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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혼인 잔치에 초대받는 것과 잔치에 참여하기를 선택하는 것

by 높은산 언덕위 2023. 3. 23.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이 깊은 통찰이 담긴 성구로 마무리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흥미롭게도 조셉 스미스는 조셉 스미스 역 성경에서 마태복음의 이 구절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그러므로 모두가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은 아님이라.

혼인 잔치에 초대받는 것과 잔치에 참여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서로 관계는 있지만 다른 일입니다. 초대는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전해집니다. 그 개개인은 초대를 수락하고 잔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잔치에 참여하도록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돌이켜 주 예수와 그분의 신성한 은혜를 믿는 신앙을 행사한다는 의미의 합당한 혼인 예복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받고, 각자의 방식으로 부름에 응합니다. 그래서 부름(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택함을 받거나 택함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독점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보다 여러분과 저는 도덕적 선택의지를 의롭게 행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택함받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에 있는 잘 알려진 다음 구절에서 택함을 받다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보라.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도다. 어찌하여 그들이 택함을 받지 못하느냐?

이는 그들의 마음이 이 세상 일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사람의 명예를 갈망하여 그들이 이 한 가지 교훈을 배우지 아니함이니.”

저는 이 구절들이 암시하는 내용이 꽤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름이 오르기를 바라야 하는 그런 명단은 없습니다. 그분은 “택함을 받은 자”를 한정된 소수로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로 헤아려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소망, 성스러운 복음 성약과 의식의 준수, 계명에 대한 순종, 그리고 무엇보다 구주의 구속하시는 은혜와 자비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자손과 또한 우리의 형제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부지런히 수고하여 기록함이니,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앎이라.”

일상의 분주함과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의 소란 속에서 쾌락, 번영, 인기, 유명세를 주된 우선순위로 삼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영원한 것들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순간순간 “이 세상의 것들”과 “사람의 명예”에 사로잡힌 나머지 죽 한 그릇보다 훨씬 못한 것을 탐하다 보면 영적인 생득권은 박탈당하고 말 것입니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