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말씀·경전

연약함은 죄가 아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4.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에 합당한가? 내가 완전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정말로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실 수 있을까? 나에게서 이 문제가 사라지도록 여러 날을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선교 임지에서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착실하게 복음대로 생활했는데, 내 단점을 그렇게 많이 깨달은 적도 없었다. 아주 잘하고 있었는데도 이따금 기분이 몹시 나쁜 것은 왜였을까?”
그러한 질문들을 깊이 생각할 때, 죄는 확실히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반면에 약점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죄와 약점을 구별한다
우리는 보통 죄와 약점을 우리의 영혼이라는 직물에 찍힌 크기가 다른 오점으로 생각하며 단지 잘못의 심각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죄와 약점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며, 서로 다른 치료법이 요구되고, 서로 다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연약함은 죄가 아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더 죄에 익숙해 있지만,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죄는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거나 우리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거역하겠다는 선택이다. 죄는 하나님 아버지께 적의를 품고 하나님보다 사탄을 신뢰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달리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우리 죄를 대속하실 수 있으셨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여 생각과 마음과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고, 적절한 사과나 고백을 하며, 가능한 경우 보상을 하고, 그 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다시 깨끗해질 수 있다.
불결한 것은 하나님의 면전에 거할 수 없으므로 깨끗해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을 떠날 때처럼 무죄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라면 여생을 요람에서 편안하게 누워 지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지혜와 기술을 익히며,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따라 생활하고, 신성한 성품을 획득하는 등 안락한 요람 안에서는 이룰 수 없는 진보를 위해 지상에왔다.
인간의 약점은 이 필수 불가결한
필멸의 삶의 목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로나이가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약점 때문에 이방인들이 성스러운
것들을 조롱할까 봐 걱정했을 때,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를
안심시키셨다.
“또 만일 사람들이 내게로 오면
내가 그들에게 그들의 연약함을 보일
것이라. 내가 사람들에게 연약함을 주는
것은 그들로 겸손하게 하려 함이요,
내 은혜가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하니, 이는
만일 그들이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내가 그들을 위하여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할 것임이니라.”(이더서 12:27;또한 고린도전서 15:42~44; 고린도후서
12:7~10; 니파이후서 3:21; 야곱서 4:7
참조)
이 친숙한 성구는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죄를 (사탄이 부추기는)
약점(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태로 묘사됨)과 구별해야 함을
알려 준다.
약점이란 인간에게 있는 지혜, 능력,
신성의 한계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로서 여러 육체적 결함과
성향을 지닌 채, 무력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태어났다. 연약한 다른 필멸의
인간들에게 양육되고 그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의 가르침과 본보기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연약한
필멸의 상태에서 우리는 육체적, 정서적
질환과 굶주림, 피로를 겪는다. 또 분노,
슬픔, 두려움 등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경험한다. 우리에게는 지혜, 기술, 끈기,힘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종류의 유혹을 받기
쉽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와 더불어
연약한 필멸의 상태가 되셨다.(고린도후서 13:4 참조) 그분은
필멸의 육신을 입고 무력한 유아로 태어났으며 불완전한
보호자에게 양육되셨다. 그분은 걷고, 말하고,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셔야 했다. 그분은 굶주리고
피곤했으며, 인간의 감정을 느꼈고, 또 질병과 고통을 겪고,
피를 흘리고, 죽으실 수도 있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셨으며]”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우리의 연약함 또는 약점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도록 자신을 필멸의 지배 아래 두셨다.(히브리서 4:15;
또한 앨마서 7:11~12 참조)
단순히 연약함에 대해 회개할 수는 없는 일이며, 약점
자체가 우리를 불결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죄를 거부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지만, 아울러 인간적인 약점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겸손과 신앙으로 이에 대처하고, 약점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모로나이가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약점을
염려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그 대신 주님은 그에게 겸손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니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온유하고 충실하면, 하나님은
약점에 대한 치료법으로서 용서가 아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경전 안내서에는 은혜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하도록 하나님에게서 오는,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설명되어
있다.(경전 안내서, “은혜” 참조) 하나님은 신적인 치료법으로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하실 수 있다.
