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다른 여러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놀라셨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아셨으나 경험했기 때문에 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격심하고 가혹한 속죄 과정을 겪어보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그분의 특별한 지성으로 상상한 그 이상으로 훨씬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하늘의 사자가 나타나 힘을 북돋아 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누가복음 22:43)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축적된 죄의 무게가 완전하고, 죄 없고, 감수성이 강한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병고도 또한 속죄의 엄청난 무게 중 하나였습니다.(앨마서 7:11~12; 이사야 53:3~5; 마태복음 8:17 참조) 고통을 받은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 시간과 그 잔이 자신에게서 물러가기를 간청한 것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적절한 인용으로 간청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마가복음 14:35~36) 여호와이신 예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세기 18:14)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의 천사는 또한 당황해하는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7; 또한 마태복음 19:28; 마가복음 10:27; 누가복음 18:27 참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요청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고통의 극치에서 그분은 혹시 수풀에 걸린 수양을 바라기라도 하셨겠습니까?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분의 고통, 무한대로 늘어난 그 어마어마한 고통으로 그분은 이후에 십자가에서 영혼의 울부짖음을 토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버림받았기에 터져 나온 울부짖음이었습니다.(마태복음 27:46 참조) 그런 중에도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보인 숭고한 순종심을 그대로 간직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닐 에이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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