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안식일

제  16  장 안식일-기쁨에 찬 날(킴볼회장님의 가르침)

by 높은산 언덕위 2017. 11. 13.

  16 

안식일-기쁨에 찬 날

안식일은 활기와 기쁨에 찬 예배의 날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교회를 두루 여행하면서 안식일을 존중하는 성도들을 볼 때 무척 기뻐했다. 그는 특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인해 축복 받았던 두 사람을 만났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저는 한 지역의 스테이크를 재조직하면서 스테이크 내의 한 중요한 직분에 봉사할 어떤 사람과 접견을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정비소를 운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십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요.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운영이 됩니까? 보통 정비소 주인들은 안식일에도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라고 저는 물었습니다. ‘저는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펴 주시니까요’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정말 치열합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일요일에도 종일 문을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형제님은 한 번도 열지 않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열지 않습니다. 저는 감사하고 있고, 주님은 관대하시며, 제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스테이크에서도 재조직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높은 직책 중 하나를 위해 한 형제가 거론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형제의 직업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식품점을 운영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식일에도 문을 여는데, 형제님은 어떻습니까?’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열지 않습니다.’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칠일을 여는 사람들과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제가 다시 물었고, 그는 ‘경쟁이 됩니다. 적어도 저희가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매출이 제일 좋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안식일에는 평일에 파는 것보다 두 배 정도는 많이 팔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 삽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호의를 베푸셨으며, 또 은혜로움으로 보살펴주셨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주님은 희생처럼 보이는 이런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님이 버는 돈은 깨끗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일에서 그 돈은 분명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1

킴볼 회장은 안식일을 활기와 기쁨에 찬 예배의 날, 다시 말해 세상의 것들을 뒤로 하고 의로운 활동으로 하루를 채우는 시간으로 보았다. 경전을 인용하여 그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만들고, “유쾌한 마음과 얼굴”로 그날을 맞이하도록 권고했다. (이사야 58:13; 교성 59:15)2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주님은 항상 그분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존중할 것을 명하셨다.

모세는 땅이 진동하고 연기가 자욱한 시내 산에서 내려와 방황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인간의 삶에서 행동의 근본이 되는 규칙인 십계명을 전해 주었습니다.그러나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태초부터 그에 따라 살도록 명을 받았었는데, 단지 주님에 의해 모세에게 되풀이된 것뿐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계명들은 지상 생활 이전에 존재했으며 인류를 위해 천국 회의에서 제정된 시험 중 일부였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에 따라 사람은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계명은 그러한 경배를 위해 특별히 안식일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3, 8~11)

많은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순간의 문제이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그것은 으뜸가는 계명들 중 하나에 불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창조 이전에 우리 각자를 위해 세워진 개별적인 시험, 즉 “주 그들의 하나님이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다 행하는지를 보[는]” (아브라함서 3:25) 시험을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입니다. …

시내 산의 우레 소리에서 전해져 내려온 엄숙한 명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계명은 결코 폐지되거나 수정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대에 다음과 같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곧 주의 날에는 네 죄를 네 형제들에게 그리고 주 앞에 고백하며, 네 헌물과 네 성찬을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바칠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 날에는 다른 어떠한 일도 하지 말 것이요, 다만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 네 기쁨이 충만하게 되도록 할지니라.”(교성 59:12~13)3

안식일은 사업이나 여가 활동을 위한 날이 아니다.

저는 …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더욱 엄격히 준수할 것을 촉구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날이 세계 곳곳에서 그 성스러운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부와 쾌락과 여가 활동과 거짓 신과 물질적인 신을 좇아 안식일의 성스러운 목적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고 또 거룩하게 지킬 것을 계속해서 촉구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거래하지 않는다면 상점은 그 거룩한 날에 문을 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휴양지, 운동 행사, 온갖 종류의 여가 활동을 하는 곳에도 적용됩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금전의 추구가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레위기 19:30)는 주님의 계명 위에 승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4

우리 기독교 세계의 많은 곳에서 성스러운 안식일에 영업을 위해 문을 여는 사업체들이 아직도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구매하는 사람들인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들, 즉 사람들이 상점과 업체에서 구매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업체들은 문을 계속 열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가정의 밤 시간에 자녀들과 논의해 보십시오. 모든 가족이 이제부터는 안식일에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5