겸손을 실천하고 신앙을 행사함
교회 생활 초반부터 우리는 회개의 필수 요소를 배우지만,
겸손과 신앙은 정확히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것일까? 다음을
생각해 본다.
• 깊이 생각하고 기도한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과 마음과 행동에 대해 즉각적이고 깊이 있는 변화를
요하는) 죄를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겸손, 지속적인 노력,
배움, 개선을 요하는) 약점을 다루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우리가 받은 양육과 우리의 성숙도에 달려 있다. 하나의
행동에 죄와 약점의 요소가 둘 다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죄란, 사실 회개하는 대신 합리화하도록 이끄는 약점인
것이다. 또 약점이란 수치, 비난, 절망,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죄인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면 이런 것들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우선순위를 정한다. 우리는 연약하므로 필요한 모든
변화를 한꺼번에 다 일으킬 수는 없다. 우리가 인간적
약점을 한번에 몇 가지 면만 극복하도록 겸손하고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서서히 무지를 줄이고, 좋은 습관을
형성하며, 신체적  정서적 건강과 활력을 증진하고,주님에 대한 신뢰를 돈독히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다.
•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더 강한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의로운 소망 이상이 필요하고 많은 수양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계획을 세우고, 실수를 통해 배우며, 좀 더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하고, 계획을 수정하며, 다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경전과 관련 서적,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작은 일을 시작하고, 향상된 것에 기뻐하며, (우리의 약점과 취약성을 느끼게 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한다. 지치거나 낙담할 때에도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버팀목이 필요하며, 또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때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 인내한다. 우리는 연약하므로 변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우리는 죄를 버리듯이 우리의 약점을 버리지는 못한다. 겸손한 제자는 요구받은 일을 기꺼이 행하고, 회복하는 법을 익히고, 계속 시도하며, 포기하지 않는다. 겸손은 우리 자신과 우리처럼 연약한 다른 사람들에게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내는 주님을 믿는 신앙, 우리를 신뢰하시는 그분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분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다시 깨끗해지더라도 우리는 연약한 상태에 있다. 또 여전히 질병, 감정, 무지, 성향, 피로, 유혹에 예속되어 있다. 그러나 한계와 부족함은 죄가 아니며 깨끗해지고 영을 받기에 합당해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약점에서 강점으로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죄를 짓도록 부추기려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약점을 활용하여 우리를 가르치고,
강화하고, 축복하실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나 소망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없앰으로써 언제나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하시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사탄이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했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반복해서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소망하는 극적인 치료법을 통해
약점을 없애 주실 수도 있지만, 내 경험상 그런 일은 드물다.
예를 들어, 이더서 12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성구 이후에
하나님께서 글쓰기에 대한 모로나이의 약점을 없애 주셨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약점에
대한 방법을 강구하고, 약점에 대해 적절한 유머 감각이나
시각을 지니며, 시간을 두고 약점을 서서히 개선해 나가도록
도우심으로써 약한 것들이 강해질 수 있게 해 주신다. 또한
강점과 약점은 (인내력이라는 강점과 완고함이라는 약점처럼)
종종 서로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는 강점을 소중히 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약점을 완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약한 것들을 강하게 하시는 또 다른 방법, 훨씬
더 강력한 방법이 있다. 주님께서는 이더서 12장 37절에서
모로나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네 연약함을 알았은즉
네가 강하게 되어, 내가 내 아버지의 거처에 예비한 처소에
앉기에 이르리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모로나이의 약점을 바꾸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모로나이를 변화시키려 하셨다. 모로나이와 우리는
인간적인 약점을 극복하려고 애씀으로써 자애, 동정심, 온유함,
인내, 용기, 오래 참음, 지혜, 활력, 용서, 회복력, 감사, 창의성,
그리고 좀 더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될 수 있는 그 밖의 많은
미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자질들, 즉 하늘 나라의
대저택에 거하도록 준비되게 해 주는 그리스도와 같은 속성을
연마하기 위해 이 지상에 왔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좀 더 그분처럼 되기 위해
인간적인 약점을 소중하고 거룩한 미덕과 강점으로 바꾸려
힘쓸 때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구속의 권능이 분명하게
임하는 때는 없다. ◼
글쓴이는 미국 유타에 산다.
(웬디 울리히 20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