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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다리를 짓는 훌륭한 건축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


여러 해 전에 데이비드 에스 라벤더가 쓴 The Way to the Western Sea (서쪽 바다로 가는 길)이란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태평양에 이르는 육로를 찾고자 북미 대륙을 횡단하던 그 유명한 탐험대를 이끈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의 영웅적이고 흥미진진한 여행담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여행은 악몽과도 같은 고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깊은 골짜기들을 지나 배를 타고 갈 만한 강줄기를 만날 때까지 무거운 필수품으로 가득 찬 배를 든 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을 읽으며, 저는 “골짜기나 거센 물결을 지나는 현대식 다리라도 있었다면” 하고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자랑인 아름다운 금문교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견고한 하버 브리지, 또는 다른 여러 나라의 다리들과 같은 우리 시대의 웅장한 다리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모두 여행자, 아니 필멸의 세계를 지나는 탐험가들입니다. 우리는 이 탐험에 대한 사전 경험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자신만의 인생길을 여행하는 동안 가파른 절벽과 소용돌이치는 물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아마도 그런 암담한 생각이 시인 윌 앨런 드럼굴리의 고전시 “다리를 짓는 사람”에 영감을 불어넣었을지도 모릅니다.
외딴길을 가는 한 노인이
춥고 음산한 해질녘
크고 깊고 넓은 협곡에 이르렀네
그 아래로 거친 계곡물 흐르고
땅거미 짙게 내리는데 노인은
음침한 계곡을 두려움 없이 건너네
무사히 건너편에 이르자 뒤돌아
계곡물 지나는 다리를 짓네
“이보게” 곁에서 여행하던 친구가 말하네
이곳에 다릴 짓느라 힘을 허비하다니
이 여행도 죽고 나면 다 끝나네
다시는 이 길을 지나갈 일이 없을 걸세
깊고 넓은 협곡을 건넜건만
왜 이 밤에 다리를 짓는단 말인가?”
노인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들고 말하네
“좋은 친구여, 내가 걸어온 이 길을
오늘 내 뒤 따라오는 사람 있으니
바로 이 길을 지나야 하는 젊은이라네
내겐 아무것도 아닌 이 협곡이
금발의 그 젊은이에겐 위험이 될 수도 있다네
그 또한 땅거미 속에 건너야 하니
좋은 친구여, 나는 그를 위해 다리를 짓는다네”1
이 시의 메시지는 제 생각을 일깨웠고 제 영혼에 위안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한 다리의 설계자이시며 건축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늘의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들을 만드셨습니다.
구주의 사명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
이어 그분의 탄생의 기적이 있었고, 목자들이 마구간으로, 그 어머니에게로, 그 아기에게로 서둘러 왔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도 별을 따라와 어린 아기에게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경전은 예수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3 있었으며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4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구주께서 지으신 다리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시며, 그분은 이 필멸의 세상에서 어떤 개인적인 다리들을 짓고 건너셨습니까? 그분은 필멸의 삶이 위험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5
예수께서는 순종의 다리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시면서 개인적인 순종의 변함없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영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을 때, 그분은 금식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사탄은 모든 힘을 다해 그분을 유혹했습니다. 사탄의 첫째 유혹은 배고픔을 포함하여 구주의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구주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6
그 다음으로 사탄은 권세를 제안했습니다. 구주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7
마지막으로 구주께서는 부와 세상의 영광을 제안 받았습니다. 구주의 응답은 이러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8
사도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시대는 물론 우리 시대를 위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9
이 주제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TV 뉴스 보도 기자인 테드 코펠이 어느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가져온 것은 열 가지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계명이었습니다.”10
마크 트웨인과 한 친구가 나눈 대화에 이런 유머가 나옵니다. 부유한 친구가 트웨인에게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난 성지 순례를 할 생각이네. 시내 산 정상에 올라 십계명을 소리 내어 읽을 걸세.”
트웨인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그것들을 지키기나 하지 그래?”
우리가 건너도록 주님께서 마련하신 둘째 다리는 봉사의 다리입니다. 우리는 봉사의 모범으로서 구주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지상에 오셨지만 이웃에게 겸손히 봉사하셨습니다. 그분은 지상에서 필멸의 인간으로 사시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스런 복음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분은 병든 자를 축복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눈이 먼 자를 보게 하셨으며, 귀가 먼 자를 듣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구주는 그분께서 영광 중에 돌아오실 때 우편에 서게 될 충실한 사람들에 관해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임금이 …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11
언젠가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엘 에번즈 장로님(1906~1971)은 이런 권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어느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는 있습니다.”12
전혀 예기치 못한 뜻밖의 방식으로 제게 찾아온 봉사의 기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루는 오랜 친구의 한 손녀딸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형제님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프랜시스 브렘스 형제님을 기억하세요?” 저는 기억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계속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현재 105세이십니다. 작은 요양원에서 살고 계시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온 가족과 만나 그 곳에서 주일학교 공과를 전해 주시죠. 지난 일요일에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자녀들아, 난 이번 주에 이 세상을 떠난단다. 토미 몬슨 형제님에게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려 주겠니? 그러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거야.”
저는 바로 그 다음날 저녁에 브렘스 형제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귀가 멀어 말을 건넬 수도 없었고, 눈이 어두워 메시지를 읽도록 써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족들이 그의 오른 손가락을 잡고 그것으로 왼 손바닥에 방문한 사람의 이름과 메시지를 적어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그 방법을 따라서 그의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토미 몬슨이라는 제 이름의 철자를 적었습니다. 브렘스 형제님은 기뻐하며 제 손을 잡더니 자신의 머리 위에 제 손을 올려 놓았습니다. 저는 신권 축복을 받는 것이 그분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요양원까지 차로 데려다 준 형제와 함께 저는 브렘스 형제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그분이 그토록 바라던 축복을 해드렸습니다. 축복을 마치자 시력을 잃은 그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분은 우리 손을 꼭 잡았으며, 우리는 뭔가를 말하려고 그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메시지는 “너무나 고맙습니다”였습니다.
바로 그 주에 브렘스 형제님은 자신이 예견했듯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전화 연락을 받았으며 그 후 장례식이 거행될 때 그 가족과 만났습니다. 봉사에 응할 기회를 미루지 않았던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봉사의 다리는 우리가 그것을 자주 지나다니도록 우리에게 권유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기도의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내 영을 네게 부어 주리니, 네 복이 크리라”13
기도와 관련하여 제게 보내 온 한 어머니의 편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때때로 저는 제 아이들의 인생에 제가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는 편모로서, 귀가해 어질러져 있는 집을 보며 가끔 인생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연차 대회를 보고 있었는데 몬슨 회장님이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벌써 기도에 대해 가르치셨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니?’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셨고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 주셨어요. 하루는 제가 뭘 여쭤 보려고 엄마 방에 갔는데 엄마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계셨어요. 엄마에게 그분이 중요하다면, 제게도 중요해요.’”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이 끝맺었습니다. “자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부모가 먼저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 주기 전까지는 우리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게 될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모범

