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란 흥미로운 낱말입니다. 우리는 말을 탈 때 굴레를 사용하여 말을 부립니다. ‘굴레를 씌우다’와 걸맞은 동의어로는 지시하다, 통제하다, 억제하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구약전서에는 우리가 육신을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뻐 소리를 질렀다고 나옵니다. 육신은 악한 것이 아니며 아름답고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일부 격정은 적절하고 합당하게 굴레를 씌워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서 멀어지게 하고 우리의 간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두 가지 격정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첫째, 분노, 둘째, 탐욕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다 굴레를 씌우지 않거나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 두면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영의 영향력을 약화하며,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대적은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의 삶을 폭력과 부도덕의 이미지로 가득 채웁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화난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나 자녀를 때리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7월에 저는 런던에서 열린 영국 전당 의회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 전 세계적인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신체적인 폭력 외에도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족 선언문은 “배우자나 자녀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 언젠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넬슨 회장님은 어제 아침 이것을 힘주어 강조하셨습니다. 부모가 여러분을 학대했든 하지 않았든에 상관없이 여러분의 배우자나 자녀를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학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논쟁과 언어폭력입니다. 많은 경우, 이성과 토론과 예의가 있어야 할 곳에 분노와 폭언이 그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과 같은 그리스도와 같은 자질을 구하라고 한 구주의 선임 사도 베드로의 훈계를 많은 사람들이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또한 겸손이라는 그리스도와 같은 자질도 저버렸습니다.
분노를 조절하고 그 밖의 격정을 굴레 씌우는 것 외에도,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제함으로써 순수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외설물을 멀리하고, 우리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이용하고 있는 것들이 적절한지를 평가하고, 온갖 종류의 악한 행실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앨마가 그의 아들 코리앤톤에게 준 권고로 이어집니다. 코리앤톤은 그의 형들인 힐라맨이나 시블론과 달리 도덕적 범법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코리앤톤이 부도덕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앨마는 그에게 회개에 대해 가르쳐야 했습니다. 앨마는 그에게 죄의 심각성에 대해 가르친 다음 회개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앨마가 준 예방적 권고는 탐욕을 굴레 씌우라는 것이었지만, 이미 범법한 자들에게 그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넬슨 회장님은 2019년 4월 연차 대회에서 회원들에게 회개에 관해 심오한 권고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매일 회개하는 것이 우리 삶에 필수적임을 분명히 하며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회개는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며 행복하고 화평한 마음을 갖게 되는 열쇠입니다. 매일 회개할 때 정결함에 이르게 되며, 정결은 권능을 불러옵니다.” 만일 코리앤톤이 넬슨 회장님의 권고대로 행했다면, 그는 불순한 생각이 들자마자 회개했을 것이고 중대한 범법 행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앨마가 그의 아들들에게 준 마지막 권고는 모든 경전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 일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와 연관됩니다.
앨마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하실 것이라고 간증했습니다. 구주의 속죄가 없었다면 영원한 공의의 원리에 의해 형벌이 요구될 것입니다. 구주의 속죄 덕분에, 회개한 사람들에게 자비가 깃들고 그들은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 놀라운 교리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자신의 선행만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주의 희생이 가져다준 유익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만 우리는 자비를 얻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사소한 죄를 지었든, 코리앤톤이 지은 죄만큼 심각한 죄를 지었든 간에, 회개의 과정을 거쳤거나 거치게 될 우리 모두를 위해 앨마는 코리앤톤에게 훌륭한 권고를 주었습니다. 앨마서 42장 29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아들아, 나는 네가 더 이상 이러한 일로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만 너를 회개로 이끌어 내릴 그 괴로움으로, 네가 죄를 괴로워하기 바라노라.”
코리앤톤은 앨마의 권고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회개하고 명예롭게 봉사했습니다. 구주의 속죄 덕분에 모든 사람이 치유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앨마의 시대에도, 히버의 시대에도, 그리고 분명히 우리 시대에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을 구하고, 격정을 굴레 씌우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평화를 찾으며,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최근 말씀에서도, 또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간증을 책임지십시오. 간증을 얻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간증의 주인이 되십시오. 간증에 마음을 쓰십시오. 간증을 양육하여 자라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십시오.”
(쿠엔틴 엘 쿡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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