는 바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행해진 것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한 정치적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된 교회였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편의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이 만든 것이겠습니까?
신교 운동의 여파는 여러 나라로 번져갔습니다. 모든 국가는 당시에 있던 교회를 개혁하려 하거나 성경의 개인적인 해석과 견해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려고 했습니다.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하늘로부터의 계시는 주장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예배 중에 하나님의 권능의 회복은 공언되지 않았습니다. 국교는 조직되고 발달하여 그 나라를 지배한 정치적인 기관에 의해 권위가 서게 되고, 모든 사람에 의해 인정되거나, 그것은 오로지 정치적 전환이었을 뿐이었지 하나님의 권능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어떤 그룹에서는 성경을 자기대로 해석하고, 연구하여 자기들의 교회를 세웠으며 결국 자기들의 뜻대로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에 정치적인 색채는 없었지만 보통 국교와 마찬가지로 그네들의 행동이 성스러운 권능으로 인도된다고는 주장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6.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성스러운 권능
만일에 이들교회가 성스러운 권능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들은 과연 무슨 권능으로 하나님의 의식을 행하였겠습니까?
경전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자들만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의식을 행할 수 있음을 자세히 말하여 줍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권능을 부여받지 못한 자들을 거절허셨다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훈은 히브리서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4절에서 저자는 신권과 그 권능에 관하여 얘기해 줍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것은 주님의 본보기 입니다. 아무도 아론과 같이 부름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의식과 신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론은 어떻게 부름을 받았겠습니까?
출애급기 28장을 보면 우리는 상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예언자인 모세에게 전해졌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위에서 인용한 말씀을 주시어 그가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을 불러 성임할 권리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즉 그 시대의 특별한 요구에 따른 계시였던 것입니다.
이상의 구절로 보아 전도하는 데에는 누구나 부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계시를 주시며, 또 예언자는 그의 지시하에서 그 일들을 수행하도록 개개인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아무도 아론과 같이 부름을 받지 않으면 이 영광을 누릴 수 없고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는 반드시 예언자가 있어야 하며, 계속적인 계시가 있어야 하고, 계시에 의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부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7. 베드로와 바울의 시대처럼
이것이 베드로와 바울의 시대에는 어떠했는지를 살펴 봅시다. 바울은 아주 젊은이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한을 썼는데, 아무도 그의 젊음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을 조심없이 말며" (디모데전서 4:14)
마틴 루터와 헨리 8세의 시대에 이 세상들은 하나님이 계시를 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하늘은 막혔으며, 계시는 끊어졌고, 이 이상 선지자는 없으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성경에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계시도 없고 선지자들도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직에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성직자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또 그들 자신이 교회를 조직할 권리를 가진 듯 자부하는 자들로부터 부름을 받았던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없이는 사람은 주님을 위한 성직을 이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고는 지상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선지자를 통한 계시없이는 성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몇 사람들은 단체를 조직하고 그것을 교회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계획에 성스러운 인도가 없다면, 우리는 단체나 교회가 사람의 지식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수긍해야만 됩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만든 단체나 교회가 선한 일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국에 있게 될 구원을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18. 좁은 그리스도의 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분 안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방법대로 구원의 사업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 다릅니다. 주님은 그의 교회와 복음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교회에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에베소서 4:12) 부름받은 예언자와 사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앞에서 인용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주신 교훈을 기억하도록 해 봅시다. 교회는 인체에 비유됩니다. 인체는 모두가 하나같이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느 부분도 다른 것에게 "나는 네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교회가 이 지상에 있습니까?
1830년 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그러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이 책자에 서술한 바와 같이 타락하여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30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참된 교회를 지상에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 주시기 위해 현대의 선지자와 사도들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인도로 그들은 교회를 고대의 그것과 같이 조직하셨습니다. 신권의 권능은 천사들의 활동에 의해 지상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전대(前代)의 모든 은사와 권능은 회복되었습니다. 은사와 권능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조직에서 온 것이 아니며 인간 사회에서, 어떤 정치적인 기구에서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스러운 천사들이 이 지상에 순수하고 정결한 은사와 권능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 회복된 교회는 바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본부를 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입니다. 그 조직은 성경과 일치하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신권이 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 바울 시대의 교회와 같이 선지자들로 인도됩니다.
이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이 참다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태인이건 이방인이건, 또는 종이건 자유인이건 간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크 이 피터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