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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교사업

로렌조 스노우-선교사로서 어려움에 직면하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10.


로렌조 스노우는 1837년 봄, 오하이오 주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교회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랬듯이,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고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다. 그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1837년에 [나는] 마음에 간직했던 모든 의향과 계획을 단념했다.”로렌조는 미 동부 지역 대학에서 ‘고전 교육’을 공부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또한 지갑이나 전대 없이, 다시 말해 선한 사람들이 음식과 잠자리를 줄 것이라 믿고 돈 없이 여행하는 데에도 동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특히 로렌조 스노우에게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가족 농장에서 번 돈으로 자신의 일을 항상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누군가에게 제 음식과 잠자리를 의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딘가로 멀리 간다고 하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돈을 충분히 갖고 떠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을 떠나 먹을 것과 누울 곳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게 되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듭니다. 제 몸에 밴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셨다는 확실한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스노우 장로가 선교사로서 처음으로 진행한 모임에 삼촌들과 숙모들, 사촌들과 친구 몇몇이 참석했다. 처음 설교를 한 날을 회상하며 로렌조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저는 꽤 숫기가 없었으므로 …… 그 자리를 찾아 준 친척과 친구들에게 연단에 서서 설교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날 밤까지 거의 온 종일 기도만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저는 혼자 밖으로 나가서 말할 내용을 알려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나중에 숙모님은 말씀하려 일어서는 제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떨릴 정도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을 열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할 수는 없지만 숙모님 말씀으로는 제가 거의 45분에 걸쳐 훌륭하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로렌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저는 영감의 영이 할 말을 생각나게 하고 제가 말하게 도와준다는 것을 믿었으며 확신했습니다. 저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거룩한 신권 권능과 영감을 주시기를 힘 있는 기도로 간구했습니다. 회중 앞에 섰을 때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한 마디도 없었으나, 입을 열자마자 성신이 강하게 임하여 제 마음을 빛으로 채웠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청중에게 전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 스노우 장로는 삼촌 한 분과 숙모 한 분, 사촌들과 친구 몇몇에게 침례를 주고 확인 의식을 베풀었다.
스노우 장로는 친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다른 도시와 마을에서 일 년 가까이 선교 사업을 계속했다. 그는 이렇게 보고했다. “저는 선교 사업을 하는 동안 오하이오 주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그들은 여전히 진리에 충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로렌조 스노우는 이 첫 번째 선교 사업에서 돌아온 후 다시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집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선교사 부름에 따른 영이 마음을 너무나 강하게 재촉해서 한시바삐 그 일에 종사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미주리 주, 켄터키 주, 일리노이 주에서, 그리고 다시 오하이오 주에서 회복된 복음을 전파했다.
스노우 장로와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예로,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켄터키에 있는 어느 집에 모였을 때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설교를 마친 스노우 장로는 자신이 그곳을 떠날 때를 노려 몇 사람이 공격을 가할 것임을 알아챘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집안에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의 손이 “우연히 내 외투 호주머니에 닿았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노우 장로 호주머니에 뭔가 단단한 물건이 있다는 걸 느낀 그 남자는 즉시 동료들에게 이 선교사가 권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노우 장로는 그 일에 관해 나중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것으로 끝이 났다. 범법을 저지르려고 했던 그 사람들은 못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스노우 장로는 약간의 웃음과 함께 덧붙였다.“그들을 놀라게 하여 나를 지켜준 문제의 권총은 다름 아닌 작은 휴대용 성경으로, 친애하는 축복사 조셉 스미스 [일세]가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스노우 장로를 환영했으며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미주리에 있는 한 정착지에서는 스노우 장로를 통해 복음을 배운 다섯 사람이 한겨울에 침례를 받기도 했다. 그때 스노우 장로와 사람들은 침례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잘라내야만 했다. 그 추위 속에서도 개종자들 중 몇몇은 “물에서 올라오더니 손뼉을 치고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양했다.”
스노우 장로가 처음으로 수행한 두 차례 선교 사업은 1837년 봄부터 1840년 5월까지 이어졌다. 그가 쓴 편지를 살펴보면 당시 스노우 장로가 어떤 상황에서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남은 겨울[1838~1839년]을 여행과 설교를 하며 보냈다. …… 그동안 다양한 성공을 거두었고, 내가 받은 대우도 그러했다. 어떤 때는 정말 극진히 대접하며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때는 무례하고 사나우며 모욕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따르기로 공언한 예수님이 받은 대접보다 더 심한 대접을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셨고, 힘든 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크나큰 축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