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4월 29일, 조셉 필딩 스미스의 열여덟 살 난 여동생 앨리스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조셉 필딩 스미스가 이제 막 영국에서 전임 선교 사업을 마치던 무렵이었다. 앨리스의 사망 소식에 대한 그의 반응에서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에 관한 그의 간증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앨리스가 아픈 건 알았지만 병세가 그토록 심각한 줄은 몰랐다. 이제 몇 주만 있으면 다른 가족과 함께 앨리스를 만나리라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분의 뜻대로 될지어다. 복음이 가져다주는 희망이 가장 고마울 때는 바로 이런 시기이다. 우리는 모두 휘장 저편에서 다시 만나 서로 함께하는 기쁨과 축복을 누릴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가족이 단절되지 않고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친절하신 자비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언제나 진리의 길을 걷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여 언젠가 내 친족과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이 내게 가장 감미롭고 영원하기를 겸손하게 기도드린다.” 사도로 봉사하고 훗날 교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복음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희망에 관해 거듭 간증했다. 그는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집행하고 그에 따라 생활합니다. 복음은 지상에 화평을 가져오고 온 세상에 존재하는 잘못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편인 동시에 세상이 갈구하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전세에 있는 영의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을 듣고 기뻐했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분과 함께 살고 거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뵈었고 그분의 사랑을 느꼈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율법을 제정하여 우리가 발전하고 성장하여 우리만의 영원한 가족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영의 자녀를 위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 계획은 그들이 영생을 얻기에 이르기까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시는 삶을 칭하는 말입니다. 이 계획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과 같이 되고 그분이 지니신 권능과 지혜와 지식을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값진 진주를 통해, 우리는 천국에서 회의가 열렸으며 그때 주님이 그분의 영의 자녀를 그분 앞에 부르셔서 그들이 이 지상에 와서 필멸의 삶을 경험하고 육체를 받으며 지상 생활의 시험 기간을 거친 다음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이룩될 부활로 더 높은 승영에 이르게 되리라는 계획을 알려 주셨다는 것을 배웁니다.[모세서 4:1~2, 아브라함서 3:22~28 참조] 그들은 필멸의 상태를 거치고, 현세에서 인생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유혹과 시련 등 지상 생활의 모든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경험을 쌓게 될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충실한 상태를 유지할 때 부활하여 하나님 왕국에서 영생에 이르러 그분과 같이 된다는 생각으로[요한1서 3:2 참조] 기쁨으로 차고 넘쳤으며 “기뻐 소리를 질렀[습니다.]”[욥기 38:4~7 참조] 이 필멸의 삶에서 얻는 경험과 지식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었으며, 육체를 받는 것은 승영에 꼭 필요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하나님 아버지 계획의 일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알려진 구원의 계획, 즉 율법 체계는 창세 전에 하늘에서 채택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조상 아담은 지상에 와서 온 인류의 머리가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가 그의 자녀에게 궁극적인 선을 안겨 주기 위해 금단의 열매를 먹고 타락하여 세상에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는 것은 이 위대한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타락은 인간이 지상에서 시험받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상 생활이라는 위대한 은사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손을 갖지 못하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큰 계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필멸의 상태의 모든 흥망성쇠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고통과 슬픔과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 그것이 축복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식과 이해력과 필멸의 삶이라는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고통과 슬픔과 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 그것[은] 축복도 가져다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타락과 우리의 죄로부터 구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겠다고 자청하셨다. 아담의 범법은 두 가지 사망, 즉 영적 사망과 육체적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 면전에서 쫓겨났으며, 필멸의 상태에 놓이게 되어 육체의 모든 질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다시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깨뜨린 율법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공의는 그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것,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공평합니다. 따라서 아담이 율법을 범했을 때, 공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가 죄를 보상하고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기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율법을 깨뜨리면서 저주를 받았으며, 저주에 놓였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을 속죄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자녀도 그 저주에 놓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주를 받지 않은 사람이 이 원죄를 속죄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죄를 속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죄한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어 아담의 범법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속죄하여 공의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구주께서는 죄에 대한 희생양이 되겠다고 자청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아담의 범법과 우리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한다는 조건으로 우리를 타락에서뿐 아니라 우리 죄에서도 구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분은 왜 오셨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유익을 얻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그분은 어떤 대가를 치르셨습니까? 이를 위해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목숨 이상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왜 그곳에서 못 박히셨습니까? 