기도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드린 기도만큼 제게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누가복음에 그 기도가 가장 잘 묘사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14
때가 되자 그 여행은 십자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견디기 힘든 길을 가시면서 너무나 큰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에게서 이 같은 말씀이 나왔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15
마침내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16
이러한 사건들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더불어, 순종의 다리, 봉사의 다리, 기도의 다리를 엮는 마지막 다리를 완성시켰습니다.
다리를 짓는 분인 예수께서는 우리가 사망이라 부르는 광활한 협곡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17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그분께서 지으신 다리를 건너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리를 짓는 사람”이란 시를 이렇게 고쳐서 전해 드리며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깊고 넓은 협곡을 건넜건만
왜 이 밤에 다리를 짓는단 말인가?”
“오늘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 길을 지나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일세
내겐 아무것도 아닌 이 협곡이
그 수많은 사람들에겐 위험이 될 수도 있다네
그들 또한 땅거미 속에 건너야 하니
좋은 친구여, 나는 그들을 위해 다리를 짓는다네”
우리 모두 구주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지으신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지혜를 얻고 그것을 건너고자 결심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합니다. 
(토마스 에스 몬슨 2008-1)


1. In James Dalton Morrison, 편., Masterpieces of Religious Verse(1948년), 342쪽.
2. 마태복음 1:21.
3. 누가복음 2:40.
4. 사도행전 10:38.
5. 마태복음 11:28~30.
6. 마태복음 4:4.
7. 마태복음 4:7.
8. 마태복음 4:10.
9. 고린도전서 10:13.
10. Duke University 졸업식 연설, 1987년 5월 10일.
11. 마태복음 25:34~40.
12. Richard Evans’ Quote Book(1971년), 51쪽.
13. 교리와 성약 19:38.
14. 누가복음 22:39~44.
15. 누가복음 23:34.
16. 요한복음 19:30.
17. 고린도전서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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