세상은 대부분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식일에 호수는 보트로 가득 차며, 해안은 만원이고, 극장은 최대 인원을 기록하고,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안식일은 이제 로데오나 집회, 가족 소풍을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야구 경기마저 성스러운 날에 열립니다. “평소대로 영업합니다”는 많은 사람들의 선전문구가 되었으며, 우리의 거룩한 날은 휴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휴일로 여기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락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돈벌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고 있습니다. …

주의 날에 사냥하고 낚시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농작물을 심거나 경작하거나 수확하는 것도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에 협곡으로 소풍을 가든지, 운동 경기나 로데오, 경마나 쇼 같은 다른 오락에 참여하는 것도 역시 그날을 거룩하게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다른 모든 면에서는 충실한 후기 성도들 중 일부가 낚시철이 시작되는 첫날에 강에 있지 않으면 최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거나, 일요일에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휴가가 충분히 길지 않을 것이라거나, 또는 안식일에 가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끔씩 여가 활동을 목적으로 교회 모임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어기면서 종종 그들의 가족을 데려가기도 합니다. …

합리적인 여가 활동, 즉 운동, 소풍, 연극,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교회는 조직체로서 그런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에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즉 일할 때와 놀 때, 예배드릴 때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

안식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참으로 필요한 일, 예를 들어 병자를 돌보는 일은 실제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바로 우리의 동기입니다.6

때때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희생과 자제의 문제로 단정되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시간 관리와 시기 선택의 문제입니다. 일주일에 6일은 우리가 일하고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세계 역사 중 특히 우리 시대에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안식일을 피하면서 평일 활동을 계획하고 장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7

안식일은 예배와 합당한 행동을 통해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한 날이다.

안식일은 합당하고 거룩한 일들을 행하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일과 여가 활동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식일에는 건설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며,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빈둥거리는 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준수하고자 한다면, 무릎 꿇고 기도하고 공과를 준비하며, 복음을 공부하고 명상하며, 아픈 사람과 괴로운 사람을 방문하며, 선교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낮잠을 자고, 건전한 자료를 읽고, 그날 참석해야 할 모든 모임에 참석하는 것입니다.8

[안식일에] 가족이 자리를 함께하여 서로 대화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친구와 친척 그리고 아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안식일은 또한 일지를 기록하고 계보 사업을 하기에 매우 좋은 시간입니다.9

히브리어로 안식일(Sabbath)이라는 말은 “휴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조용한 평안, 마음과 영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이기적인 관심사와 열중케 하는 활동에서 벗어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속적인 성약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출애굽기 31:16 참조] 그것은 영원토록 주님과 그분의 자녀 사이의 표적입니다. [출애굽기 31:17 참조] 주님을 예배하며 그분께 우리의 감사와 사의를 표현하는 날입니다. 모든 세상적인 관심사를 떠나 주님을 겸손하게 찬양하는 날입니다. 겸손은 승영을 향한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고통과 괴로움을 위한 날이 아니라, 휴식과 의로운 기쁨을 위한 날입니다. 호화로운 향연을 위한 날이 아니라, 간단한 식사와 영적인 잔치의 날입니다. … 이날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자비롭게 주신 날입니다. 가축이 풀을 뜯고 쉴 수 있는 날입니다. 쟁기를 헛간에 넣어 두고 다른 기계 또한 쉬게 하는 날입니다. 고용주와 종업원, 주인과 종들이 쟁기로 갈고, 땅을 파고, 힘써 일하는 것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날입니다. 사무실을 잠그고, 거래를 연기하고, 고민을 잊을 수 있는 날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 [창세기 3:19 참조]라는 첫 번째 명으로부터 인간이 잠시 해방될 수 있는 날입니다. 육신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은 긴장을 풀고, 영이 자랄 수 있는 날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설교를 하고 간증할 수 있는 날이며, 아울러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거리를 초월하여 인간이 높이 오를 수 있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다시 말해 우리의 약점을 분석하고, 우리의 죄를 관련자들과 주님께 고백하는 날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금식하는 날입니다. 좋은 책을 읽고, 명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날이며, 신권 및 보조 조직을 위한 공과를 공부하는 날이며, 경전을 공부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날이며, 잠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고 긴장을 늦추는 날입니다.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복음을 전하는 날이며, 전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자녀와 좀 더 친해지며, 합당한 교제를 하고, 선을 행하며, 지식과 가르침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우리가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영과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를 영적인 상태로 끌어올리며, 그분의 희생과 속죄의 상징물을 취하고, 복음과 영원한 왕국의 영광을 생각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높은 길로 오르는 날입니다.10

