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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용서·금식·부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셨듯이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0.

1912년,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이던 데이비드 오 맥케이 장로와 그의
아내 엠마 레이는 두 살 반 된 아들 로일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로서 첫 번
째 커다란 슬픔을 겪었다. 이 사건에 관한 맥케이 장로의 기록을 보면 그의 마
음이 얼마나 아팠는지가 나타나 있지만 또한 장차 있을 부활에 대한 신앙도 나
타나 있다.
“1912년 4월 8일, 월요일. 오 사랑하는 아들이 얼마나 괴로워한 밤이었는
가!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은 그에게 고통처럼 보였다. 오늘 아침 의사들은 그를
진찰하고 나서 그가 고통을 겪는 것은 양쪽 폐에 모두 염증이 생겼기 때문이라
는 것을 알아냈다. 그 때 우리는 거의 희망을 잃었지만, 나중에 의사가, 검사를
통해 염증을 일으킨 것이 어떤 균인지 알아냈으며, 그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고
했을 때,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로일은 너무나 약했으며 많은 합병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정한
간격으로 주어지는 자극제를 어른처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하루 종일 힘겹게
병마와 싸웠다. 오전 9시 30분, 토마스 이 맥케이와 나는 다시 한번 더 그에게
축복을 해 주었다. 레이는 무척 희망이 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잠시 휴식을 취
하기 위해 아이 옆에 있는 간이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곧 아이의 맥박이 약해
졌고, 우리는 그가 우리 곁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사랑스러운 입술
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엄마’였다.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작은 손을 뻗었다.
내가 그를 달래기 위해 몸을 구부렸을 때, 그는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손길을 그는 내게 보냈다.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으며, ‘아빠, 안녕,’하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허약함과 고통으로 이미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후
에 엄마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몇 분 정도밖에 쉬지 못했으며, 간호사들이 약
간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깨닫고 잠시 동안 사랑하는 아기를 내려다보고만 있
었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의 어린 아들을 데려간 그 방에서 우리가 그녀를 조
심스럽게 밖으로 인도해 낼 때까지 아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는새벽1시50분에근육의경련도없이숨을거두었다.‘ 그는죽은것
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는 말은 그 어느 영혼에게보다 그에게 더 절실하게 적용
되는 말이었다. 그는 참으로 잠을 자러 간 것이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예수의 사도들은 그분의 부활의 실재에 대해 증인이 되었다.
약 2,000년 전에 몹시 낙담한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침
울했으며, 요한은 슬펐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친인 마리아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도망쳤습니다. 유다는 그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았습니다. 얼마
나 우울한 밤이었습니까!
다음날 아침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그것은 사실이었므로, 이 사건
은 영혼이 불멸하다는 것과 장막 저편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
의 개성이 지속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영옥에 있는 영들
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처럼 그들이 영의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었다는 사실은 사도들에 의해 주어진 증
거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해 줍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간증의 더 큰 가치는 예수
님의 죽음과 더불어 사도들이 실망과 우울함으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에 있습니
다. 2년 반 동안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함으로써 지탱되고 고무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가시고 없었으며, 그들은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것처럼 보
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이 갑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 있게, 두렴 없
이, 힘차게 전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
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계시였습니다. 그분의 약속은 지켜졌으며, 그분의
메시야로서의 사명은 성취되었습니다.”
