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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예수 ·속죄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을 보라!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3.


니전 11:16

또 그가 내게 이르기를 너는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을 아느냐?

 

니파이전서 11장26절과 27절, 그리고 22절에 따르면 지상에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를 뜻함)의 깊으신 사랑 [겸손함]은 ... 필멸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필멸의 몸을 가진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 개인의 실제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을 뜻함)의 깊으신 사랑은 ...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험과 육신의 고통, 주림, 갈증과 피로를 겪으리니 죽음은 아닐망정 인간이 감당치 못할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모사3:5~8), 결국은 가장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사망하기에 이르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브르스 알 맥콩키, Mormon Doctrine, 제2판 [1966], 155쪽)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의 몇 가지 예 (리차드 시 에즐리)

그는 영광스럽고 승영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필멸의 여인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낮아지셨다.
그는 완전하고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처럼 침례를 받으심으로써 낮아지셨다.
그는 승영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겸손하게 성역을 베푸심으로써 낮아지셨다.
그는 모든 권세를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유혹과 조롱과 채찍질과 비난과 배반을 스스로 감당하시며,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낮아지셨다.
그는 세상의 심판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에게 심판을 받으심으로써 낮아지셨다.
그는 아무도 그의 생명을 취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낮아지셨다.

 

낮추어 오심은 자발적으로 지위나 위엄을 낮추어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칠십인이었던 제럴드 엔 런드 장로는 이 단어가 구주께서 필멸의 세상으로 오신 일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 언급했다.

“신회의 구성원이자 아버지의 장자이며, 창조주요, 구약의 여호와이셨던 예수께서 이제 그분의 신성과 거룩한 지위를 버리고, 모든 영광과 존엄을 벗으시고, 완전히 육신의 부모에게 의지하는 무력하고 작은 아기의 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화려한 지상 궁전으로 오셔서 온 몸을 보석으로 감싸기보다는 초라한 마구간으로 오셔야 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랍니다.

천사가 니파이에게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을 보라!’ 하고 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제럴드 엔 런드)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이라는 이 독특한 구절은 논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구절은 영문 니파이전서11장 이외의 어떤 경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낮추어오다"는 일반적으로 동사로 사용되지만 명사로는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

이 구절의 맥락에서 이는 전세의 하나님인 지극히 고귀한 신분의 여호와가 가장 초라한 상태의 필멸의 몸으로 태어나게 됨으로써 이루어진 자발적인 포기를 의미한다.

사전은 '낮추어 오심'을 '지위가 낮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높은 지위와 존엄성을 자발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정의한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그것은 고귀한 위치로부터 평범한 위치의 장소로 내려오거나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엔사인, 2001.12월호

)

마리아에게서 나시기 이전에, 주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다.

동정녀의 잉태 후에, 그는 목수의 아들로 보였다.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은 그리스도의 침례를 언급함에 있어 다시 인용되고 있다. (26-27절)

이 경우에 그것은 죄인을 위해 계획된 의식을 받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낮추심을 의미한다.

주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침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침례를] 받으신다." (고든 비 힝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