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
저는 명예 총관리 역원 중 한 분이신 매리온 디 행스 장로님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분은 세미나리, 종교 교육원, 그리고 교회 전반 어디에서든 가르치는 일에 탁월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교수법들을 활용하셨습니다.
한번은 행스 장로님이 한 선교부를 둘러보시며 특정 지역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들을 일일이 접견하셨습니다. 저는 인접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고 행스 장로님과 선교부 회장은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행스 장로님은 각 선교사를 만나서 접견하는 것이 정말 큰 특권이었다고 선교부 회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행스 장로님은 선교사들을 접견하던 중 한 자매 선교사에게 “자매님의 선교 사업과 자매 선교사로 부름 받은 것에 관한 느낌을 말해 주십시오”라고 물어봐야겠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 선교사는 자신의 겸손한 아버지는 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고, 무엇보다 주님과 그분의 왕국을 위해 많은 희생을 기꺼이 해오셨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이미 두 아들의 선교 사업을 뒷바라지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딸 아이의 숨겨진 소망에 관해 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 때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이 딸을 도울 수 있도록 주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주님과 대화하려고 밭으로 가서 팔거나 희생하거나, 아니면 빌리기 위해 담보로 쓸 소유물이 더 이상 없다고 그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딸이 선교 사업을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양파를 심으라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파가 잘 자라지 못할 기후였고 그렇기에 양파를 재배하는 다른 농부들도 없었으며, 그 자신도 양파를 재배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주님과 씨름을 한 후에 그는 양파를 심으라는 느낌을 다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씨앗을 구입했고, 이것을 땅에 심고, 키우며, 기도했습니다.
양파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날씨가 잘 조절되었습니다. 그는 농작물을 팔아 은행과 정부, 그리고 주님께 빚을 갚았으며, 나머지 돈을 은행에 딸의 이름으로 예금했는데, 이 돈은 선교 사업을 뒷바라지 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행스 장로님은 선교부 회장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자매 선교사가 ‘행스 형제님, 저는 저의 필요 사항을 아시고, 제가 진정으로 겸손하다면 언제든지 그분의 지혜대로 도움을 주실 사랑 많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데 어떠한 어려움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자매님의 눈에 맺힌 눈물이나 음색, 그리고 제 안에 있던 느낌, 그 이야기와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행스 장로님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교실에 있는 한 명 한 명의 어린이, 청남 또는 청녀, 세미나리나 종교 교육원의 학생들, 복음 교리반 성인들, 선교사들, 참으로 우리 모두는 각자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치고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듣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축복임”
저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주고 사랑해 주셨던, 정말 유능하고 영감에 찬 교사의 영향 아래 어린 소년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루시 게르치입니다.
주일 학교 시간에 그분은 우리에게 세상의 창조, 아담의 타락, 예수님의 속죄 희생에 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베드로, 도마, 바울, 물론 그리스도까지도 소중한 손님으로 교실로 모셔왔습니다. 그분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본받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그분이 슬픈 표정으로 한 반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알렸을 때, 그때처럼 그분의 가르침이 힘있고 오랜 영향력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 아침에 빌리를 보지 못했지만 그가 빠진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날 공과의 주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 였습니다. 우리의 선생님께서는 공과를 중간쯤 하시다가 교재를 덮으시고는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열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반 파티 기금에 돈이 얼마나 있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대공황 시절이었던 그 때 저희는 자랑스럽게도 “4달러 75센트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빌리 가족의 사정이 몹시 어렵게 되었고 슬픔에 잠겨 있어요. 오늘 아침에 그 가족을 방문해서 여러분의 기금을 드리면 어떨까요?”
저는 도시의 세 구역을 걸어 빌리의 집으로 들어가서 빌리와 그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던 그 작은 무리의 모습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없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파티 기금이 담긴 하얀 봉투가 우리 교사의 가냘픈 손에서 슬픔에 잠긴 아버지의 빈곤한 손으로 전해질 때 모든 사람의 눈에 글썽였던 눈물을 저는 항상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우리는 깡충깡충 뛰면서 예배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더 가벼웠고, 기쁨은 차고 넘쳤으며, 깊이 이해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신성한 진리의 영원한 교훈을 그분의 소년소녀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말씀을 바꾸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사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누가복음 24:32)
루시 게르치 자매님은 학생 하나하나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주일에 빠지거나 자주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을 꼭 방문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분이나 그분이 가르치셨던 교훈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루시 자매님이 인생의 말년에 이르셨을 때, 제가 그분을 방문했습니다. 그분이 우리 교사였던 오래 전 시절에 관해 우리는 회상했습니다. 우리는 반원들 각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관심은 평생에 걸친 것이었습니다.
