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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왜 유대인들은 구원자에 관한 예언을 잘못 해석했는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8.

세월이 흐르자,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성취되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은 예언의 말씀과 글을 잘못 해석했다. 그들이 배도의
길로 더욱 깊이 빠져 들수록, 예언의 참된 의미를 더 잃게 되었다.
그들이 메시야에 대하여 정치적인 연관을 찾아왔던 것은 그러한
믿음을 가질 만한 경전의 근거가 있었으므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수백년 전에 선지자 스가랴는
주(메시야)께서 유대인 적대자들에게 대항하여“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스가랴 14:3) 싸울 것이라고 기록했다.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그 나라를 대적했던 모든 강대국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스가랴 14:1~15 참조) 이사야는 메시야가
어깨에 정부를 메었다고 말했다.(이사야 9:6 참조) 그 말은 분명히
정치적인 왕국을 암시한 것이었다. 수많은 다른 선지자들이 권세와
영광으로 그가 오심을 예언했다.
그러나 이 예언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메시야가 오심에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고통받는 종”이라는
것이다. 이사야 53장은“간고를 겪는 종”의 한 놀라운 예를 보여
준다. 그것은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해 준다. 그는“간고를
많이”(3절) 겪고“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7절)과 같으며,
인간의 모든 범법을 혼자서 짊어질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다른
묘사는“영광의 왕”이라는 것이다. 스가랴 14장과 이사야 9장에는
“영광의 왕”의 예언에 대한 예가 들어 있어, 구원과 정치적인
권력, 그리고 이스라엘의 적들이 묘사되어 있다.
현재의 계시와 역사적인 관점의 혜택을 받고 있는 후기
성도들은 이 이중적인 의미를 쉽게 이해한다. 메시야의 오심이 두
번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처음에는 육신의 인간으로 오셨다.
그는 구유에서 태어나 잘 알려지지도 않은 마을에서 살았으며,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는 시도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와 같이
오심은“간고를 겪는 종”의 예언에서 미리 예언되었다. 그의 두
번째 오심은“영광의 왕”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왕국을 정복하고 바빌론의 세력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낼
것이다.
비극은 대체로 유대 민족이 두 가지 의미의 오심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영적으로 암흑 상태에 있었던 그들은 다만 정치적인
구원자만을 찾았다
. 어느 후기 성도 학자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때로부터 주후 70년에 로마
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까지, 단기간 불안하게 있었던
마카비 반란을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의
잔류민은 강대 국가에 소속되어 지냈다. 우선 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희생되었으며, 그런 다음 그들은 페르시아인들과 그리스,
이집트의 놀레미 왕조와 기타 여러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 통치 체제를 설립하기를 열망한 마카비 당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강대국인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여러 세기가 흘러도 이방 국가에 예속되는 상태가 끝없이
계속되자 유대인들은 그들의 해방을 갈망하게 되었다. 메시야의
개인적인 구원의 희생이 따르는 첫 번째 오심에 포함된 선지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시현과 마지막 날에 메시야의 시대(복천년의
통치)를 시작하는 그의 두 번째 오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선지자들이 모세와 다윗이 그들을 구해 냈던 것 같이
메시야로 나타나 그들을 구해 줄‘모세와 같은 사람’및‘다윗의
자손’을 약속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들은 구속주의 생활의 인간적인 면을 잊고서,
다만 정치적인 문제에 또는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일에 관련된
예언만을 기억했다.”(데이비드 에이치 얀, “메시야에 대한 기대”,
Ensign, 1972년 4월호, 20~21쪽)
이와 같이 하여, 구주가 로마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거절하자,
유대인들의 희망은 무너졌다. 그가 대중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예언의 완성이 아니라 그는 약속된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궁극적인 증거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