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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우리는 근면과 인내,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온전하라는 주님의 명을 따를 수 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7.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이 말씀과 관련하여 저는 구주께서 산상수훈으로 남기신 마태복음 5장 마지막 구절 중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
우리는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위대한 약속을 하셨으며, 그 약속을 얻을 준비가 되기 전에 주님 앞에서 온전해져야 한다는 특별한 요구가 그[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한 구주께서는 자신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온전해지라는 동일한 요구를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후기 성도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도록 제안 형식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은 후기 성도들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율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온전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여느 때처럼 따를 수 없는 요구를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님은 그분의 거룩한 명을 따르도록 후기 성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요구를 하셨을 때, 그 율법을 준수하고 요구받은 일을 모두 성취할 자격을 갖추도록 방편을 주셨습니다. 복음이 아브라함에게 전파되었다고 알려진 것으로 보아 그는 성령이라는 특권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신성한 도움을 복음을 통해 받았습니다. 복음이 없다면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또 복음이 없다면 주님 앞에 온전한 상태로 이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후기 성도 역시 초자연적인 [하늘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는 그와 같은 도덕적,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또한 후기 성도라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율법을 한 번에 다 준수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계명을 지키려면 많은 인내와 더불어 마음과 정신에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 시도에서 실패하더라도 위대한 요구를 따르려는 결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서 이 신성한 율법에 따라 행하는 신앙이 있었음에도, 호되게 시험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의를 불태웠기에 계속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율법에 따라 살기란 불가능하며, 온전해지는 일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일은 전능자께서 명하신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그때가 바로 힘과 이해력, 예지와 은혜를 주시도록 주께 간구하는 위대한 특권을 사용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영속적으로 싸워야 할, 육신이 지닌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5 [104쪽 제언 1과 2 참조]
주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따른다면, 우리는 그렇게 행하는 범위 내에서 온전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나라와 친척들을 떠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아브라함서 2:1~6 참조] 그가 이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면 주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에 응했으며, 집을 떠날 때 그가 이 온전하라는 성스러운 율법에 따라 생활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일에서 실패했다면 그는 분명 전능자의 요구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친의 집을 떠날 때, 이 시험을 받을 때 양심과 하나님의 영이 용납한 일을 행한 것이며, 이 일을 수행할 때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후기 성도들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전능자의 음성이 아브라함처럼 부친이 살던 땅과 친척들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한,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상황과 범위 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지식이나 능력 등과 같은 면에서 온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성실성, 동기, 결의 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큰 바다를 건널 때 투덜거리거나 불평하지 않고 권고를 따르며 모든 면에서 알맞게 처신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라신 만큼 온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해의 왕국으로 데려가려고 계획하십니다. 주님은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서 태어난 그분의 자녀이며, 우리가 아버지 면전으로 돌아갈 때 그분의 영광을 충만하게 받을 준비를 갖추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동기, 소망, 감정, 애정이 순수하고 거룩하며 성결하게 되도록 이 율법을 지킬 능력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종속시키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겠다는 것 외에는 사사로운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행동에서 온전한 사람이며, 무엇을 하거나 어디를 가든 간에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기 쉽고 육신의 연약함에 굴복하기 쉬우며 다소 무지하기 때문에 잘못을 범할 소지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점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분께서 우리 손이 미치는 곳에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방편을 두셨다는 것을 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구주께서 언급하시고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온전’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온전하나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은 이 율법에 관한 한 온전합니다. 또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죄-로렌조 스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