마가는 부활하신 주님의 어떤 모습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무덤에 있던
천사가 부활을 알렸다는 것과 주님이 그의 제자들을 만나시리라는 것을 약속
했습니다. 마가로부터 우리는 온 세상에 처음으로 무덤이 비었다는 영광스러
운 선언을 듣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기 묻혀 있다”는 말은“그가
살아나셨느니라”는 신성한 메시지로 대치되었습니다. 마가가 실제로 무덤이
비었다는 것에 대해 영혼 깊숙이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에게 부활은 추호의 의심도 없는 사실이었으며,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신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전
파하는 일에 그는 목숨을 걸었으며,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의 간증을 피로 인봉했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을 기록한 또다른 사람은 이방인인 누가였으며, 혹자의 생각
처럼 그는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서 개종한 사람으로서 그 곳에서 의사의 직
업을 갖고 있었습니다.(골로새서 4:14 참조) 심지어는 그를 가장 신랄하게 비
평하는 현대의 비평가들도 그를 탁월한 역사가로 평하고 있으며, 초기 사도들
과의 개인적인 친분은 그의 기록에 무한한 가치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 내용은 개인적인 탐구와 조사에 의한 것으로, 접할 수 있는 모
든 자료에서 발췌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
꾼 된 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선언한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그는“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으며 그리하여“차례대로”
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1~4참조] 이것은 누가가 이전에 다른 사
람이 서술한 내용에서가 아니라, 이“목격자”들로부터 직접 간증을 입수했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믿을 만한 증언에 의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누가복음은 그가 집필한
그대로의 것입니다. 24장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은 신성한 메시지에 대해 간증
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
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5~6]
부활에 관한 베드로와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간증에 대한 그의 말과 증언
을, 우리는 그 정확성에 있어서 그들과 똑같은 확신을 갖고 받아들일 수 있습
니다.“ 그가고난받으신후에또한그들에게확실한많은증거로친히살아계
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
니라”[사도행전 1:3 참조] 부활의 실재에 대한 누가의 절대적인 확신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가나 누가가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보고 나서 그에 대해 간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기록된 그들의 간증을 일차적인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직접 보았다고 간증하지는 않
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분명히 보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부활이 실
제적인 일이었다는 증거가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 사이에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이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매장되신 후 그분이 나타나
신 것에 대한 목격자들의 개인적인 간증을 전해 주는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개인적인 증언은 또한 제가 인용한 두 사람의 간증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의 간증도 확증해 줍니다. 저는 이제 다소의 유대인으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업한, 엄격한 바리새인 사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는 죽은 후에 부활한 나사렛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모질게 박해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권위 있는 문서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
해 혹은 그것을 증거하는 기록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이 사실을
증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
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
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
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
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
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3~8]4


세상의 회의론은 목격자의 증언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약 2,000년 전에“알지 못하는 신”에게
단을 쌓으면서도, 그 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거나 전혀 몰랐던 아레오
바고에 있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아레오바고로 가는 길에 여
러 신을 위해 세워진 장엄한 동상들을 보았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철학자와 판사들, 가장 훌륭한 사색가들, 고대 세계의 최고의 현
인들이 자주 모여서 인간 생명의 신비함과 그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했습
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갈색의 눈을 가진 작은
남자가 홀로 서서 그들의 철학은 잘못된 것이며,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신상들
은 가증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그 큰 도시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만이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사람이 죽음의 문을 지나서
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실재에 관해 열변
을 토하고 있을 때, 철학자들은 호기심을 갖고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
키셨다는 간증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말을 듣고 나자, 일부 사람들은 조롱했으며 몇몇을 제외한 모
든 사람들은 진리를 선포한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그를 전보다 더 외
롭게 만들었습니다.[사도행전 17:22~33 참조] 오늘날에도 아레오바고에서처
럼, 우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들은
의심하고 돌아섭니다. 오늘날도 그 당시처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신들
을 갖고 있어, 부활하신 주님보다는 그 신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신을 취하시어 영화롭고 부활한 존재로 나타나셨다
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장정(사람)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기 14:14 참조]라는 오래된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잘 알던 제자들은 그분이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절대적으로 아무런 의심
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살아나신 구속주가 육체를 갖고 임하신 것을 손으로 만져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영이 당당하게 죽음의 문을 지나 영생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전해진 영광스러운 메시지입니다. 그분에게 이
지상 생활은 하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종말은 인생의 태양이 지는 것에 불과합
니다. 잠자는 것과 같은 죽음은 영원한 세상의 아침에 영화롭게 깨어나는 것으
로 이어집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들의 오라비를 어둡고 조용한 무덤에 있
는 시체로밖에 보지 못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를 살아 있는 존
재로 보셨습니다. 이 사실을 그분은 단 두 낱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 ”(요한복음 11:11) 만일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
스도가 실제로 삼 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을 안다면, 즉 영의 세계에서 다른
영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그분의 영이 창에 찔린 육신을 다시
취하시어 사십 일 동안 사람들 가운데로 다니신 후에, 영광스러운 영혼이 아버
지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현재 의심과 불확실함으로 혼란스러
운 영혼에 얼마나 큰 평안이 찾아오겠습니까!
