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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랑·감사·자비

사랑과 율법

by 높은산 언덕위 2018.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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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율법과 계명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과 영향력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말씀해야 한다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복음 계획이 가져오는 모든 축복은 만인에 대한 그분의 온전한 사랑을 나타내며,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훌륭한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1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가르칠 때 지침으로 삼아야 할 영원한 원리입니다.

우선 네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랑과 율법 사이에서 혼동을 느끼는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동거를 하는 한 젊은이가 근심하는 부모에게 말합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면 정식으로 결혼한 자녀들처럼 저와 그 사람을 받아들이시겠죠.”

  • 한 청소년이 부모의 제어나 압력에 반항하여 단언합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면 제게 강요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 두 가지 예에서 계명을 어긴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이나 부모의 가르침보다 부모의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음 두 가지 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혼동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 다음 생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려면 부부가 영원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교리를 거부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식으로 남편과 아내를 갈라놓지는 않으실 거예요.”

  • 하나님이 어떤 개인이나 인종이 겪도록 허락하신 고난을 보고 신앙을 잃었다고 말하는 한 사람은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우리를 사랑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원한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는 영향력과 상반된다고 여겨, 그 율법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율법과 계명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과 영향력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부모가 정하는 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아침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님께서 이에 대해 매우 의미 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물었습니다. 환난도, 박해도, 위험이나 칼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로마서 8:35)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절)

하나님의 사랑에 담긴 무한하고 온전한 힘을 보여 준 가장 훌륭한 증거를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 또 다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로마서 8:32) 아들을 보내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무한한 고통을 겪게 하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슬퍼하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는 가장 훌륭한 증거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불변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고, 우리는 왜 그 사랑을 소망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율법의 관계에 해답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조건 없는 그분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자비로 율법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대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불변한다는 사실을 알며, 바로 그 불변함이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는 것을 압니다. 자비는 공의를 앗아갈 수 없으며,2 자비는 “성약을 지키고 계명을 준행한 자들”이 얻는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54:6)

현대의 경전과 성경에는 사악한 자들3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과 율법을 어기는 자들에 대한 “진노”4가 반복하여 나옵니다. 노여움과 진노는 어떻게 그분의 사랑을 증거합니까? 조셉 스미스는 하나님께서 “[지상에 보내질 영들이] 그분과 같이 발전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을 수 있도록 율법을 제정하[셨다]”라고 가르쳤습니다.5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완전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계명에 순종하라는 애정 어린 요구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가 그분처럼 온전해지는 유일한 방법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노여움과 진노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모순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를 하는 자녀를 멈추게 하려고 화를 내거나 그 모습에 실망할 때에도 여전히 자녀를 온전히,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만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은 모든 자녀, 심지어 그분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많은 은사를 부여합니다. 필멸의 육신이 바로 그러한 은사 중 한 가지입니다. 하늘 전쟁에서 첫째 지체를 지켰던 이들은 모두 필멸의 육신을 받았습니다.6 또 한 가지 무조건적인 은사는 모든 이들이 겪게 될 부활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2) 필멸의 상태에서 받는 다른 많은 은사도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는가의 여부와는 무관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십니다.]”(마태복음 5:45)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불순종할 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 교회로 돌아온 한 여성은 성찬식 말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을 거절했을 때에도 늘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저를 인도하셨고 친절하신 자비로 저를 감싸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분노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7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순종할 때 받습니다. 현대에 받은 계시에서 확실한 가르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하늘에서 변경될 수 없게 선포된 율법이 있어 모든 축복은 이에 근거를 두나니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축복을 얻을 때에는 그것이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율법을 순종하였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니라.”(교리와 성약 130:20~21)

이 위대한 원리에서 수많은 것들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속죄로 자비와 공의를 함께 이룰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선택의지를 행사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는 이유도 설명해줍니다. 선택의지, 즉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지상으로 이끈 복음 계획에서 근간이 됩니다. 사람들이 선택하여 만든 결과에 하나님께서 미리 개입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억압할지라도 우리의 영원한 진보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으십니다.8 다른 사람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우리가 인내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겠지만, 그 선택을 미리 막지는 않으십니다.9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하나님 아버지나 그분의 성스러운 아들이 계명보다 사랑을 중히 여기신다고 추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역을 시작하실 때, 그분이 외치신 첫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10

그분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심으로써 사랑으로 자비를 보이셨지만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한복음 8: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의 영향력이 대중적인 행위나 욕망에 따라 변경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가 율법을 어기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도 율법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율법을 깨뜨리며,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기를 구하며, 죄 가운데 거하기 원하며, 온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은 율법으로나 자비로나 공의로나 심판으로도 성결하게 될 수 없나니, 그러므로 그들은 여전히 더러운 채로 있어야 하느니라.”(교리와 성약 88:35)

현대에 받은 계시에서 우리는 “모든 왕국에는 주어진 율법이 있[다]”(교리와 성약 88:36)라고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의 왕국의 율법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해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음이니라.

