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상징적인 의미에서 배낭을 지고 있습니다. 광주리를 머리에 이었거나 물건을 싼 보자기나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여기서는 생각을 돕기 위해 그것들을 상징적으로 배낭으로 지칭하겠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서 비롯되는 짐을 이 상징적 배낭 속에 넣어서 가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짐은 배낭에 든 돌과 같습니다. 돌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뉩니다.
- 내가 죄를 지으며 한 행동에서 비롯된 돌.
-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결정, 그릇된 행위, 불친절에서 비롯된 돌.
- 타락한 상태를 살아가는 데서 비롯된 돌. 예컨대 질병, 고통, 만성 질환, 슬픔, 실망, 고독, 자연재해의 영향 등의 돌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외칩니다. 필멸의 짐, 곧 비유적 배낭에 든 이 돌들을 무겁게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짐을 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죄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위안이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쉼은 곧 위안과 평안이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멍에가 쉽고 짐이 가벼우려면 우리는 구주와 함께 멍에를 지고, 우리의 짐을 그분과 나눠 지며, 그분께서 우리가 진 짐을 들어 올리시게 해야 합니다. 넬슨 회장님께서 설명하셨듯, 이는 곧 하나님과 성약의 관계를 맺고 그 성약을 지키면 “삶의 모든 면이 쉬워”진다는 뜻입니다. 회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주와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그분의 힘과 구속 권능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돌을 홀로 감당하려 할까요? 구원투수가 경기를 마무리하려고 기다리는데, 왜 지친 투수는 마운드를 떠나지 않으려 할까요? 구원자가 함께하려고 기다리시는데 왜 우리는 끝까지 홀로 골대를 지키려고 할까요?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팔을 벌리고 서서 기꺼이 우리를 치유하고, 용서하며, 깨끗이 하고, 강화하며, 정결하고 성결하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대체 왜 우리는 혼자서 돌을 옮기겠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경우는 자존심이라는 오랜 악습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가 할 수 있어. 걱정할 것 없다고. 내가 해낼 거야.” 희대의 사기꾼인 사탄은 제가 하나님을 피해 숨고 그분을 등지며 홀로 씨름하기를 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홀로 씨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성약을 통해 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결속하기를 선택할 때, 저는 “[제]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카밀 엔 존슨 회장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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