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리고 생명과 구원의 원리, 신권, 진리에 관한 예언, 인간의 자녀들 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등을 이해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수고와 세상적인 수고는 서로 차이가 없이 다 한 가지입니다. 만일 내가 어떤 의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전도를 하든, 기도를 하 든, 누군가에게 훌륭한 도움을 주든, 혹은 내가 들이나 공구상에 있든, 장사를 하든, 어디 서 어떤 부름을 수행하고 있든지, 나는 어느 장소에서건 힘껏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 니다. 즉 어떤 일을 하든 모든 면에서 그분의 장소와 시간과 의향 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브리감 영 설교집, 8쪽)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 혹은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는 그것들이 모두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교리와 성 약 29:34~35 참조](브리감 영 설교집, 13쪽) 우리는 지상에 주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과 관련된 일은, 그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든 그분의 이름에 따라 성전을 짓는 것이든, 전부 영적인 일로 생각하도록 배웠습니다. 물 론 그 일을 수행하려면 물리적 힘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영적이라고 생각해야 합니 다.(브리감 영 설교집, 13쪽) 우리는 세상적인 수고 없이는 성전이 건립되었을 때 거기에 들어가 영적인 축복으로 이어지는 의식들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적인 의식들은 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자 신의 충실한 자녀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 영적 축복을 받기 위해 행해져야 합니다. 모든 행동은 우선 세상적인 행동입니다. 사도들은 신앙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했습니다.[로마서 10:17 참조] 그렇다면 무엇을 들려주어야 신앙을 낳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 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눈에 안보이는 영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처럼 세상의 평범한 보통 사람이며, 삶의 동일한 규칙과 규율의 지배를 받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세상적인 수고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믿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세상적인 수고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침례를 받는 것도 침례를 받거나 주는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세상적인 수고라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의 진실성에 대한 산 증거입니다. 실제로 저는 복음을 들음으로써 신앙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전하느라고, 발이 아프고 몸이 피곤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축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육체적 수고를 감당할 때 주어질 것이며,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한 눈에 안보이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브리감 영 설교집, 13~14쪽) (브리감 영의 가르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