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지식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영광은 예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탄이 선호하는 전략이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인간의 철학을 구주와 그분의 가르침보다 더 강조함으로써 발을 헛디디게 하는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주를 통해 기적적이고 인생을 바꿀 만한 경험을 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확고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독특한 배경 덕분에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솔직한 순박함”과 빌립보 사람들의 “따뜻한 동정심”을 사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적이고 세련된 헬라인을 이해하는 것을 더 힘들어 했습니다. 아테네의 아레오바고(마르스 언덕)에서 했던 설교에서 바울은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그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교리”만을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는 인간의 철학이 그리스도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리보다 우선시되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배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주의 메시지는 단순하게 가르쳐지지 않았으며, 그 명백하고 귀한 진리가 변질되고 사라졌습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받아들여서 사람들의 믿음을 기존의 문화와 조화시키려 했습니다. 역사학자인 윌 듀런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기독교는 이교 신앙을 멸망시키지 않고 그것을 접목했다. 소멸하고 있던 그리스의 사상이 환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적으로 아주 세련되지 않다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2016-10,쿠엔틴 엘 쿡)
'종교 > 玉盤佳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를 인정하지 않고,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시대 (0) | 2019.10.10 |
---|---|
언젠가는 성도인지 하나님 백성에 대적하는 적인지 구별하기 힘들 시기가 올 것이다. (0) | 2019.10.10 |
하나님과 구주에 대한 우리의 간증은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0) | 2019.10.10 |
우리는 분명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0) | 2019.10.09 |
잠시 멈추어, 살면서 받은 그분의 도움을 생각해 보고 인식해보자 (0) | 2019.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