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세상만사

가야가 기독교 국가였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3.

가야가 기독교 국가였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도마가 한국에 왔었다.

좀 황당한 주장같지요?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쳐 줄 리는 만무하니 당연합니다.
1세기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인도를 거쳐 한국까지 사람이 다녀가셨다고?
자, 이제부터 드리는 설명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아래의 자료는 여러분들의 자료를 종합정리한 것입니다.

김병모박사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 명예교수,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분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김병모박사의책_허황옥루트인도에서가야까지.png
조국현박사
1988년 가야국이 기독교국가임을 최초 발표. 기장측 목회자, 삼국유사중 가락국기 해설, 가락국 20년 연구

정학봉박사
한국역사철학자, 대신대대학원원장, 인도 18회 방문하며 조국현 박사의 이론 입증

이장식박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Th.B),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Th.M), 서독 뮌스터대학 신학부
미국 하버드대학 신학부(Th.M), 미국 드류대학 대학원(Ph.D)

1. 도마의 행적
1) 도마는 40년간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도마의 사역은 
전반기 20년= 에데사 탁실라, 한국의 가야
후반기 20년= 인도의 호칭, 챙나이에서 활동했습니다.

2) AD 42~47년까지 한국에 6년간 머무르며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고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kimsuro.jpg


3) AD 47년에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했습니다.
도마는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 총회에 선교보고를 하러 가던 길에 
인도에 들러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시켜주고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4) 도마는 땅 끝이 인도인줄 알고 왔었습니다
이 당시 인도 역시 로마의 동쪽 끝 속국이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인도까지 왔었는데
막상 인도에 와서 보니 인도와 교역하는 더 땅 끝인 한국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가야와 인도는 교역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정황은 아래에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2.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사람.
1)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습니다.
아이타국은 현재 인도에 있는 겐지스강 아이오디아라는 조그마한 읍이 있습니다. 
그 옆에 페자바드란 큰 도시가 있습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는 약초, 향신료 등을 수출하는 아유로베다 무역상을 했던 소왕국의 왕이었습니다.
이 아유타국에서 허황옥은 48년에 한국(가야)로 시집 왔습니다.
가락국기에 허황옥이 시집오면서 들고온 물품들을 보면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됐던 물품들이었습니다.
이런 물품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도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가락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 교두보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현금이 발견됐습니다.
  (오수전, 화천, 왕망전)
*1세기 당시는 한국과 달리 세계에서는 페르시아전쟁, 알렉산더가 인도까지 왔었던 시기이므로
  바닷길도 엄연히 잘 발달돼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요디아허황옥기념탑.png
2) 허황옥의 후손들
허황옥이 10왕자 2공주를 낳습니다. 그 후손이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입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로 부터 내려오는 왕손이 인도에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김종필씨가 아유타에 있는 그 후손을 찾아내서 김해에 데려와서 허황옥릉에 참배도 하고
기념식수도 해놓았으며 이런 인연으로 페자바드시와 김해시는자매결연까지 맺은 상태입니다.
*실지로 한국어 속에는 인도어(드리비다어)가 400여개나 있습니다. 특히 농사에 관련된 유사 단어가 있습니다.
 (쌀-Sal, 벼-Bya, 가래-Kalai, 메뚜기-Metti, 풀-Pul 등)
김해김씨아유타국자매결연.png
3) 가락국기에서 밝히는 아유타국
삼국유사의 내용 중에 가야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가락국기에 보면 허황옥은 아유타에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요디아란 말 자체가 인도 의학, 아유로베다 의학을 하는 사람이 옛날에 그 왕국을 하다보니
아유타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인도에서 아유로베다란 의학이 의료관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아유타국이 태국의 나라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뿌리를 불교로 돌리려는 노력입니다.
아유타국이라는 나라는 전세계에 두 곳이 있습니다. 
 (1) 태국의 아유타국은 15세기에 있었던 나라이지만, 
 (2) 인도의 아요디아는 BC 6세기부터 있었습니다. 허황옥은 전의 인물입니다. 
 -김병모박사(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4) 서울대학교 서정선교수의 DNA검사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에는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후손들의 유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묻힌 고분의 뼈의 DNA검사 결과 허황옥은 인도의 타미린과 같은 염색체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허황옥가 한국사람, 일본사람, 중국사람 등 많은 설이 있다가 서교수의 발표로 모든 설들은 잠잠해 졌습니다.

3. 김수로왕은 누구인가?
1) 역사 교과서 = 기마민족
그 전에는 알에서 나온 신화적 인물로 소개했지만 현재는 기마민족 정도로 본다고 실려있습니다.
스키타이족-말안장쌍어.png
2) 흑해의 스키타이 민족
김수로왕은 흑해 옆에 있는 스키타이 출신 왕자입니다. 
스키타이 민족은 문자가 없으면서 금은세공이 굉장히 발달한 민족입니다.
신라의 금관, 귀고리 등에 보이는 '무금세공방법'이라고 하여 점이 찍히는 세공법입니다.
이 방법은 스키타이민족만 가능한 것을 나중에는 신라도 배우게 된 것입니다.
http://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803/200803295443842.jpg
이 스키타이족들은 황금장식과 함께 땅을 파서 시신이 담긴 목곽(木槨)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을 쌓아올린 소위 적석 목곽분이라는 무덤양식이 특징입니다.
 스키타이족이 흉노족과 훈족으로 불리우는 북방 유목민족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진,한 시대에는 흉노, 
      수.당시대에는 돌궐(투르크=위그르=터키),  
      고대 그리스(폴리스 시대)에서는 스키타이, 
      로마(제정시대)에서는 훈(후니)족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따라서 흉노(스카티아)가 인종학적으로는 아시아족에 속하는 황인종 퉁구스계열에 속합니다.
                             (시베리아.만주.한반도 사람들을 지칭하는 동호=전통적인 동이족)
 신라 경주 김씨들이 비문에 자신들을 흉노족의 후손들이라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경주지역의 김알지 후손들은 흉노족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문헌의 기록의 근거는 고대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왕 손권이 고구려를 ‘흉노의 왕’이라는 ‘흉노의 선우’라고 지칭한데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803/2008032914528660.jpg