그리고 달의 왕국의 율법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달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별의 왕국의 율법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나니”(교리와 성약 88:22~24)

다시 말하면, 최후의 심판으로 우리에게 배정되는 영광의 왕국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계획 안에서 그분이 제정하신 율법으로 정해집니다. 계획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서 가장 큰”(교리와 성약 14:7) 은사인 영생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고 대할 때 이러한 원리를 적용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녀들에게 선물을 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사 중 일부를 모든 필멸의 자녀에게 주셨지만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강요하지는 않으시는 것처럼, 자녀들이 부모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준행하지 않을지라도 집이나 음식 같은 여러 혜택을 제공합니다. 현명한 부모들은 전지전능하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를 위해 율법과 계명을 주신 본을 따라 자녀에게 주는 부모의 선물 중 일부에 조건을 답니다.

술이나 마약을 하는 등 기대에 어긋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집에 술이나 마약을 두거나 취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법률에 따라, 또는 비행 정도에 따라, 또는 다른 자녀들을 위해 그것을 금지할 것인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논하자면 동거를 하는 자녀에게 결혼 밖에서 맺는 성 관계의 심각성을 이유로 이 자녀를 모든 가족관계에서 제외시켜 전면적인 가족의 반대를 느끼게 할 것인가, 또는 부모의 사랑으로 동거 사실을 모르는 체 할 것인가? 저는 이 양 극단의 예를 모두 보았는데, 두 방법 모두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까요? 이런 문제는 주님께서 주시는 영감에 따라 부모의 지혜로 해결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이끄는 일만큼 부모에게 하늘의 인도가 필요한 일은 없습니다. 또한 그만큼 하늘의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일입니다.

이런 문제로 씨름을 하는 부모들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11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 냉담, 또는 무지의 광야를 헤매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사랑의 원정”을 요구하셨습니다.12 그렇게 자녀를 가르치는 일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염려하고, 계속해서 애정 어린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종종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히브리서 12:6)라고 가르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13 러셀 엠 넬슨 장로님은 연차 대회에서 “관용과 사랑”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묵인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맞설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옹호하지 않습니다.”14

사랑의 힘, 그리고 율법의 영향력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선을 긋든지 계명을 어기는 것은 분명 사랑하는 가족관계에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51~53)

이 엄숙한 가르침은 가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노력하지 못할 때 분쟁이 일어날 것을 상기시킵니다. 사랑하는 가족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더라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탈선하여 우리의 행복이 손상되는 현실을 견디면서도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율법을 이해하며 결속하려는 끈기 있는 노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구원의 계획의 일부이자 그리스도의 교리인 이 모든 것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1. 러셀 엠 넬슨, “하나님의 사랑”, 리아호나, 2003년 2월호, 17쪽 참조.

  2. 앨마서 42:25 참조.

  3. 예를 들면, 사사기 2:12~14; 시편 7:11; 교리와 성약 5:8; 63:32 참조.

  4. 예를 들면, 열왕기하 23:26~27; 에베소서 5:6; 니파이전서 22:16~17; 앨마서 12:35~36; 교리와 성약 84:24 참조.

  5.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210쪽.

  6. 요한계시록 12:7~8 참조.

  7. 2005년 12월 6일자 편지, 저자 소유.

  8. 앨마서 42:8과 비교.

  9. 모사이야서 24장 14~15절과 비교.

  10. 마태복음 4:17 참조.

  11. 누가복음 15:3~7 참조.

  12. 토마스 에스 몬슨, “잃어 버린 대대”, 성도의 벗, 1987년 9월호, 3쪽 참조.

  13. 또한 잠언 3:12; 요한계시록 3:19 ; 교리와 성약 95:1 참조.

  14. 러셀 엠 넬슨, “우리에게 관용과 사랑을 가르쳐 주옵소서”,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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