우리는 여러분 각자의 … 모임 일정에 따라 일련의 일요 모임이 있기 전이나 후에, 구주께서 니파이인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가르치신 후에 집으로 가서 그분이 말한 내용을 깊이 생각하고 그에 관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니파이전서 17:3 참조) 그러한 절차를 마음에 간직합시다.11

충만하고 풍성한 안식일에는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성찬을 취하는 일이 포함된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충만하고 풍성한 안식일은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에 대해 배우며 성찬을 취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날을 유용하고 영적인 활동으로 채우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큰 웃음 소리가 아니라 감사와 기쁜 마음과 얼굴로 이러한 일들을 하기를 바라시고, 우리의 성인 남자들과 소년들이 공과를 준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권 모임에 참석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백성들이 주일학교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구원의 계획을 배우기를 바라시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성찬식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함께 노래하고, 입을 열어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영으로 기도하며, 성찬의 상징물을 취하기를 바라십니다. 전적인 헌신과 조건 없는 순종을 바치고, 옳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행하며, 그분을 한결같이 기억하겠다고 다시 서약하기를 바라십니다.12

성찬식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선지자 조셉을 통해 전해진 계명에는 “그 발이 시온의 땅을 딛고 있[는]” 사람들인 그분의 교회에 속한 회원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성 59:3, 9 참조] 그 요건은 성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 가족을 결속시키는 일을 더 잘 돕기 위해, 크건 작건 온 가족이 하나로 뭉쳐 성찬식이 열리는 집회소로 가는 일 이외에 부모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자녀들은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습관을 배울 것이고, 안식일을 어기지 않을 것이며, 비록 아주 어리더라도 가르침과 간증 그리고 그곳에 있는 영을 흡수할 것입니다. 스테이크와 와드와 정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13

매우 어린 소년이었을 때 저는 성찬식에 참석하는 습관에 대해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항상 함께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그런 따뜻한 날 오후면 곧 나른해져 어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잠을 자곤 했습니다. 예배 중에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저는 “모임에 참석하는” 습관을 배웠습니다. 그 습관은 평생 제 몸에 배었습니다.14

어떤 어린이도 의식적으로 햇빛을 흡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의식 중에 빛이 그 작은 몸에 힘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이도 영양분을 주는 자기 어머니의 모유나 뚜껑 열린 통에서 나오는 음식의 가치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결국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힘과 체력을 얻습니다. …

완전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도 모든 어린이는 성찬식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번 무엇인가를 흡수할 것입니다.15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가 멈춰 서서 “신권회에 갈까, 가지 말까? 오늘 성찬식에 갈까, 말까? 우리가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하고 말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허비하는 것입니까. … 지금뿐만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도 단호히 결정을 내리십시오.16

제가 아는 사람은 안식일마다 집에 있으면서 성찬식에 참석하고 보잘 것 없는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집에서 좋은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가정은 물론 성스러운 곳이어야 하지만 그곳은 기도의 집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성찬이 집행되지 않으며, 그곳에는 회원들과의 우정 증진이나 역원들에게 하는 죄의 고백도 없습니다. 산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리고 숲과 시냇물을 그분의 수공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오직 집회소나 기도의 집에서만 주님의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 예수를 기념하여 떡과 포도주를 취하기 위하여 자주 함께 모일 필요가 있느니라.” (교성 20:75)17

우리는 흥겨워지기 위해, 또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만 안식일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책임이며, 어떤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주님을 예배하기를 원한다면, 연단에서 전해지는 내용에 관계없이 모임에 참석하고, 성찬을 취하고, 복음의 아름다움을 숙고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모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바로 여러분이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대신해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주님을 받들어야만 합니다.18

주님은 안식일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의 목적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박탈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그것을 받아들여 순종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주의 깊게 정확하게 순종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림으로써 고통을 받는 것도 바로 그 사람입니다. …