 경주의 괘릉 무인석입니다.  
 얼굴 모양이 중앙 아시아인 - 아시아에서 서진한 스키타이족(흉노)이 유럽인들과 피를 섞여 동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김수로왕의 청동 솥
김수로왕의 유물중에는 김수로왕이 들고 온 청동 솥이 있습니다. 
그 청동솥은 쇠꼬챙이로 꿰어서 고기도 삼고 차도 끓이는 유목민들의 것입니다.
이것이 1990년대 초반에 김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고고학계에서는 
김수로왕은 스키타이 사람이라고 다시 굳혀지게 되었습니다.

4) 김수로왕은 유태계 스키타이인
성경에 보면 골3:11에 나오는 '스구디아인'이 바로 스키타이인입니다.
스구디아인은 흑해 야만족인데 유대인들이 그리로 와서 유대인 스쿠디아인이 됩니다.
이들이 철기 문명을 가집니다. 말을 타며 강력한 기마민족이 됩니다.
북쪽으로 거쳐 중국까지 옵니다. 정학봉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거기서 성을 쌓고 정착 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남하하게 되었고 고구려, 신라, 백제 등에도 많이 흡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김수로왕은 가야에 온 것입니다. 
김수로왕은 스키아티에서 와서 중국의 소김천씨라는 마을을 거쳐왔기 때문에 성은 김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해의 구지봉에 왔을 때에 얼굴도 다르고 말도 못하니 가마안에 있으면서 통역을 통해 얘기를 나누고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김해 박물관에 가면 스구디아 인이 왔다는 유적이 있다고 합니다.
김해지역과 경주지역 고분에서 발굴된 동복.각배.황금장식 등 북방유목민들의 유골과 유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김수로왕은 유대인이란 것입니다. 물론 혼혈입니다.

사도들의 사역 방법은 보통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도마가 인도에 왔을 때 찾아간 아유타족 역시 유대인 혈족입니다.
그런 연유로 도마가 한국에 왔을 때 김수로왕이 유대계인 관계로 그렇게 만난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 시대때부터 유대인들(이스라엘)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상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왕상9:26,10:22).
기원후 얼마까지 전세계를 다니면서 상업을 한 민족은 전세계에서 유대인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민족은 고작해야 이웃나라와 무역하는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불교 신문에서도 불경을 나른 사람은 100% 유대인이라고 한답니다.
정학봉박사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6일을 그렇게 이동하다가 7일 안식일에는 
예배를 드려야하므로 
크고 작게 모여서 집성촌을 이루고 회당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고조선이 만들어 질 당시 BC2333년경은 
노아 홍수 이후 민족들이 부족집단 형태로 온 세상으로 이동할 때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의 증손자 에벨/창10:25) 
욕단의 후손이 계속 동진하여 황하유역에 자리잡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고조선을 세운 동이족입니다.
당시 한반도 인근에는 250여개의 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으뜸은 동이족이었습니다.
동이족에게 밀려나 황하 남쪽으로 밀려난 상족이 은나라를 세우고 오늘날의 중국이 됩니다(
BC2100).
상형문자인 한자를 처음 만든 것은 바로 동이족입니다(C.H.Kang이나 Nelson은 지나인이라고 주장하나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 속에 창세기 1~11장의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게 된 것입니다.

4. 허황옥은 어떤 사람?
1) 사도 도마가 에데사를 거쳐서 탁실라(터키 이슬라바마드 옆)에서 왕궁을 짓고
인도 아유타국을 거쳐올 때에 허황옥의 나이는 10살이었습니다.
(참고로 도마는 건축기술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왔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김수로왕을 세례주고, 부활절에 가야국을 기독교국으로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고, 철기문화를 만들고 많은 흔적을 남기고 다시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허황옥의 나이가 16세였습니다.

2) 인도로 간 도마는 허황옥의 아버지에게 가야에 김수로왕이 모든 혼처를 마다하고 허황옥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가락 국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허황옥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동시에 꿈을 주었다고 합니다.
허황옥이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죽으면 죽으리란 심정으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젯밤 꿈에 함께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아직 베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 짝을 삼게
   하라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
(삼국유사 가락국기)
*상제란 말은 하나님이다. 우리나라 최초 성경에는 전부 하나님을 상제로 번역함.
이렇게 중매를 서고 나서 도마는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3) 허황옥이 시집 오면서 타고 왔던 배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싣고 왔던 돌이 있습니다.
김수로왕은 공주가 오는 날짜에 맞춰 크게 환영행사를 열었고 공주를 태워온 20여명의 뱃사공들에게
큰 선물을 줍니다. 그 선물들을 배에 실으려니 당연히 싣고 왔던 돌들은 강변에 내려두고 간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탑으로 쌓아놓은 것입니다. 물론 이 돌들은 인도 산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