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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숨은 상처를 치유하라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30.

힐라맨은 쿠메나이 성을 지키기 위한 대전투에서 적에 맞서 “가장 필사적으로 싸웠[던]”(앨마서 57:19) 2,060명의 젊은 용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상처를 입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죽은 자가 한 명도 없었[다.]”(앨마서 57:25) 그 십 대 병사 중 다수는 심각한 부상으로 피를 흘려 기진하게 되었다.
이 젊은 전사들은 부모들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전투에서 싸웠다. 자신들이 속한 사회가 공격받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와 흡사한 원인에서 생겨난 비슷한 재앙의 전쟁이 십 대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암몬 백성처럼 이 시대의 부모들 역시 자녀에게 닥친 영적 싸움을 대신 싸워 줄 수 없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 전쟁이 입히는 영적인 상처를 인식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자원으로 자녀들을 무장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라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외설물을 접하는 십 대 비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외설물에 노출된다. 2008년 기준으로, 약 90퍼센트의 십 대 남성과 약 33퍼센트에 가까운 십 대 여성이 외설물을 이용한다고 보고되었다. 외설물 노출과 중독이 일어나는 평균 나이는 남녀가 똑같이 11세이다. 우리는 복음에 힘입어 이와 같은 비율이 떨어지기를 바라지만, 연구에 따르면 후기 성도들도 역시 “성 중독의 만연과 창궐에 관한 한 다르지 않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우리 자녀가 외설물에 노출될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노출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맞설 것인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사실상 우리 청소년 다수가 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그들의 멸망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녀를 보호하려 애쓰다 보면,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라’ 같은 인터넷 안전 수칙에만 너무 몰입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브리검 영 대학교의 가족생활학과(School of Family Life: 가정, 결혼, 가족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브리검 영 대학교의 한 학과) 교수인 마크 버틀러는 우리 가정과 가족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기술적 해결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방패는 우리가 우리 마음에 씌우는 방패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영적 방패는 가정에서 형성되어 다듬어진다.” 인터넷 방화벽이나 가족 컴퓨터 규칙도 중요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외설물 중독은 때로 가정을 떠나 인터넷 보안이 허술한 공공 도서관이나 친구 집, 와이파이 신호를 공유하는 장소에서 심화될 수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세상은 더 강한 규제를 더 많이 법령화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부도덕한 행위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법률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사회가 타락하는 현상과 근본 원인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개개인이 내적인 도덕 나침반을 갖추는 것뿐입니다.”결국 정결한 삶을 향한 소망이야말로 우리가 자녀에게 입혀 줄 수 있는 최선의 갑옷이다.

중독의 징후
육신을 잘못 사용하면 영혼도 부상을 입게 마련인데, 결코 예외는 없다. 아울러 그와 같은 부상은 반드시 영적인 상처를 남기게 된다.
기민한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징후에 유의함으로써 외설물 중독을 감지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이와 같은 징후가 반드시 외설물 중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십 대 자녀가 이 같은 행동 몇 가지를 보인다면, 약물 남용, 외설물 중독, 따돌림 등 더 심각한 문제에 노출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원인이 어떤 것이든 간에 여러분은 이와 같은 징후를 바탕으로 자녀의 문제에 개입하여 따뜻한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위축된 자존감
외설물과 싸우는 청소년은 종종 자존감을 좀먹는 수치심으로 힘들어한다. 자존감 상실 징후의 예로는 성적 하락, 갖가지 활동 동기 상실, 좋은 건강 습관이나 수면 리듬의 규칙성 감소 등이 있다.
사회적인 침잠
외설물 중독은 비밀리에 깊어진다. 우리는 십 대 자녀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나 친구들과의 활동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가장 보편적인 외설물 문제 신호이다. 문을 잠근 채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방에서 보내며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 십 대들은 단순히 수줍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십 대들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해도 사람들과 발맞춰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중독이 깊어지면 고립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며, 자신의 공간이 침범당할 때 자주 화를 내기도 한다. 외설물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타인의 고결성에 대해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다. 또한 더 고결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서 멀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가치하고 수치스러우며 위선적인 사람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우울증
우울증은 양날의 칼처럼 중독의 원인일 수도 있고, 동시에 중독이 일으키는 증상일 수도 있다. 지속적인 절망감의 표현이나 소극적인 태도, 무력감을 털어놓는 것 등은 모두 우울증의 징후일 수 있다. 자살에 관한 농담을 하는 십 대들은 우울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적정 수준보다 많거나 적게 먹는 것, 지나친 수면이나 불면증, 극도의 육체적 피로감 등 말하자면 극단으로 치우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다.