여행을 하면서 저는 안식일에 얻을 수 있는 이윤을 포기하고 금지된 일들을 하지 않는 충실한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안식일에는 소를 몰지 않는 목축업자, 과일이 제철일 때면 대체로 밤낮 없이 열려 있으나 안식일에는 닫혀 있는 길가의 과일 판매대, 주의 날에는 닫혀 있는 잡화점, 식당, 가두 판매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사업도 잘 되어 가며 율법을 지키면서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수익을 희생하는 훌륭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기뻐하고, 그들의 신앙과 확고부동함에 대해 그들을 축복하고 싶은 느낌이 마음속에 일곤 합니다.19

저는 궁극적으로, 재정적인 희생으로 보이는 그 어떤 일로도 인간은 결코 고통받지 않을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율법에 따라 생활할 것을 명하신 후 다음과 같이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20

이 계명에 관해서는 다른 선지자들 가운데에서도 여호수아를 따릅시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4~ 15)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된 다음과 같은 축복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레위기 26:2~6)21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안식일을 준수하고 거룩하게 지킬 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율법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이 아닌 돌판 위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

…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백성들의 이해력이 높음을 인식하시고는, 그들이 예배와 안식일 준수에 관한 완전한 정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 의롭게 희생을, 참으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희생을 바칠지어다.” (교성 59:8)

… 그분은 우리에게 첫째 되는 이 커다란 계명을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또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니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무한한 은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의 선한 사업을 발전시키면서 칠 일 중 하루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측정하는 표시입니다.22

사람들은 종종 안식일에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합당하거나 합당하지 않은지,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온 마음과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기심을 멀리 보내고 욕망을 억제할 수 있다면, 또한 예배하는 마음이라는 척도로 각 안식일 활동을 가늠할 수 있고, 주님과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며,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바친다면, 그런 사람의 삶에서 안식일을 깨뜨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23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167~168쪽을 살펴본다. 주님께서 안식일에 부여하신 중요성과 안식일이 주중의 다른 날과 다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이 안식일을 “기쁨에 찬 날”로 만드는가?

        168~169쪽을 살펴보면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찾아본다. 이러한 활동들은 왜 안식일에 적절하지 않은가? 170~174쪽에서 킴볼 회장은 안식일을 위한 “유용하고 영적인 활동”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은 안식일 준수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한 적이 있는가?

        킴볼 회장은 안식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고려사항은 바로 … 동기입니다.”라고 말했다. (169쪽) 일을 해야만 할 때 사람들은 안식일 예배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안식일이 휴식의 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70~172쪽 참조)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왜 잘못된 것인가?

        172~174쪽에서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목적들을 살펴본다. 여러분이 최근에 교회 모임에서 경건하게 느낀 것은 언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교회 참석과 예배를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가?

       킴볼 회장은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받는 축복에 대해 간증했다. (174~175쪽; 또한 165, 167쪽에 있는 이야기 참조) 이 계명을 지켰을 때 여러분이 받았던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가정의 밤 또는 가족 평의회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서로를 돕기 위해 여러분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관련 성구: 창세기 2:1~3; 마가복음 2:23~28; 3:1~5; 모사이야서 13:16~ 19; 교성 68:29

1.       Conference Report, 1953년 10월, 55쪽.

2.       “안식일-기쁨의 날”,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5쪽 참조.

3.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267~269쪽.

4.       Conference Report, 1978년 10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79년 4월호, 6쪽.

5.       Conference Report, 1975년 10월, 6쪽; 또는 성도의 벗, 1976년 2월호, 5쪽.

6.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3~5쪽.

7.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쪽.

8.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5쪽.

9.       Conference Report, 1981년 4월, 62쪽; 또는 성도의 벗, 1981년 10월, 67쪽.

10.     “The Fourth Commandment”, M Man-Gleaner Manual 1963~1964년 (leader’s manual), 277~278쪽.

11.     Conference Report, 1980년 4월, 5쪽; 또는 성도의 벗, 1980년 11월호, 5쪽.

12.     “The Fourth Commandment”, 279~280쪽.

13.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221쪽.

14.     Conference Report, 1944년 10월, 43쪽.

15.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17쪽.

16.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17쪽.

17.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220쪽.

18.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5쪽.

19.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4, 6쪽.

20.     Conference Report, 1953년 10월, 56쪽.

21.     성도의 벗, 1978년 7월호, 5쪽.

22.     “The Fourth Commandment”, 275~276쪽.

23.     “The Fourth Commandment”, 280쪽.