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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我聲高處

우연일까?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4.

홍원표~1.JPG

 

(뒷줄 오른쪽 가장 큰이가  본인임)

 

저는 강원도 삼척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고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비록 10살 남짓까지 그곳에서 살았지만 나의 온 정서와 바탕은 높은 산깊은 골맑은 물입니다봄이면 지금 생각해보니 20대의 젊은 새댁이었던 어머니와 겁 없이 무기라고는 큰 낫자루 하나 광주리에 담아 여덟 살 어린 아들도 남자라고 어머니의 동무가 되어 깊은 산에 소나무 껍질과 봄나물을 뜯으러 같이 다녔고어린 시절 여름철 맑디 맑은 시냇가에 발을 담그면 피래미나 은어 같은 물고기가 잘 씻지 못한 소년의 발과 다리에 붙은 때를 뜯기 위하여 모였습니다가을이면 소 먹이러 가서 골짜기에 소를 풀어 놓고는 당시에는 장에 내다 팔 생각을 할 줄 몰라 지천에 널린 송이버섯을 양껏 따서 돌을 달구어 구워 먹곤 했었습니다.

그래도 배가 허전하면 아직 홍시가 되지 않은 익은 떫은 감을 따서 싸리나무로 벌집처럼 찔러서 불에 구워 먹곤 하였는데이때 찔러둔 구멍으로 떫은 물이 빠지고 겉이 까맣게 타면 그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맛이란 정말 잊기 힘든 고향의 맛입니다.

그런데  10가구 남짓 살고 있던 이런 시골마을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철저히 서당나무를 섬기고 서당나무 옆에 집을 짓고 사시던 할아버지께서 한국으로 파송된 초기 미국 선교사들에게 개종이 되어 감리교인이 되셔서

집을 서당나무 옆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시고 대목이셨던 할아버지께서 밭에다 직접 당신의 손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님은 소목으로써 강도상이라던가 종각이나 기타 교회에 필요한 소품을 만드시고 찬송가가 없어서 붓글씨로 문 종이에 써서 게시하여 두고 찬송 시간에는 모두 그것을 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물론 피아노나 풍금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지휘하는 사람도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앞에 앉으신 어른이 부르기 시작하면 동시에 남녀노소가 같이 불렀습니다.

즉 악보라는 것도 없이 가끔씩 산을 넘어 도회지에서 방문 해주는 교인들이 불러 주던 곡을 기억했다가 비슷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즉 남녀노소의 소리와 음정과 박자가 모두 틀린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 이런 노래를 부르며 잠재워주고 달래주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데 어울려 그렇게 부르던 찬송이 요즘 첨단 음향기기와 파이프 올간으로 연주하고 연미복과 합창단복으로 멋지게 갖춰 입고 4부로 부르는 어느 합창보다도 더 아름답고 그리워지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향기가 납니다.

말씀 드렸듯이 저희 아버님이 소목으로 나무로 무엇을 만드는 솜씨가 좋은 분이 셨는데 덕분에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도 질 좋고 보기 좋은 나무팽이나 스케이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저는 정말 멋진 선물을 아버지에게서 받았습니다당시 시골 어린이는 지게로 나무를 주워 온다거나 벼를 나른다거나 하는 크게 힘들지 않는 일을 하였는데모두 어른들의 키 높이에 맞춘 큰 지게를 사용하여 여간 불편하지 않았는데,저에게는 다행이 제 키에 맞는 지게를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당시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래서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할 일도 없는데 빈 지게를 지고 친구들 한데로 가곤 하였습니다.어느 날 가을걷이를 위해서 정말 나의 지게를 사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산 너머 논에서 벼를 베는데 그곳에서 나의 지게로 벼를 집까지 지고 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그런데 볏단을 조금만 지면될걸 자존심에 양껏 지고 고개를 오르는데 이건 정말 죽을 맛입니다.

비탈길로 경사가 급해서 도중에 쉴 수 없는 고개를 넘어 오면서 너무 힘들어 목을 뺄 수 있는 만큼 빼고 울면서 산을 넘어 왔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모두 한마디씩 부모님 일을 잘 돕는다고 칭찬을 했습니다그러다가 한 어른이 숙여진 나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로 얼룩진 것을 보고 저희 아버님에게 말했습니다. “이러다 자네 아들 목 빠져 죽겠다고그리고 일 좀 그만 시키라고그 해 가을걷이를 마치고 아버님은 큰 아버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잠시 다니러 가셨고 크리스마스를 지내시고 돌아 오셨습니다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1월 초에 부산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들이 지게를 지고 목을 빼고 산 넘어 다니던 모습이 아버지에게도 안 좋았나 봅니다다행히 저는 시골에서 잘하면 20리 떨어진 시골 중학교는 다닐 수 있을지 몰라도 고등학교는 엄두도 내지 못할 곳에서 도시로 오게 되었고 훌륭하신 부모님 덕분에 정상적인 모든 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도회지에서 나는 감리교에서장로교로그리고 성결교회로 옮기며 열심히 즐거운 신앙 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뜻한 바가 있어서 일명 몰몬교 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지금껏 저에게 주어졌던 모든 기회가 우연이 아니고 저를 사랑하시고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겪었던 일과 경험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에게 주어졌다고 믿습니다어린 시절 시골 동네 어귀에 서있던 큰 미루나무 두 그루를 보면서 큰 나무는 하나님이고 작은 나무는 예수님이라고 막연하게 두 분을 가늠하던 저는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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