신앙개조
제 생애에 또 한 명의 영감에 찬 교사는 어마 볼윙클 자매님으로, 우리 스테이크 초등회 위원회의 일원이셨습니다. 그분은 신앙개조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신앙개조를 그분 앞에서 성공적으로 암송할 때까지는 초등회를 졸업할 수 없었습니다. 제멋대로인 어린 소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는 견뎌냈고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평생 신앙개조를 암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지내면서 저는 독일 민주 공화국으로 알려졌던 동독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이 임무에서 신앙개조에 대한 저의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그 지역을 관리하면서 방문할 때마다 저는 신앙개조 제12조, 즉 “우리는 왕, 대통령, 통치자, 장관에게 복종할 것과, 법률을 순종하고 존중하며 지지할 것을 믿는다.”를 그곳 회원들에게 항상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철의 장막의 그늘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임은 항상 그곳 공산정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1980년대 초에 그곳에 성전을 지으려고 우리가 정부 관리에게 인가를 구했을 때, 그리고 그 후에 그 지역 출신의 젊은 남녀들이 세계 곳곳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도록 허가를 얻으려 할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몬슨 장로님, 우리는 20년 동안 여러분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회원들에게 그 나라의 법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를 신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개조를 배우는 것의 가치에 대해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45년 전에 저는 솔트레이크시티의 인쇄업계에서 샤먼 허멜이라는 사람과 함께 일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직장에서 집까지 그를 태워다 주면서 그가 어떻게 복음에 대한 간증을 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톰, 제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재미있네요. 바로 이번 주에 저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영원을 위한 인봉을 받으러 맨타이 성전에 가려고 하거든요.”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동부에 살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인쇄회사에 다니려고 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있었고, 그런 다음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올 작정이었습니다. 뉴욕시에서 솔트레이크시티로 오는 버스 여행 내내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한 어린 소녀가 버스를 탔습니다. 초등회 소녀였는데 제 옆에 앉았습니다. 그 아이는 네바다 주 리노에 있는 이모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서쪽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이번 주에 몰몬 주일학교를 방문해 보십시오’라는 옥외 광고판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어린 소녀에게 ‘유타에는 몰몬들이 참 많은 것 같아, 그렇지 않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맞아요, 아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도 몰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다시 ‘맞아요, 아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샤먼 허멜 형제는 “몰몬은 무엇을 믿지?”라고 물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신앙개조 제1조를 암송한 다음에 그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그 아이는 신앙개조 제2조를 알려 주었고 그것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3조, 4조, 5조, 6조 등 나머지를 다 알려 주었고 그 모두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신앙개조를 순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샤먼 허멜 형제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리노에 도착하여 그 어린 소녀가 이모를 만나 품에 안기는 것을 지켜 보았고,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동안 내내 저는 ‘어떻게 그 어린 소녀가 그렇게도 교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전화번호부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교부 회장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제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두 명의 선교사를 보내주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저희의 자녀들 모두가 회원이 되는 데 한 초등회 소녀가 신앙개조를 알고 있었던 것이 한몫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이런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바로 석 달 전에 허멜 가족은 딸 메리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솔트레이크시티로 왔습니다. 그들은 제 사무실에 들렀고, 우리는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여섯 명의 딸 모두와 네 명의 사위들, 열두 명의 손자손녀들이 함께 왔습니다. 온 가족이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딸들이 하나같이 성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가족을 통해 복음을 알게 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한 어린이가 신앙개조를 배워서 복음의 빛을 찾고 있던 사람에게 진리를 전할 능력과 용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항상 준비를 갖춤”
저는 교리와 성약 88편에 나오는 주님의 다음 권고를 아주 좋아합니다. “또 내가 한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왕국의 교리를 서로 가르칠지니라. 너희는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리하면 나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교리와 성약 88:77~78)
수년 전에 제가 임무지명을 받아 비행기를 타고 남부 캘리포니아로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제 옆의 빈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는 책의 제목을 힐끗 보았는데, 기이한 업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아, 몰몬이시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아닌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글쎄, 아가씨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회원이 쓴 책을 읽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정말요? 친구가 제게 이 책을 주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책은 제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그래서 저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교회에 관해 더 이야기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다음 말씀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베드로전서 3:15) 저는 지금이 제 간증을 전해야 할 때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이한 업적의 출판을 위해 제가 리차즈 장로를 도왔던 때가 정말 보람있는 시절이었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훌륭한 분에 관해 몇 마디 했습니다. 그분께서 준비하신 것을 읽고 진리를 받아들였던 수많은 사람들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동안 교회에 관한 그녀의 질문에 답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그때 나눈 그 질문들은 진리를 찾고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수준 높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두 명의 자매 선교사가 그녀를 방문하도록 준비를 해도 괜찮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또한 그녀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회 지부에 참석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녀가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샌프란시스코 스테이크의 어빈 지 데릭 회장에게 편지를 써서 그 정보를 전했습니다. 몇 달 후에 데릭 회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몬슨 장로님, 이본느 라미레스라는 젊은 여성에 관한 일로 전화드리는데요. 그 젊은 여성은 비번 비행 승무원으로 지난 번에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장로님 곁에 앉았는데 장로님이 자기 곁에 앉은 것과 자기가 그 여행 중에 기이한 업적을 읽은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장로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장로님과 통화하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답니다.” 여러분은 이 전화로 인해 제가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 저는 너무 기뻤고, 멋진 통화를 했습니다.
