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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족·결혼

“네 집에 질서를 세우라”

by 높은산 언덕위 2018. 2. 19.


여러 해 전에 넬슨 자매와 저는 십대의 딸들을 데리고, 전화와 남자 친구가 없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족 휴가를 갔습니다. 그랜드 캐년을 관통하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내려가는 래프팅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이 여행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첫날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혼 크릭 급류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앞에 있는 가파른 절벽을 보았습니다.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 고무 래프트 위에 탄 채, 소중한 우리 가족은 폭포 아래로 곤두박질할 참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저는 한 팔로 아내를, 다른 한 팔로 막내딸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 가까이로 끌어 당겼습니다. 그러나 낭떠러지에 이르러 휘어진 래프트는 거대한 새총이 되어 저를 공중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저는 맹렬하게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급류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숨 쉬려고 머리를 내밀 때마다 래프트의 밑바닥에 부딪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제 가족은 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족들이 “아빠! 어딨어요?”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래프트의 옆을 찾아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가족들은 거의 익사 직전의 저를 물에서 끌어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게 다시 만나게 된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다음 며칠 간은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여행에서 가장 위험한 급경사로 알려진 라바 폴스를 건너야 하는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저는 앞에 놓여 있는 급경사를 보고, 곧바로 래프트를 물가에 대게 한 후 긴급 가족 평의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경험에서 살아 남으려면, 주의 깊은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무 래프트는 물 위에 그대로 남아 있을 거다. 래프트에 단단히 매어진 밧줄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린다면, 무사할거야. 설사 래프트가 뒤집히는 일이 있어도, 밧줄만 단단히 잡는다면 모두 괜찮을 거야.”

저는 일곱 살 난 막내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밧줄을 단단히 붙잡을 거다. 하지만 넌 아빠에게 꼭 매달려야 해. 내 뒤에 앉거라. 아빠는 밧줄을 잡을 테니 너는 아빠를 꼭 껴안고 단단히 붙잡아야 해.”

그리고 우리는 건넜습니다. 그 가파르고 거친 급류를 —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밧줄을 꼭 붙잡고 — 모두가 무사히 건넜습니다.1

교훈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에게 드리는 교훈을 배우느라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심지어 거친 물살을 가르는 동안, 아내나 자녀를 꼭 끌어안으려는 아버지의 본능적인 충동은 그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구세주와 복음의 쇠막대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달리고자 한다면, 그의 가족도 그 아버지와 구세주에게 매달리고자 할 것입니다.

이 교훈이 아버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성별이나 결혼 여부, 또는 연령 등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신을 구세주에게 직접 연결시키고, 그분의 진리의 막대기를 굳건히 잡으며, 그 진리의 빛에 의해 인도 받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이들이 매달리고 싶어하는 의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계명

주님에게 있어 가족은 필수적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육체를 얻고 가족을 이룰 수 있도록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2 가족을 승영시키기 위해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가족들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전을 마련하셨습니다.3

물론 주님은 아버지들이 그들의 가족들을 감리하고, 부양하며, 보호하기를 기대하십니다.4 그러나 주님은 더욱 많은 것들을 요구하셨습니다. 거룩한 경전에 “네 집에 질서를 세우라”5는 계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부모로서 그 계명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그것을 실행할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 질서를 세우는 방법

집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일을 주님의 방법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속성인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6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모두 “신권의 권능을 구실삼아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유지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아니되나니, 다만 설득과 오래 참음과 온화함과 온유함과 거짓 없는 사랑”7 으로 행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사람을 심히 크게 만드는 … 친절과 깨끗한 지식”8의 산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이기적인 관심을 버리고 위선이나 물리적 힘이나 악한 말에 대한 생각조차도 피해야 합니다.9 부모들은 곧 각 자녀가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각 개인은 각자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합니다. 어느 누구도 억제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좋은 의도를 가진 부모에 의해서도 통제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주님께 매달릴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욥은 그 개념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10 니파이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이를 굳게 지킬진대 멸망당하지 아니하며”11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신조는 복음처럼 시대를 초월한 것이며 영원처럼 끝없는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한 경전상의 권고를 몇 가지 더 상고해 보겠습니다.

