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카우드리는 1806년 버몬트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 관해 알게 되어 뉴욕 주, 팔마이라에 있던 조셉의 부모의 집에 사는 동안 선지자의 부름에 대해 특별한 증거를 받았다. (교리와 성약 6편 머리글, 14~24절 참조) 1829년 4월에 올리버 카우드리는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주, 하모니로 갔다. 그는 선지자가 금판에서 몰몬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 서기가 되었다.(교리와 성약 8편 머리글, 1~12절; 9편 머리글, 1~14절 참조) 그는 금판의 세 특별 증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몰몬경 앞 부분의“세 증인의 증언”; 17편 머리글, 1~9절 참조) 그는 신권 권능이 회복되었을 때, 그리고 많은 다른 계시를 받을 때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함께 있었다. (교리와 성약 13편 머리글; 18:37; 20:3~4; 21편 머리글; 27:8, 12; 28편 머리글, 1~16; 47편 머리글; 69편 머리글;104:28~30; 110편 머리글, 1~16; 111편 머리글 참조; 또한 조셉 스미스-역사 1장66~72절 참조) 그는 또한 교회 회장 보조로 봉사했다. (스미스, 구원의 교리, 1:200 참조) 올리버 카우드리는 1838년 교회를 떠났으나 1848년 돌아와서 재침례를 받았다. (교리와 성약 124:95 참조) 그는 유타 주로 이주하기 전에 1850년 미주리 주에서 3월 3일에 사망했다."
"1829년 겨울 올리버 카우드리는 조셉 스미스 일세의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에는 교사가 학생의 집에 기거하는 것이 관습이었으며, 스미스 일가의 자녀들이 올리버 카우드리의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와서 함께 머물렀다. 그는 거기 있는 동안 몰몬경 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스미스 부친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스미스 부친은 마침내 승낙하였으며 올리버 카우드리는 그가 그 이야기를 해 주었던 몇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루시 맥 스미스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이 이야기를 들은 즉시 스미스 부친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듣고 몹시 기뻤다고 말했으며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며 그의 마음에 조셉을 위하여 필기하는 특권을 받아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더 나아가서 학교가 끝나면 그를 일차 만나볼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다음 날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이 제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잠시 동안도 그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저는 무엇을 할지 결정하였습니다. 사무엘 스미스가 봄에 조셉 스미스와 함께 지내기 위하여 펜실바니아로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함께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 저는 그것을 주제로 기도해 왔으며 제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제가 할 일이 있으면 그것을 행할 결심이 되어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역사, 139) "4월이 되어 사무엘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조셉을 방문하기 위하여 펜실바니아의 하모니로 갔다. 루시 맥 스미스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조셉은 세상적인 일로 너무나 바빴으므로 필요한 만큼 빨리 그의 영적인 일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가 일하는 데 불편한 점이 한가지 더 있었으니 그것은 부인이 집안을 돌보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으므로 조셉 스미스를 위하여 아주 적은 시간을 내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복잡한 문제로 인하여 조셉은 사무엘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가 도착하기 3일 전에 주님에게 천사의 약속에 따라 그에게 서기를 보내 주시도록 부탁드렸다. 그리고 그는 수일내에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따라서 올리버 카우드리가 방문한 용건을 이야기했을 때 조셉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조셉 스미스의 역사, 141) "이 이야기는 선지자의 역사에서 이 시점에서 계속되었다. "나는 올리버 카우드리씨가 도착한 이틀 후에(4월 7일) 몰몬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가 나를 위하여 적는 일을 시작했다. (교회사, 1:32-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