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 집중하기를, 그리고 구주의 은혜가 우리를 들어올리고 늘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여러분, 오늘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기 연단에 세 자리가 빈 것을 보니 슬픈 마음이 밀려오는군요. 패커 회장님과 페리 장로님, 스코트 장로님이 그립습니다. 우리는 세 분을 사랑하고 그 가족들의 복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대회가 열리는 주말 동안,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이분들의 빈자리를 채워 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세 사람을 지지할 특별한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세 분을 위해 우리가 기도한다면, 거룩한 사도 직분의 겉옷을 입게 되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 여러분에게 이롭습니까?
일전에 어떤 문구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문장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우주에 무수히 많은 별이 있다고 말해 주면 믿겠지만, 벽 페인트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말해 주면 확인하려고 만져 볼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제 유능한 의사들이 저를 진료하고 나서 병이 제대로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줬습니다. 그때 저는 진작부터 알았어야 할 어떤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바로 제가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환자라는 점입니다.
결국 저는 더 빨리 낫는 법을 찾기 위해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의사들이 모르고 있거나 숨기고 있는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한참을 그러고서야 저는 제 행동에 상당한 모순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스스로 뭔가를 연구해 보는 것은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기댈 수 있는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무시한 채, 엉터리 주장일 때가 많은 인터넷 지식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 진리의 위대한 가치를 제대로 실감하기에는 우리 눈에 그 진리가 너무 직접적이고 너무 평범하고 너무 단순해 보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태껏 경험해서 아는 참된 것들을 밀쳐 두고 더 기이하고 복잡한 지식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좇는 일은 알맹이가 거의 없는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진리 추구에서 우리가 올바른 길에 들어섰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이롭게 작용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의미가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가?”
“나는 진정 행복한가?”
“내가 하는 노력은 나를 삶의 가장 높은 영적인 목표와 가치에 도달하도록 이끌어 주는가?”
삶의 목적과 관련한 심오한 질문들은 세계 곳곳에 사는 여러 개인과 가족들이 진리를 찾아 나서게 했습니다. 또 그렇게 진리를 탐구하는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회복된 복음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도 이따금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경험은 나에게 이로운가? 내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 주는가? 나와 내 가족에게 복음 안에서 약속된 평화와 기쁨의 축복을 안겨 주는가?”
앨마도 제이라헤믈라의 교회 회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마음에 이 크나큰 변화를 경험하였느냐? … [또한] 너희는 지금 [그것을] 느낄 수 있느냐?”1 이런 성찰의 시간은 우리가 날마다 하는 노력을 신성한 구원의 계획에 부합하도록 다시금 일치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많은 회원들은 교회 회원으로서 하는 경험이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다며 행복한 마음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이들은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자신이 주님께 헌신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크나큰 평안과 기쁨과 의미를 찾는다고 간증할 것입니다. 저는 매일마다 눈부신 기쁨을 한가득 품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 덕택에 자신의 삶이 놀랍도록 풍성해졌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을 하며 교회 회원이 된 것이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 것을 압니다.
이런 분을 만나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왜냐하면 저는 복음이 어떻게 사람의 영혼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마음을 소망으로 채우며 생각을 빛으로 채워 주는지를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열매가 어떻게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특별하고도 멋진 삶으로 바꿔 주는지를 저는 스스로 압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복음에서 더 큰 유익을 얻을까요? 교회를 다니면서 영혼에 구속하시는 사랑의 노래2 가 흐르는 사람과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자 수많은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오늘은 그중에 두 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단순하게 하십시오
첫 번째로, 우리는 제자가 되는 길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름다운 이 복음은 아주 단순한 것이라서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심오하고도 복잡해서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평생, 아니 영원토록 연구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진리의 백합을 가지고 와서는 인공적인 좋은 아이디어와 프로그램과 기대치 등으로 겹겹이 색을 입힙니다. 그 하나하나는 특정한 때와 상황에서 그 자체로 유용하고 적절할 수도 있지만, 겹겹이 색을 올리면 찌꺼기가 생겨 두껍고 무거운 층이 쌓이고, 급기야 한때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그 소중한 꽃은 묻혀 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로서 우리는 교회와 복음을 철저히 순수하고 담백한 상태로 보호해야 하며 회원들에게 불필요한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 모두는 진정 중요한 일, 즉 이웃에게 영감을 주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힘과 시간을 바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흠잡을 데 없는 공과를 가르치기로 유명한 한 상호부조회 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한번은 가르칠 공과 주제에 딱 들어맞는 배경이 될 아름다운 퀼트를 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삶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이웃집 이사를 도와주고, 남편은 고열로 고생하고, 친구는 외롭다고 호소했습니다. 공과를 가르칠 날이 다가왔지만 퀼트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로 전날 밤에는 퀼트를 다 짜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래서 정작 다음 날은 기운이 다 빠져서 제대로 생각을 정리하기도 버거운 상태로 간신히 버텨 서서 공과를 가르쳤습니다.