구약전서의 잠언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12

신약전서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13

몰몬경에서 우리는 “줄기차게 쇠막대를 단단히 붙잡고”14 나아갔던 무리들에 관해 배울 수 있는데 그 쇠막대는 “하나님의 말씀”15을 상징합니다. 진리에 닻을 내린 이 쇠막대는 움직이지 않고 또 변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신성한 명령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잡아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신성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경전상의 지시는 아주 명확합니다. “또 시온 … 안에 자녀를 가진 양친이 있으면 그 자녀의 나이 여덟이 되었을 때 회개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침례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 등의 교리를 자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죄가 부모의 머리에 머물러 있느니라.”16

그 계명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의무와 그렇지 않았을 때 져야 할 책임을 부모의 어깨 위에 분명하게 놓고 있습니다. 가족에 관해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에서는 “가족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책임지게 되리라는 것을”17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 경고가 진실함을 다시 한 번 엄숙하게 단언합니다.

이러한 의무들을 완수하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와 가족을 모두 필요로 합니다. 이 두 조직은 서로를 강화하기 위해 손에 손을 맞잡고 일합니다. 교회는 가족을 승영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족은 교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교회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이러한 상관 관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1833년에 주님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교회의 젊은 지도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너희 자녀를 빛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라 명하였느니라.

“그러나 진실로 나는 … 이르노니 …

“너는 계명에 따라 네 자녀에게 빛과 진리를 가르치지 아니하였나니, …

“이제 한 계명을 네게 주노니, … 네 집에 질서를 세우라. 네 집에 옳지 아니한 일이 많음이니라. … 먼저 네 집에 질서를 세우라.”18

이 계시는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고결함을 나타내는 여러 강력한 확증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계시의 일부가 자신을 향해 주어진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꾸짖음들을 경전에서 삭제하지 않았습니다.19

우리 시대에 대관장단은 다시 부모의 우선 순위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보내는 최근 서한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대관장단은 부모 여러분께,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자녀들을 복음의 원리 안에서 가르치고 양육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자녀는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은 의로운 생활의 기초가 되는 곳으로서, 그 어떠한 곳도 가정을 대신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완수하는 데 가정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은 없습니다.”20

부모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 거룩한 계명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경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회개, 침례, 그리고 성신의 은사를 가르치라고 부모들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21 부모들은 구원의 계획과22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23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자녀는 인간을 구원하고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분명 무지하게 될 것입니다.24 부모들은 그들의 삶을 헌납하는 방법, 곧 시간과 재능과 십일조와 재산을 사용하여25 교회와 하나님의 왕국을 이 지상에 세우는 방법을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26 그런 방식에 따른 생활은 문자 그대로 그들의 후손들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의무는 영원히 교회에 있나니 이는 네 가족으로 말미암느니라.”27

가족에 대한 반대 세력

부모들과 자녀들은 주님의 사업과 뜻에 대하여 언제나 강한 반대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28 하나님의 사업(과 영광)은 우리에게 가족으로서의 불사불멸과 영생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29 악마의 작용이 가정의 심장인 가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루시퍼는 삶의 신성함과 부모가 되는 기쁨을 무자비하게 공격합니다.

악한 자가 쉬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우리들 또한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악의가 없어 보이는 작은 권유가 비극적인 범법을 가져오는 거대한 유혹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집에서나 밖에서나, 우리는 죄를 피해야 하며 “좋은 것을 취”30해야 합니다.