맥케이 회장의 모범
위대한 교사의 한 예가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님이신데, 바로 그분이 저를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사랑과 감성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친절했고, 그 태도는 인자하셨습니다. 그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진리의 교사이셨습니다.
제가 총관리 역원이 되기 오래 전, 우리가 인쇄를 하고 있었던 한 책의 인쇄 교정쇄를 검토하기 위해 그분의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저는 그러한 특성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벽에 걸린 한 그림을 보고 그분께 말했습니다. “맥케이 회장님, 멋진 그림입니다. 유타 헌츠빌에 있는 어릴 적 집을 그린 그림이지요?”
그분은 의자 뒤로 기대시더니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님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그림에 관해 말해 줄 게 있네. 어느 가을 날, 한 친절한 여성이 나를 보러 와서는 액자에 넣어 벽에 걸기만 하면 되는 저 아름다운 그림을 내게 주었어. 그녀가 말했지. ‘맥케이 회장님, 회장님의 부모님 집인 이 그림을 그리느라고 여름을 다 보냈습니다.’” 그분은 선물을 받아들였고 그녀에게 큰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런 후 그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몬슨 형제, 알고 있나. 그 귀여운 여성은 엉뚱한 집을 그렸다네. 그녀는 옆집을 그렸어! 나는 그녀에게 엉뚱한 집을 그렸다고 말할 마음이 없었다네.”
그러나 그분은 그때 이 말씀을 하시고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했습니다. “몬슨 형제, 실은 그녀가 내게 올바른 집을 그려주었다네. 어린 소년일 적에 나는 부모님 집의 정문 현관에 있었던 침대에 누워 있곤 했는데, 내가 방충망이 쳐진 현관을 통해 본 광경은 바로 그녀가 그린 집이었다네. 그녀는 내게 올바른 집을 그려준 거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에 관한 교훈
인생에서 배운 가장 훌륭한 교훈들 몇 가지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제가 자랄 때 부모님은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종 그러한 교훈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소년 시절의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일요일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소위 아사 지경에 이른 것처럼 맴돌다가 쇠고기 구이 향기를 방안 가득히 풍기고 있는 식탁에 애타게 앉아 있었고, 그럴 즈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토미, 먹기 전에 내가 준비한 이 접시를 거리 아래에 있는 밥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고 오너라.”
저는 왜 우리가 먼저 먹고 나중에 음식 접시를 갖다 주지 않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고 재빨리 그분의 집으로 달려 내려가서 밥 할아버지가 문으로 오실 때까지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음식 접시를 그분께 건네드렸습니다. 그분은 그 전 주 일요일에 드린 접시를 아주 깨끗하게 닦아 제게 주시며, 함께 제 봉사에 대한 대가로 10센트를 주셨습니다.
제 대답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돈을 받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께서 제게 매를 드실 거에요.”
그러면 그분은 주름진 손으로 제 금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얘야,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구나.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려무나.”
제가 심부름을 하고 돌아온 후에는 그 일요일 저녁 식사가 항상 좀더 맛있게 느껴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머니의 부친이신 토마스 콘디 할아버지 또한 흥미로운 방법으로 제 인생에 출연하셨던 밥 할아버지와 관련하여 제게 강력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팔순이 넘은 연세의 홀아비이신 밥 할아버지가 방을 임대해 살던 집이 헐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이 정문 현관에 있는 제 할아버지의 오래된 그네에 앉아 있었을 때, 밥 할아버지께서 우리 할아버지께 그분의 곤경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애처로운 음성으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콘디씨,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내겐 가족도 없고, 갈 곳도 없다오. 돈도 거의 없어요.”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계속 그네만 탓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더니 오래된 가죽 지갑을 꺼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졸라댈 때 특별한 즐거움을 주시려고 동전을 꺼내셨던 지갑이었습니다. 이번에 할아버지는 열쇠를 빼시더니 그것을 밥 할아버지께 건네셨습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밥, 이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옆집 열쇠네. 가져가서 거기로 짐을 옮기게. 원하는 만큼 오래 있어도 된다네. 임대료는 내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자네를 내쫓을 일은 없을 걸세.”
밥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뺨 아래로 흘러내리더니, 그분의 길고 하얀 턱수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눈 또한 젖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그 날 저의 할아버지의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름을 제 이름에 지니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비록 제가 소년이었지만, 그 교훈은 제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상은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저를 가르쳤던 사람들에게서 배웠던 교훈들 가운데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사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사람됨과 우리의 생활 방식으로 가르칩니다.
완전한 모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완전한 교사, 곧 우리 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수 있기를 빕니다. 그분은 해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셨지만, 그분이 가르치셨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는 가르치는 원리들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의 제자들을 교육하셨으며, 우리에게도 “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은 21:22)는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구속주에 관해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입니다]”(요한복음 3:2)라고 말했듯이 그것이 우리 각자에 대한 말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순종하는 정신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토마스 에스 몬슨 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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