그분은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인 하나님 면전에서 추방되는 일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데려오고 우리의 몸과 영이 재결합하도록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러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 계명을 지키기만 한다면 죄를 사함받고 그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었고 거절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청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계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고통이 어떨지 아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그러고자 하셨습니다. …… 구주의 손과 발에 못을 박은 것은 그분이 겪으신 고통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때 가장 큰 고통을 겪으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에서 그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매우 많았습니다. 따라서 그 점만 생각한다면 그분이 겪으신 고통은 십자가에 달린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겪으신 큰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 교회의 모든 회원이 다음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가시기 훨씬 전에 이미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것처럼, 그분 몸의 모든 땀구멍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그분이 극심한 영혼의 고뇌 가운데 아버지께 부르짖으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그 큰 고통은 그분의 손과 발에 박힌 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제게 묻지는 마십시오. 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분이 어떤 식으로든 그 엄청난 형벌을 스스로 짊어지셨다는 것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을 짊어지셨고 고통으로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제가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드린 방식으로 구주께서 모든 사람의 짐, 즉 고통을 한꺼번에 짊어지시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손과 발에 못이 박힌 그분의 고통은 그분께 고통의 고뇌를 안겨 준 원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고뇌하며 아버지께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잔은 물릴 수 없었습니다.[마태복음 26:42, 마가복음 14:36, 누가복음 22:42 참조] 이 점에 관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한두 소절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은 나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니,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여 - 내가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 하게 하였느니라 - 그러할지라도 아버지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나는 마셨고 사람의 자녀들을 위한 나의 준비를 마쳤느니라.”[교리와 성약 19:16~19] 이 구절을 읽을 때 저는 겸손해집니다. 주님은 인류와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도 짊어질 수 없는 짐을 대신 지시고 누구도 치를 수 없는 끔찍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셨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내려가서 그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제가 구속주가 되어 인간을 아담의 범법으로부터 구속하겠습니다. 제가 세상의 죄를 짊어지겠습니다. 또 회개하는 자를 모두 그의 죄로부터 구속하거나 구원하겠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길을 따라 걷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아주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빠졌지만 기어올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 곤경에서 어떻게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아무리 혼자 애를 쓰더라도 그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구덩이 속에는 탈출할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자 어떤 친절한 사람이 그의 구조 요청을 듣고 서둘러 도와주러 와서 사다리를 내려 구덩이 속에 빠진 사람이 다시 지면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은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와 그의 후손이 처하게 된 상황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 누구도 지면으로 올라가 다른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구덩이는 주님 면전에서 추방되는 것이자 육체적 사망, 곧 육체적 소멸을 의미했습니다. 모두가 사망을 겪어야 했으며 아무도 빠져나올 방편을 마련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구덩이 밖에 계신 구주께서 오셔서 사다리를 내려 주십니다. 그분은 구덩이 안으로 내려오셔서 우리가 그 사다리를 이용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한한 자비로 그분 자녀의 외침을 듣고 빠져나올 방편을 마련해 주시려고 사망을 겪지 않아도 되고 죄도 없으신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독생자께서는 무한한 속죄와 영원한 복음을 통해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순종으로 우리 마음속에 [구주]의 크고 온화한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느낌이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결코 그분을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받으신 크나큰 고통과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흘리신 피로 대가를 치름으로써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초로 구원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장과 구원을 위한 이 위대한 계획에서 중심이 되십니다. 속죄의 토대 위에, 구원의 계획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 말씀에 의지하고, 그분이 주신 율법에 순종할 때 오는 축복을 받기를 바라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세상을 버리며, 주저 없이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땅에서 매고 하늘에서 인봉할 권능이 있는 승인받은 집행자의 손에 의해 물에 잠김으로써 침례를 받으며, 이 성스러운 의식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성약을 맺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성신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하고, 우리의 죄와 악을 불로 태워 버리듯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태워 버려야 하며, 성신의 권능으로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다섯째, 우리는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우리는 침례 받은 후에 계명을 지켜야 하며, 주님 앞에 선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경건한 성품을 지니고 해의 왕국의 영광과 경이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저는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순종해야 하는 이 율법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율법들이 오늘날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계시되었으며, 현재 그분이 지상에 다시 세우신 그분의 교회에서 집행되고 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지상에 있는 우리 모두는 시험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보내진 것은, 첫째는 우리의 영원한 영을 위한 성막[육신]을 받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시련으로 시험받고, 영원한 복음 원리에 순종하겠다는 성스러운 성약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풍성한 기쁨과 행복과 더불어 환난을 겪기 위해서입니다. 