외설물, 낙태, 해로운 물질에의 중독과 같은 유혹성 악들은 흰개미들처럼 행복한 가정과 충실한 가족의 튼튼한 기초를 갉아 먹습니다. 따라서 가족을 위험으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어떤 악에라도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우리가 자신처럼 비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31 그는 우리의 육욕적인 욕구를 자극하며, 영적 암흑 속에 살도록 꾀며, 죽음 이후의 삶의 실재성에 대해 의심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32

가족 축복의 영속성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행복의 계획을 이해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강화됩니다. 그분의 계획은 시대를 초월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 해답을 줍니다. 서로에 대한 공감과 사랑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족 생활이 필멸의 이 시험 기간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해의 왕국의 결혼과 가족의 영원한 속성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물질적인 소유와 세상의 영예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내나 남편이나 가족으로서의 결합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열망을 충족시키는 가족 생활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영원한 결혼의 축복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려면, 모든 불경함을 버리고 성전 의식들을 존중하기만 하면 됩니다. 거룩한 성전 성약을 맺고 지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입증하며, 후손들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 대한 우리들의 진실한 사랑을 입증합니다. 가족은 이생에서 우리의 가장 위대한 사업과 기쁨의 초점입니다. 이는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며, 그때에 우리는 “왕위와, 왕권과 주권, … 권능과 영토와 … 승영에 이르러 … 영광”을 “상속”33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집에 질서를 세우고 충실하게 복음을 붙든다면 이러한 값진 축복들이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교회입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은 그분의 예언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진실함을 간증드립니다. 아멘.

  1. Russell M. Nelson and Rebecca M. Taylor, “Friend to Friend”, Friend, 1997년 3월호, 6~7쪽 참조.

  2. 교리와 성약 2:1~3 참조.

  3. 교리와 성약 138:47~48 참조.

  4. 디모데전서 5:8 참조.

  5. 교리와 성약 93:44; 열왕기하 20:1; 이사야 38:1 참조.

  6. 디모데전서 6:11.

  7. 교리와 성약 121:41.

  8. 교리와 성약 121:42.

  9. 베드로전서 2:1 참조.

  10. 욥기 27:6.

  11. 니파이일서 15:24.

  12. 잠언 4:13.

  13. 데살로니가후서 2:15. 다른 관련 성구에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디모데후서 1:13)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브리서 10:23)가 포함된다.

  14. 니파이일서 8:30.

  15. 니파이일서 11:25.

  16. 교리와 성약 68:25.

  17.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1998년 10월호, 24쪽.

  18. 교리와 성약 93:40~44.

  19. 교리와 성약 93:47 참조.

  20. 1999년 2월 11일자 서한. 고든 비 힝클리, 토마스 에스 몬슨, 제임즈 이 파우스트 서명. 이 서한에서 대관장단은 또한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와 자녀되시는 여러분은 가족 기도, 가정의 밤, 복음 공부와 교육 및 건전한 가족 활동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요구 사항이나 활동이 아무리 합당하고 적절하다고 해도, 이러한 것들이 부모와 가족만이 행할 수 있는 거룩한 임무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대관장단 서한”, 리아호나, 1999년 12월호, 1쪽)

  21. 모로나이서 8:10; 교리와 성약 19:31; 68:25~34; 138:33; 신앙개조 제4조 참조.

  22. 모세서 6:58~62 참조.

  23. 레위기 10:11; 신명기 6:7; 모사이야서 4:14 참조.

  24. 니파이이서 2:26; 모사이야서 1:3; 5:8; 교리와 성약 98:8 참조.

  25. 모사이야서 4:21~26; 18:27; 앨마서 1:27 참조.

  26. 요셉스미스역, 마태복음 6:38 참조.

  27. 교리와 성약 23:3.

  28. 모로나이서 7:12~19 참조.

  29. 모세서 1:39 참조.

  30. 데살로니가전서 5:21.

  31. 니파이이서 2:17~18, 27 참조.

  32. 고린도전서 15:19.

  33. 교리와 성약 1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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