외설물에 관여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로는 잦아진 분노, 부정직, 교만, 영적 환경에 놓일 때 보이는 불안감이나 지루함 등이 있다.
외설물 중독의 모든 징후를 다 열거할 수는 없다. 부모들은 자녀의 정서적, 영적 건강과 성에 관한 솔직한 대화를 통해 그들이 외설물에 맞서 적절하게 무장되어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제 아이는 중독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셨기에 “어떠한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더라도 항상 희망은 있습니다.”
버틀러 교수는 근본적으로 “모든 중독은 부적응적 대응 전략”이라고 말한다. 죄책감, 수치심, 슬픔, 고통 등을 감당하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 청소년들은 종종 부정적인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해 중독 행위로 들어서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지루함, 외로움과 같이 덜 심각한 정서 역시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독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부모는 모범을 보여 자녀가 건전한 대응 전략을 개발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다음 질문들이 여러분의 대응 전략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것이다. 여러분은 스트레스나 피로, 절망에 빠질 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가?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오락에 기대지는 않는가? 가장 건강한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지하는 것임을 여러분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슬픔, 죄책감, 고통과 같은 영적 상처의 신호를 인식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배움의 경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정서적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앨마 이세는 자기 죄악의 고통이 “격심하고” 또한 “쓰디[쓰다]”(앨마서 36:21)고 표현했다. 베드로는 구주를 부인하고 나서 “심히 통곡”(누가복음 22:62)했다. 그리고 지에즈롬은 “자기의 간악함으로”(앨마서 15:3) 괴로워했다. 고통을, 피해야 하는 끔찍한 감정이라기보다는 경이로운 성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교사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도록 자녀를 도울 수 있다. 앨마와 베드로, 지에즈롬 모두 자기 죄의 고통을 선용하여 회개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았고, 그들은 헌신적인 복음의 사절이 되었다. 여러분 역시 모범과 인도로써 자녀가 중독을 이기는 회개의 가치를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제일회장단 제2보좌인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회개로 이끄는 죄에 대한 슬픔과, 절망으로 이끄는 슬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고린도후서 7:10]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변화와 소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를 끌어내리고, 희망을 사라지게 하고, 유혹이 더 닥치면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참된 회개는 고문이나 고통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가슴에서 우러난후회와 불순종에 대한 진실한 뉘우침은 회개라는 성스러운 과정에서 종종 고통스러운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죄책감이 자기혐오로 이어지거나 재기를 방해할 때는 회개를 촉진하기보다는 도리어 방해가 됩니다.”
정결한 삶에 대한 이상과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자신의 영적 상처를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상은 날마다 진지하게 경전을 연구하며 열심히 기도할 때 형성된다. 버틀러 교수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이 보이는 모범의 힘으로, 정결한 삶의 기쁨과 평화, 행복에 대한 강력한 이상을 만드십시오. 정결한 삶에 대한 소망과 그 실현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소망이 바로 새싹을 틔울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정결하고자 하는 소망이 자라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버틀러 교수는 “육에 속한 사람은 상당히 끈질긴 존재라서 쫓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선택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극도로 해로운 습관들은 그 극복을 위해 꾸준하고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앞날의 희망
힐라맨의 용사들처럼, 청소년들은 악과 마주쳤을 때 종종 “큰 용기”를 보여 준다.(앨마서 56:45) 몰몬경의 전사들이 부모의 신앙에 기댔던 것처럼, 우리도 복음에 대한 우리의 간증과 헌신을 보여 주어 청소년들이 “우리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이를 아셨다는 것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나이다”(앨마서 56:48)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 싸움을 싸워 줄 것임이라.”(교리와 성약 105:14)라고 약속하셨다. 우리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비롯한 신앙을 행사할 때, 그들은 “능하게 [되어], 참으로 구원의 능력에 이르게”(니파이전서 1:20) 될 것이다. ◼
(제니퍼 그레이스 팰런 2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