리하이가 그의 자녀에게 가르쳤듯이 지상 생활은 “시험의 상태”(니파이후서 2:21)입니다. 우리가 비록 영원하신 아버지의 면전에서 떨어져 나오긴 했으나,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진실한지를 시험받고 연단받음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가르침을 받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우리는 선뿐만 아니라 악을 겪으며 시험받고 검증받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우리를 유혹하도록 허락하셨으나, 우리는 주님의 영의 인도 및 계시로 주어진 계명을 통해 스스로 선택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그 의로움에 대한 영원한 보상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 현세의 시험 기간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잇는 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간입니다. …… 이생은 영생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간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부활하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 점을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상에 오기 훨씬 전에 논의되고 정해진 계획의 일부입니다. …… 우리는 영의 세계에 있는 하나님 면전에서 이곳 지상으로 여정을 떠나면서 이생에서 겪게 될 모든 것, 즉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기꺼이 그러고자 했습니다. 죽음은 출생만큼이나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사망, 곧 인간의 사망은 영과 육체의 영원한 분리가 아닙니다. 사망은 영과 육의 일시적인 분리 상태로, 비록 죽어서 육신이 흙으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부활하는 날이 이르면 그 육신은 흙으로부터 다시 모아지고 영으로 생기를 얻어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선했든 악했든 그것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바울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사도행전 24:15)이 있다고 말했으며, 구주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것이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을 때 육신이 어떤 상태에 있었느냐에 관계없이 모든 육신의 기본적인 신체 부위는 부활 때 다시 그 온전한 위치로 회복될 것입니다. 육신이 불에 탔든 상어의 먹이가 됐든 말입니다. 육신의 모든 기본 부위는 본래의 온전한 위치로 회복될 것입니다. 영은 살과 뼈의 몸이 없이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육체와 영은 부활을 통해 불멸과 구원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부활 이후에는 다시 나뉘는 일이 없습니다. 육체와 영은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충만한 기쁨을 받게 됩니다. 영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활하는 것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와 같이 될 수 없습니다.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 면전에서 가족과 함께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상의 근면으로 부를 상속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적인 왕좌와 권력과 지위를 상속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근면하고 인내하여 세상적인 지식과 명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으뜸가는 한 가지 유산이 있는데 그것은 영생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영생, 즉 영원하신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삶이 하나님의 가장 큰 은사라고 나옵니다.[교리와 성약 14:7 참조] 모든 죄에서 깨끗해진 사람만이 이 은사를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신앙으로써 승리한 자요, 아버지께서 의롭고 참된 모든 자에게 내려 주시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봉된 자들이니라. 그들은 장자의 교회 회원인 자들이요, 그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의 손에 만물을 주신 자들이니 -”[교리와 성약 76:53~55, 또한 52절 참조] 이 구원의 계획은 가족을 중심으로 합니다. …… 이 계획은 우리가 스스로 영원한 가족을 이루도록 마련되었습니다. 해의 왕국에서 승영에 이른 자들은 “영원무궁하도록 자손이 ……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해의 왕국의 승영에 관한 한, 가족 조직은 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 가족은 한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부터 다음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에게로 연결되어 끝까지 확장되고 펼쳐지는 가족입니다. 영원한 상속이라는 이 영광스러운 축복은 계명을 지키고, 필요하다면, 그리스도와 같이 고통을 받겠다는 기꺼운 마음 없이는 받을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해, 영생, 즉 하나님의 가장 큰 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모두 제단에 바치도록 요구받을 경우 그렇게 해야 하며, 그분의 대업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내려놓도록 요구받을 경우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율법과 계명에 순종할 때 주시는, 약속된 풍성한 축복을 절대로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세상에서 나와서 충만한 복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해의 영광에 갈 수 있는 후보가 됩니다. 아니, 충실하게 생활한다면, 우리는 후보 이상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충실할 때 해의 왕국에 들어가리라고 확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그러한 삶을 삶으로써 우리가 상속받을 것을 확신하며, 우리가 그분 면전에 들어가 그분과 함께 살고 약속받은 충만한 축복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도록 합시다. 후기 성도 중에 우리가 약속받은 충만한 구원보다 못한 것에 만족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 겸손한 가운데 회개하는 정신으로 계속 전진하고 끝까지 계명을 지키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바람과 목표는 영생, 즉 아버지와 아들의 면전에 거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바야흐로 인생의 황혼기라 불리는 지점에 서서, 멀지 않은 장래에 그분 앞에서 필멸의 시기에 가졌던 저의 책임에 관해 보고드려야 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 저는 우리 모두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알고 있으며, 그분의 얼굴을 뵐 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태복음 25:34)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왔을 때 우리 모두가 이처럼 행복한 부류에 속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셉필딩 스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