후기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와 또한 부활을 사
실적인 현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신성한 사명의 극치로
인정하는 다른 사도들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일어나셨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최근의 가장 위대한 사
건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천구백 년이 지나서 아버지와 아들이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기적은 그 자체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
라, 참된 그리스도교의 기본 원리로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불멸을 확인해 준다.
약 사천 년이 넘도록 인간은 무덤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종말을 볼 뿐이었습
니다. 무덤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부활한 불멸의 존재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비어 있는 무덤은 하나도 없
다. 인간의 최대의 적인 죽음보다 강한 승자의 권세로 무덤이 비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러한 것을 선언하는 음성도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매장되었던 무덤에 두려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찾
아온여인들에게그천사가준메시지는새롭고영광스러운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
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가 누웠던 곳이니라”(마가복음 16:6)
만일 기적이 초자연적인 사건으로서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는 그 원인을 규
명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시대의 기적 가운데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기적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불멸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오직 인간이 깨닫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만 기적입니
다.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인생의 일상의 법칙이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
부활과 봄은 적절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부활을 정확하게 비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소생을 암시합니다. 죽음의 고요함처럼 겨울은 모든
식물의 생명을 쥐고 있지만 봄이 가까워 오면서 생명을 주는 열과 빛의 부드러
운 힘이 겨울로 하여금 쥐고 있던 생명을 놓게 하고, 죽은 것처럼 보이던 것은
평화로운 잠에서 새롭고, 활기 차고, 힘찬 생명으로 나오게 합니다.
사람의 경우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잠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나사로가 잠들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요한복음 11:11 참조]“ 이 아이가 … 잔다”는 말씀은 어린 딸을 잃고 슬
퍼하는 부모에게 위안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마가복음 5:39 참조] 세상의 구세
주에게 죽음과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삶과 영생이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그
분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확신과 더불어, 영원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어
야 합니다. 이는 인생이 기쁨이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생명을 가져옵니다. 매번 찾아오는 부활절이 이 진리를
강조합니다.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으며 그분을 통해 인
간의 불사불멸이 보장된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충실한 사람들은 위안을 주는 부활의 간증을 얻는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한 사건일 뿐입니다. 그
것은 출생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 그것을 두려워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생명의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생명을 종종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
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영생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
한 축복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어둡고 침침한 무덤을 바라보는 대신,“ 하
나님의 뜻을 행하려”(요한복음 7:17 참조) 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눈을 돌려 하
늘을 볼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개별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의 믿음에 일관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은 극
복되었으며 사람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라는 말은 도마가 살아나신 주님을 보았을 때, 그
저 의미 없이 외쳐 댄 말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성한 존
재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분의 아버지를 그분과 같은 개별적인 존재로 보는 일
은 쉽습니다. 이는 예수께서“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 … ”(요한복음 14:9)
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살아나셨듯이, 인간도 그럴 것이며, 모든 인간
은 지상 생활에서의 행위에 따라 내세에서 그 행위에 맞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주는 메시지는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며, 가
장 영광스러운 것이 됩니다. 이는 죽음이 우리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갈
때, 우리의 슬픈 마음은 다음 말씀에 표현되어 있는 희망과 거룩한 확신으로
위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6 참조] 우리의 구
속주께서 살아나셨으므로 우리도 살아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신성한 진리를 알고 있기를 바라듯이, 그것
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저처럼 똑같이 필멸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행
복을 아셨으며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쁨과 슬
픔을 겪으셨으며 우정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배반과 거짓 고소를 통
해 오는 슬픔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앞으로 겪게 될 것처럼 육신
의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살아나셨으므로, 여러
분도 살아날 것이며 저도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완전하신 분이셨습니다. 죽음
에서 일어나심으로써 그분은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지구의 주
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삶의 방식을 고의로 거절하는 사람은, 특별히
그러한 거절은 오직 불행과 비참함과 심지어 죽음으로 인도된다는 사실에 비
추어 볼 때, 얼마나 나약하고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전세계를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러한 신앙을 갖고 부
활하신 그리스도와 부활에 관련된 원리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인
류는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영원한 평화를 향해 커다란 첫발을 내딛게 될 것입
니다.
세상에는 소위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하면서 문자 그대로의 부활을 믿지 않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교회에 있는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는 그분
의 신성한 아들 되심과, 실제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과, 아버지의 면전에서
친히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음을 세상에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