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왜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돌려주라고 당부하십니까? 그렇게 하 여 여러분이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가 멀리 떠나 여러분 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 증오심과 쓰라림은 여 러분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천천히 파괴해 갈 것입니다. … 베드로는 그에게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 복음 18:21~22) 그들이 회개하고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때, 우리 대부분은 용서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설령 그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 을지라도 우리에게 용서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동시에 앙갚음이나 복수 없이도 우리는 여전히 용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도 필요한 때에 우리에게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 다. 비통함은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 해를 미칩니다. 그것은 경직되게 하고 위 축시키며, 마음을 서서히 좀먹어 갑니다. 잘못은 사람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말하거나 행한 어떤 것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그 잘 못을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도 있는 또 다 른 것을 그 잘못에 더하면서 자신의 결론을 정당화시킵니다. 피해자가 평화를 제 의해야 한다고 주님께서 요구하신 이유 중의 하나가 아마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 입니다. “그리고 만일 네 형제 또는 자매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그 형제 또는 자매를 그 형제 또는 자매와 네 사이에서만 따로 만날 것이요, 그 형제 또는 자매가 고백 하면, 너는 화해할지니라.”(교성 42:88) 우리는 그 명령에 따릅니까, 아니면 비통함 속에서 뾰로퉁하며 죄를 범한 사람 이 그것을 깨닫고 뉘우치면서 우리에게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기다립니까?12 우리는 부모님이나, 교사나, 감독에게 화가 날 수도 있고, 또 비통함과 증오의 독과 독약으로 위축되고 움츠러들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축소시킬 수도 있습니 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의 고통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을 계 속해 나가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게 됩니다. … … 그저 지도자들을 괴롭히거나 상처 받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교회에서 활 동을 중단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자주 나타나는 증오, 비탄감 및 복수의 불협화음 속에서, 용서 라는 부드러운 단어는 치유의 향유처럼 다가옵니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그 효과 는 아주 클 것입니다. (스펜스 더불류 킴볼의 생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