물론 퀼트는 놀라울 정도로 멋졌습니다. 완벽한 바느질에 생생한 색감에 정교한 무늬까지 탁월했고, 중앙에는 공과 주제인 “단순하게 하라”라는 말이 의기양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복음 생활은 그리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 생활은 간결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생기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게 됩니다.3
하나님을 더 신뢰할수록 우리 마음은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더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고 우리의 행동을 그분의 말씀에 맞추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축복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돕고자 합니다.
제자의 길을 더 걸어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갈망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서 신앙과 소망과 사랑을 끊임없이 키워 나갑니다.
복음은 눈부시게 간결하고, 아름답도록 이롭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복음이 여러분에게 이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좀 더 높은 창공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제자 됨에 대해 좀 더 단순하게 접근해 보십시오. 복음의 기본 교리와 원리, 실천에 집중해 보십시오. 약속하건대,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으로 여러분의 삶이 풍성해져 가고 틀림없이 복음이 더 이롭게 작용할 것입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두 번째로, 지금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자질을 “더” 갖지 못했다며, 더 영적이고, 존경받고, 지적이며, 건강하고, 부유하고, 다정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낙담합니다. 물론, 더 훌륭해지길 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약점이 있기에 좀 더 겸손하게 그리스도에게로 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4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반대로,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 우리를 낙담시켜 어떤 일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듭니다.
살면서 배운 교훈 하나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질을 “더”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지금 모습 그대로 데려다가 함께 일하십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하는 마음과 믿고자 하는 열망과 주님에 대한 신뢰만 있으면 됩니다.
기드온은 자신을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요 한낱 가난한 농부로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보셨습니다.5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택했을 때, 사울은 극구 사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집의 가장 작은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찌 왕위에 앉을 수 있었겠습니까?6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그는 “준수한 소년”7 이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도 책임에 짓눌려 낙담한 나머지 한때는 다 포기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8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필멸의 눈으로만 자신을 바라본다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참모습과 잠재력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아들과 딸이요, 한없는 잠재력과 신성한 운명을 지닌 영원한 빛의 존재로 보십니다.9
구주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구주의 “은혜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합니다.]”10 그분의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왕국을 열어 주는, 가능하게 하는 권능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모두 부활하여 영광의 왕국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영광의 왕국인 별의 왕국조차도 “모든 이해력을 뛰어 넘는”11 곳이며,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구원을 상속받을 것입니다.12
하지만 구주의 은혜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는 상상도 못할 만큼 위대한 것을 갈망합니다. 그것은 바로 해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승영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면전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13 해의 왕국에서 우리는 “그의 충만함과 그의 영광”14 을 받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15
우리의 목표는 승영이며, 제자 됨은 우리의 여정입니다.
조금만 신앙을 행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적인 추종자로서 걸음을 내디딘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16 온 몸과 마음이 환히 밝아질 것입니다.17
여러분이 스스로 전혀 생각 못했던 위대한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으로 삶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복음은 이롭습니다!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여러분,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18 에 집중하기를, 그리고 구주의 은혜가 우리를 지금 그 자리에서 들어올려 아버지의 면전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운명에 도달하기까지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이로운가요?”라고 묻는다면 자랑스럽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쁨에 차서 “놀랍도록 이롭습니다! 물어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알고 싶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이자 기도요 간증이며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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